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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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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가요에 떠밀려 설자리 잃어
부활 위해 8월부터 가곡 콘서트
내년 봄부턴 어린이 동요무대도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은 외모부터 범상치 않다. 자유분방하게 흩날리는 흰 머리카락이 과학자 아인슈타인이나 작곡가 베토벤을 연상시킨다. 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고 사장은 굵직하고 쾌활한 목소리의 달변가였다. 예술의전당이 8월부터 선보이는 ‘가곡 콘서트’는 고 사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사회자로 나설 예정이다. 인터뷰에 앞서 사진기자의 다양한 동작 요구에 흔쾌히 응하며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니 명사회자의 자질을 충분히 갖춘 듯하다.
―가곡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들었다.

“동양방송(TBC) PD로 일하던 1970년대 유일한 클래식음악 프로그램인 ‘내 마음의 노래’를 담당하며 가곡을 많이 소개하고 성악가들과 자주 만났다. 개인적으로도 노래를 잘한다. 어릴 때는 성악가가 될 줄 알았는데 나중에 방송인으로 진로가 바뀌었다.”

―‘가곡 콘서트’를 시작하는 이유는.

“어느새 우리 주변에서 가곡이 사라졌다. 이탈리아·독일·러시아·프랑스를 보면 다들 자기네 가곡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클래식음악 중에서 가장 쉽게 들을 수 있고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게 바로 가곡이다. 가곡이 영영 없어지기 전에 살려보기로 결심했다. 예술의전당 야외무대에서 무료로 공연을 할 예정이다.”

―가곡과 더불어 동요 보급 확대도 선언하고 나섰다.

“요즘 어린이들이 동요는 안 부르고 성인 가요만 따라 부른다. 어떤 노래는 어린이한테 유해한 내용이 있는데도 아이들이 거침없이 따라 부르면 어른들은 오히려 손뼉을 친다. 동요를 통해 순진무구한 동심의 세계를 만들어주는 게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다. 내년부터 봄에 ‘어린이 동요무대’를 열 계획이다. 새싹이 돋아나는 봄은 동요와 잘 어울린다.”

고 사장이 졸업한 한양대 연극영화과는 배우 최불암(73)·임현식(68)·노주현(67)과 ‘호랑이 선생님’ 조경환(2012년 타계) 등 명연기자를 배출한 연예계 명문이다. 고 사장은 “노주현은 66학번 동기라 학창시절 절친했는데 나중에 둘 다 연극영화과 동문회장을 지냈다”고 소개했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고 사장은 1970년 졸업과 동시에 TBC에 취업해 방송을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PD로 일하던 20대 시절 그는 예식장을 직접 경영해보는 아주 특별한 체험도 했다.

―어떻게 예식장을 운영하게 됐나.

“1970년대는 서울 구로동에 막 공단이 생기면서 전국 각지에서 젊은이들이 몰려들 때다. 그들이 사는 곳을 우연히 방문했는데 집 하나에 비좁은 방이 50개나 되고 거기서 다닥다닥 붙어 힘들게 생활하고 있었다. 상당수 남녀가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그냥 애를 낳고 살았다. 그들을 위해 예식장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어떤 부부는 시골에서 가족이 아무도 오지 않아 내가 신부를 에스코트해 식장에 들어갔다. 어떤 때는 신부 오빠가 됐다가 사회자도 됐다가 혼자 ‘1인4역’을 한 적도 있다.”

―주례는 안 했나.

“나이가 어려 주례는 못하고 동네 복덕방 아저씨를 주례로 섭외했다.(웃음) 대신 원고는 내가 써줬다. 덕분에 지금은 주례사를 잘하는 사람이 됐다. 흔히 부부를 ‘일심동체’라고 하는데 나는 ‘이심동체’라고 표현한다. 부부는 하나가 아니고 엄연히 다른 두 인격체다.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출발해야 부부간에도 서로 인격과 개성을 존중하며 화목하게 살 수 있다.”

―최근까지 강남구 신사동 윤당아트홀 관장을 지냈는데.

“강남에 전부 큰 극장밖에 없다. 소극장을 만들어 젊은이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도 공연을 볼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내 돈으로 만든 건 아니고 어느 빌딩 주인에게 사정해 술집으로 쓰던 지하 공간을 빌려 소극장 2개와 갤러리를 열었다. 월급쟁이 사장으로 3년 반 일하며 수지타산은 어느 정도 맞췄다. 예술의전당 사장에 임명되며 그만뒀다.”

예술의전당 근무자는 500명쯤 되는데 그중 정직원은 100여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계약직이거나 외부 용역업체 직원이다. 고 사장은 취임 후 계약직 직원 결혼식에 직접 참석해 화제가 됐다. 그는 “어찌 보면 나도 임기 3년짜리 계약직 사장”이라며 “정규직·계약직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예술의전당에 근무한다는 긍지를 갖고 일하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사장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처음 그의 임명 소식이 전해졌을 때 야당 등의 반발은 거셌다.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로 알려진 국가미래연구원에 적을 둔 사실을 거론하며 ‘코드 인사’로 몰아붙였다. 5월14일 취임 후 처음 한 기자간담회에서도 논란이 불거졌다. 고 사장은 “일을 잘해 뭔가 보여주면 된다”며 “문화 융성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코드 논란에 대한 소회는.

“물론 내가 100점짜리 사장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대학에서 연극을 배웠고, 방송국에서 인접 장르인 드라마·코미디를 만들었다. 1982년 미국 뉴욕 한미방송(KABS) 편성제작국장으로 일할 때 한국어로 매일 방송하는 라디오 프로그램도 기획했다. 방송 일선을 떠난 뒤에도 17년 동안 서울예대 등 여러 대학에서 콘텐츠 기획론을 강의했다. 최근에는 소극장을 직접 만들어 3년 넘게 운영했다. 코드 인사로 몰아갈 정도로 엉터리는 아니다. 임기가 끝날 때 ‘참 적임자였다. 처음엔 몰랐는데 알고 보니 숨은 보석이었다’라는 얘기를 듣고 싶다.”

―박근혜정부는 국정 3대 과제로 ‘문화융성’을 거론할 만큼 문화에 관심이 많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화는 그 나라의 국격을 높인다. 우리나라가 경제력은 커졌지만 문화의 힘 없이는 국격을 높이기 힘들다. 육체의 배고픔은 경제가 해결하지만, 정신의 배고픔은 문화가 해결한다. 경제와 문화가 동떨어진 게 아니다. 요즘 휴대전화나 자동차를 살 때 성능보다 디자인을 중시한다. 문화는 국민의 창의력을 길러준다. 창의력 있는 국민이 만들어가는 경제가 바로 창조경제다.”

―문화 융성을 위한 구체적 사업 계획은.

“예술의전당에서 하는 주요 공연을 녹화해 영상물로 만들어 전국 문예회관은 물론 각급 학교까지 배포하겠다. 예술대상을 제정해 공정한 심사로 우수한 예술인과 공연을 뽑아 포상하겠다. 현대인의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예술로써 치유하는 ‘아트힐링’, 관객이 공연 기획에 직접 참여하는 ‘관객 주도형 기획 시스템’, 70세 이상 노년층에 각종 할인 혜택을 주는 ‘노블회원제’ 등도 시행하겠다.”

대화를 나눠보니 문화예술에 대한 사랑과 사람을 대하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고 사장의 임기 동안 예술의전당이 ‘그들만의 공연장’을 벗어나 대중과 한층 가까워지길 기대해 본다.

정리 김태훈, 사진 남정탁 기자

▲1947년 제주 출생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 ▲동양방송(TBC) PD ▲ 美 뉴욕 한미방송(KABS-TV) 편성제작국장 ▲ 제일기획 Q채널 국장▲삼성영상사업단 방송본부 국장 ▲OBS경인방송 시청자위원 ▲서울예술대·추계예술대·세명대·상명대·한세대 겸임교수 ▲국가미래연구원 문화예술체육분과위원회 간사 ▲윤당아트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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