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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칼럼]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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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그날, 목놓아 부르던 애국가
진보당 사태로 민주세력에 실망
25년 전인 1987년 6월10일 한낮,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33-1번 버스가 역시 과거로 사라진 청계고가로 입구에 멈춰 섰다. 쫓기던 시위학생이 버스에 급히 뛰어들었고 악명 높던 10여명의 백골단이 버스를 에워쌌다. 무술 경찰이 버스 문에 오르려 하자 이를 급히 밀쳐낸 승객과 운전기사는 창문을 잠근 채 학생을 보호하고 있었다. 자욱한 최루탄 속에서 백골단이 하나둘 몰려오자 시민 중 누군가가 절박하게 소리쳤다. “버스 창을 부수고 학생을 끌고 가기 전에 빨리 기자를 불러야 막을 수 있다”고.

우연히 가까이 있었던 나는 보도완장과 취재수첩을 방패로 경찰의 접근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잠시 뒤 시경(현 서울경찰청) 최고위급 간부가 다가왔다. 나와 낯이 익은 그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포위망을 풀고 버스를 보낼 것을 지시했다. 겁에 질린 버스는 슬금슬금 움직여 청계고가 위로 사라졌고, 버스를 에워싸고 있던 시민들은 시위학생을 살려냈다는 안도감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을 부르며 뜨거운 눈물을 회색 아스팔트 위에 쏟아부었다.

내가 겪은 6·10 민중항쟁의 한 단면이다. 세월이 흘렀다. 당시 사건기자로 시위현장을 쫓아다녔던 나는 유학을 다녀와 대학에 몸담고 있는 중년이 됐다.

회고하건대 그해 6월은 뜨거웠다. 5월, 범국민적 반정부시위를 예고하는 사건이 잇따라 터졌다. 서울대생 박종철군을 물고문해 죽인 사건의 수사가 조작됐고 진범이 따로 있다는 메가톤급 폭로가 나왔으며, 이어 민주세력 2000여명이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해 거리로 나섰다. 6월10일, 드디어 넥타이부대까지 합세한 수백만 명의 시민이 거리를 휩쓸었다. 거대한 민주화 요구 물결은 결국 당시 전두환 정권이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는 ‘6·29선언’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공화국 수립 이후 30년간에 걸친 권위주의 체제를 마감하고 우리 역사에 기록될 민주주의를 가능케 했던 1987년의 6월 민주항쟁은 이렇게 이뤄졌다.

그로부터 사반세기가 흘렀다. 그리고 그 뜨거웠던 6월의 여름이 또다시 우리 곁에 와 있다. 25년 전의 거칠고 가혹했던 독재에 비한다면 지금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과거의 독재 경험과 가슴 떨렸던 6월 민주항쟁을 겪지 못한 지금의 세대에게 민주주의는 당연히 주어진 것으로 특별한 감동을 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독재의 험악한 세월과 6월 민주항쟁을 피눈물로 겪은 기성세대는 그날의 감격과 의미를 결코 잊지 못한다.

6월 민주항쟁 25주년, 다채로운 기념행사가 펼쳐지고 있고 6월 내내 열릴 것이다. 그러나 풍성한 행사에도 불구하고 2012년 6월은 무언가 텅 비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아쉬운 것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과거 민주화 세력의 모습이다. 통합진보당 사태로 인해 ‘민주화 세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다. 진보의 가치가 폭력, 저질, 독선, 말장난과 같은 의미로 전락해 있고, 정치권은 연말 대선 표밭을 의식해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지금의 민주주의는 25년 전 6월 민주항쟁의 결과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파렴치범으로 전락한 작금의 일부 민주세력의 모습은 측은하기조차 하다.

‘어리석게도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우리는/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문제 때문에 때 묻지 않은 고민을 했던 우리는/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던 우리는/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김광규의 시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중 일부다. 부끄럽지 않은가? 아니다. 몹시 부끄럽다.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매체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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