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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의 '먹고 사랑하고 떠나라'] <26·끝> 네팔 포카라의 다국적 뷔페와 히말라야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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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설봉 아래 펼쳐진 마을 전경에 감탄 절로…
포카라(Pokhara)라는 이름은 생전 처음 들어봤다. 포카라행 부다 항공에 오르면서 뜬금없이 의문이 들었다. 왜 지금까지 나는 포카라라는 이 매혹적인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을까? 왜 지금까지 안나푸르나에 다녀온 지인들은 나에게 이 신비로운 이름을 들려주지 않았을까? 카트만두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인 1월24일 오전, 불교와 힌두교 사원이 절묘하게 공존하는 스와얌부나트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히말라야 가까이 경비행기를 타고 포카라라는 호수 마을로 떠났다. 싱가포르 항공으로 처음 카트만두로 진입하면서 기내 창으로 펼쳐졌던 히말라야의 파노라마가 포카라행 소형 부다 항공 기내 창으로는 한층 가깝게 위용을 드러내었다. 포카라는 카트만두 북서쪽으로 200㎞ 떨어져 있고, 네팔어로 호수를 뜻하는 ‘포카리’에서 유래한다. 수도 카트만두는 해발고도 1333m의 고산지대임에도 주 운송수단인 다종다양한 중고차와 오토바이들에서 뿜어내는 매연으로 마스크 없이는 숨을 쉴 수 없었다. 여행의 참 묘미는 여기저기 자유롭게 걸으면서 파악하고 들여다보고 머물고 또 나아가는 것인데, 카트만두에서의 짧은 이틀은 중후한 사원들과 진기한 삶의 풍경보다도 호흡을 곤란하게 하는 심한 매연과 소음, 그리고 소매치기에 극도로 조심하느라 예민해져서 제대로 돌아볼 수 없어 아쉬웠다.
일출에 위용을 드러내는 안나푸르나(7937m)와 마차푸츠레(6977m). 그 아래 잠에서 깨어나는 포카라 마을 전경.
카트만두에서 탈출하듯 떠나서였을까. 포카라에 내리는 순간 비로소 산악국가 네팔다운 청정한 공기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포카라 경비행장은 한적한 시골역 대합실 같았다. 다행히 날이 맑아 파란 하늘에 시계(視界)가 분명했다. 대합실 입구 벽에 부착된 지역 전도를 일별했다. 유난히 길쭉한 호수들이 눈에 띄었다.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아내린 산정 호수들이었다. 오후 일정을 확인하니, 그 호수 중 폐와호에서 조각배를 타기로 되어 있었다. 과연 히말라야의 연봉 중 전인미답의 마차푸츠레의 형상을 조각배를 타고 해 질 녘 호수 위에서 볼 수 있을까. 호수로 달려가기 전에 포카라 중심의 레이크사이드 가로(街路) 초입에 있는 랜드마크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호텔 내 2층에 마련된 테라스로 올라갔다. 길 건너에 수령이 수백 년은 되어보이는 보리수나무 두 그루가 한몸이 되어 우람하게 서 있었다. 보리수나무 뒤로 잔잔하게 일렁이는 호수가 보였다.

티베트 난민촌의 옷감 짜는 여성.
포카라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일반인으로 이곳을 찾아오기 시작한 것은 흥미롭게도 1970년대 히피들. 자연 그대로의 느린 삶의 속도가 히피들에게 마지막 종착지로 사랑을 받으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1980년대 이후 여행자들의 각광을 받게 되었다. 현재의 시설 대부분은 그때 이후 갖추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등산 강국답게 한국의 여행자들도 히말라야 트레킹을 주 목적으로 이곳을 즐겨 찾는다. 인도와 인접 국가를 여행하는 순수 관광객들과 배낭 여행자들, 비정부기구(NGO) 활동가들까지 한국인 방문객 수가 적지 않다. 또 이곳에 요식업과 가이드업에 종사하는 현지인 대부분은 한국에서 다년간 노동자로 취업했다가 귀국한 우리말에 능통한 사람들로 한국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포카라 랜드마크호텔의 식당인 ‘헝그리 아이’.
랜드마크호텔의 식당 이름은 ‘헝그리 아이(Hungry Eye·배고픈 눈)’다. 도착 첫날밤 네와르족 전통 요리를 맛보았으므로 포카라에 어울리는 다국적 뷔페를 선택했다. 히피 문화의 잔재로 포카라의 특징은 개방과 다양성. 다국적 음식점들이 중심가인 레이크사이드는 물론이고 호수 골골이 포진해 있었다. 열 가지 이상의 메뉴에서 몇 가지 선택해 담아본 내 접시는 그야말로 중국식과 인도식, 네팔식, 그리고 이탈리아식으로 짜였다. 야채 수프를 한 가득 떠왔다. 텁텁한 쌀뜨물에 장을 약간 푼 정도의 심심한 맛이었다.

열흘 정도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왔다면 ‘헝그리 아이’로 달려들어 금세 한 접시 뚝딱 비웠을 텐데, 내게는 특별한 감흥이 없었다. 저녁에는 안나푸르나 현지 산악인들만 간다는 꼬치집을 일행인 K선생께 부탁해 찾아가봐야 할 것 같았다. K선생은 지난해 6개월을 폐와호 옆에 머물며 집필을 하셨고, 현지인들과 소통이 가능했다. 혹자에 의하면 1970년대 이곳에 찾아와 눌러앉은 히피들처럼 유럽 여행객 중 상당수가 ‘쾌락난민’을 자처하며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레포츠 가이드업을 하며 근근이, 그러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포카라의 중심 레이크사이드 주변에 다양한 다국적 요리점들이 즐비하다.
다국적 뷔페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주문했다. 네팔 커피라면 나도 조금 할 말이 있었다. ‘히말라야의 선물’이라는 네팔 커피가 공정무역으로 공급되기 시작할 무렵부터 나는 네팔 커피를 자주 구입해 마시고, 또 지인들에게 선물하곤 했었다. 그땐 히말라야의 고산지대에서 재배되는 커피라는 상상의 맛과 향을 음미했던 것일까. 히말라야 가까이, 히말라야 아래 호수 마을에서 마시는 커피의 맛은 정작 그동안 내가 애음해오던 그 커피맛에 비해 특별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한국에서 음미한 히말라야 커피의 맛과 향은 환상이 만들어낸 조화였을까. 사람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한 것이었다.

폐와호에는 조각배들이 물결 따라 줄지어 흔들리고 있었다. 폐와탈(Phewa Tal)이라 불리는 이 호수는 네팔 히말라야 일대 호수들 중 규모가 가장 크고, 네팔 전체에서 두 번째로 큰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부겐빌레아 붉은 꽃송이들이 조각배들 위로 닿을 듯 줄기를 늘어트리고 있었다. 점심 식사 후 돌아본 티베트 난민촌 사람들 모습이 흔들리는 물결 따라 눈앞에 어른거렸다. 온종일 배틀에 앉아 옷감을 짜며 인생을 흘려보내는 여인들, 외지인만 보면 사탕이든 푼돈이든 은근히 다가와 구걸하고, 주머니마다 터질 듯이 쑤셔 넣고도 더 많이 구걸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 곁을 배회하는 대여섯 살짜리 꼬마들. 차라리 방문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공연히 공기를 흐려놓은 것 같아 미안하고 민망했다. 입구에 거대한 벽화처럼 난민촌 사람들의 사진을 조각보처럼 이어 붙여놓은, 평화를 상징하는 총천연색의 기도 깃발들이 나부끼는 티베트 난민촌을 돌아나오면서, 문득 자발적으로 태생지를 떠나 이곳에 정착한 히피들과 유럽인들에게 부여된 ‘쾌락난민’이라는 말이 물과 기름처럼 전혀 따로 존재하는 아이러니를 느꼈다.

부겐빌레아와 조각배들. 부겐빌레아 붉은 꽃송이들이 조각배에 닿을 듯 줄기를 내리고 있다.
사공들이 부겐빌레아 꽃줄기 사이사이 조각배를 호수에 드리우고 줄지어 서 있었다. 조각배는 몸의 균형을 조금이라도 잃을라치면 그 즉시 뒤집힐 듯이 날렵했다. 여자 뱃사공이 활처럼 머리 뒤로 노를 한바퀴 휘젓고는 능숙하게 물속으로 찔러 넣으며 은근히 물결을 밀자 조각배가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경주하듯이 사공들이 노를 저어 물결을 갈랐고, 나는 귓속에 감기듯 생생하게 울리는 물소리를 눈을 감고 들었다. 첩첩이 에워싼 산 그림자가 호수의 표면을 잠식하고 있었고, 진행 방향 멀리 산자락과 산자락이 더 이상 겹치지 않는 허공에는 석양에 비친 구름이 그림처럼 걸쳐져 있었다.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순진한 의문이 솟았고, 내 귀를 싱그럽게 또 내 마음을 그럴 수 없이 편안하게 어루만져주는 물소리의 근원이 히말라야 만년설이니, 저 너머에는 안나푸르나의 아름다운 실루엣이 구름 속에 잠시 가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수 깊숙이 떠 있는 힌두 사원 섬을 저 앞에 두고 사공은 방향을 돌렸다. 하늘에는 어느덧 달이 떠올라 있었다.

호수의 마술인가. 현지 산악인들의 단골집이라는 꼬치집에 가려던 계획은 뜻밖의 이른 취침으로 무산되었다. 30여 분 조각배에 실려 사공이 노 저어 주는 드넓은 호수를 유람한 여파인지 저녁 식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단잠에 빠졌다. 다음날 새벽 4시에 기상해 30분 이후 사랑콧(Sarangkot) 전망대로 오르면서, 전날 저녁 호수 유람은 다음날 새벽 기상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임을 깨달았다. 사계절 온화한 네팔 일대가 시베리아 한류의 영향으로 이상 저온이 계속되었고, 변화로운 이동에 따른 수면장애로 감기에 걸리기 쉬웠다. 지난 밤 숙면을 취해서인지 사랑콧에 오르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일출 전망대인 사랑콧에 오르자 놀랍게도 캄캄한 새벽 어둠 속에 전 세계 여행자들이 추위에 중무장하고 옹기종기 모여 서 있었다. 사랑콧은 네팔의 몇몇 일출지 중 단연 명성이 높은 곳. 전망대에 오른 지 십여 분, 어둠 저편에 있다는 안나푸르나 연봉과 마차푸츠레의 형상을 눈에 힘을 주고 찾았다. 다시 5분여가 흐른 6시30분, 안나푸르나와 대각선을 이루는 반대 방향에서 붉은 기운이 검은 어둠을 밀어내는 힘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안나푸르나의 뾰족한 모서리가 황금빛이 번지듯 환해졌다. 황금빛 모서리는 이내 옆으로 옆으로 세를 넓혀갔고, 안나푸르나 연봉 중간에 위치한 물고기 꼬리 형상의 마차푸츠레의 뾰족한 꼭지가 빛을 받아 보석처럼 빛났다.

포카라 경비행장 활주로에 선 필자. 방금 타고온 부다 항공이 등 뒤에 보인다.
해발고도 1592m에 위치한 사랑콧은 네팔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일출지 중의 하나였으나, 여행자들은 해가 떠오르는 순간보다는 그 햇살에 눈부시게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는 히말라야 설봉들을 바라보고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일출과 함께 드러나는 히말라야의 장관을 목격한 사람들의 표정은 처음엔 경이로움과 경건함으로 숙연해졌다가 해가 점점 떠오르자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처럼 해맑아 보였다. 일출과 설산 장면도 장관이었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또 다른 장관은 사랑콧과 히말라야 연봉 사이 어머니의 품처럼, 아니 여자의 근원처럼 아늑하게 펼쳐져 있는 포카라 마을의 전경이었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고 사방이 환해졌을 때, 누구의 배려였는지 뜨거운 커피 한 잔이 사람마다 건네졌다. 속성 커피였으나 몇 년 전 히말라야의 선물이라는 이름의 원두커피를 처음으로 맛보면서 느꼈던 성스러운 씁쓸함과 함께 달콤함이 입 안에 감돌았다. 히말라야를 눈앞에 바라보며 마시는, 잊을 수 없는 히말라야의 맛이었다.

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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