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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리뷰] 퀀텀시뮬레이션과 생명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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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용량에 초병렬 계산 가능
신약개발의 핵심적 기술로 꼽혀
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미국에 있는 지인이 폐암 말기로 판정 받아 몇 주일밖에 살 수 없다는 급보를 받았다. 평소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는 그였기에 큰 충격을 받았다. 급히 스탠퍼드대학 병원의 중환자실에 가보니 그는 생명유지장치에 둘러싸인 채 누워 있었다. 이미 간성 혼수가 일어나 각종계기에 나타난 그래프와 규칙적인 전자음만이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담당 의사는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하다고 했다. 몇 주간의 연명을 위해 모르핀을 투여하거나 얼마 전 개발된 선택적 항암치료제를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암세포를 분석해보니 세포막 표면의 단백질이 유전자 변형으로 생성된 것이라 신약의 성공 확률은 30% 정도였다. 결국 가족은 그에게 신약을 투여해 보기로 결정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는 의식을 회복해 일반병동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생존은 물론 일상생활을 수행할 수 있게 됐고, 얼마 전에는 필자와 논문까지도 발표했다. 이러한 사례는 향후 암치료 방향에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만약 특정한 암세포의 표면 단백질 구조를 알아내고 이에 작용하는 신약이 빠른 시간에 개발될 수 있다면 ‘불치의 병’이라는 암도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용적인 면에서 두 가지 중요한 장애요인이 있다. 우선 단백질 구조의 분석이 매우 어렵고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단백질을 구성하고 있는 분자 구조가 복잡하다 보니 슈퍼컴퓨터를 사용해도 하나의 단백질 구조를 해석하는 데 몇년 또는 십수년이 걸린다. 또한 특정 단백질의 인히비터(inhibitor·억제제)가 될 수 있는 ‘후보물질’을 찾아낸다 해도 암세포 표면의 단백질과 반응하는 기작의 해석 작업도 오랜 시간이 투입된다.

또 동물실험을 통한 독성 분석과 임상시험을 거쳐 결과를 확인하고 투약방법을 알아내는 데에도 5년 이상 소요돼 신약 개발은 막대한 재원 투자가 가능하고 장기적인 사업 비전을 지닌 다국적기업만이 가능하다.

삼성경제연구소의 2003년 자료에 따르면 신약 개발에는 평균 8억8000만 달러 이상이 소요되며, 이 중 후보물질의 탐색 연구에 5년, 5억3000만달러가 투입되는데 성공률은 0.02%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단백질 구조 해석 및 단백질과 후보물질의 반응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패러다임이 존재한다면 신약 개발 프로세스는 상당 부분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분자 구조 시뮬레이션은 신약 개발의 생산성과 성공 가능성 극대화하는 데 필요불가결한 도구이다.

이런 가운데 원자 집합을 기억 소자로 간주해 원자의 양자역학적 효과를 기반으로 방대한 용량과 초병렬 계산이 동시에 가능한 퀀텀(Quantum) 컴퓨팅의 한 분야인 퀀텀 시뮬레이션이 바로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하버드대학의 한 연구팀이 캐나다 벤처회사인 디웨브에서 개발한 128큐빗 퀀텀 컴퓨터를 사용해 20개의 아마노산으로 구성된 단백질의 폴딩 문제를 퀀텀 시뮬레이션으로 실시간 해석하는 데 성공하고 그 결과를 실험 결과와 비교해 오차 한계 내에서 일치한다는 내용을 2012년 네이처지에 발표한 바 있다. 이 연구 성과는 퀀텀 시뮬레이션이 향후 신약 개발에 핵심적인 기술의 하나가 될 것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결국 미래는 퀀텀 테크놀로지를 보유한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로 나눠지며, 그중 퀀텀 컴퓨터와 퀀텀시뮬레이션 기술을 확보한 나라와 기업이 정보통신 분야는 물론이고 생명과학 분야를 지배할 것으로 보인다.

안도열 서울시립대 석좌교수·양자전자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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