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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살람, 중동] 〈23〉 생물처럼 변하는 돌집들, 터키 카파도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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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형상 ‘바위 마을’ 사람들도 자연을 닮아
지금은 사람이 살지않는 바위 동굴
여행자용 숙소로 사용하기도
꿈많은 주인집 여섯살 난 딸
나와 동네 곳곳 다니며 '조잘조잘'
아름다운 석양 ‘내가 작아지는 기쁨’ 선사
시리아 알레포에서 터키 카파도키아까지 가는 길은 편안했다. 알레포에서 터키의 국경도시 안타키아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그곳에서 케이세르까지 또 버스를 타고 간다. 카이세리에서 괴레메까지 또 한 번 버스를 타고 가면 그곳이 카파도키아다. 국경에서도 비자를 받을 필요가 없고, 길도 잘 포장돼 있어 힘들지 않게 카파도키아에 도착했다. 카파도키아를 찾은 계기는 어디선가 본 사진 한 장이었다. 여행 전에 본 사진이었는데 그때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꼽아 놓았다.

카파도키아는 독특한 지형으로 유명한 곳이다. 바위가 버섯 모양처럼 생겨서 사람들이 그곳에서 생활을 한 거대한 자연의 마을이다. 지금은 그 바위 집에 사람이 살지 않지만, 바위 동굴 안에 여행자용 숙소를 만들어 놓은 곳이 있다. 바위 동굴 안의 숙소는 여행 중 묵은 가장 재미난 숙소 중 하나다. 진짜 동굴 안에 침대를 몇 개 갖다 놓고 여행자용 숙소를 만들었는데, 그 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어느 곳에서는 물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더 진짜 동굴스럽다고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터키 카파도키아의 풍경. 바위를 뚫거나 깎아서 만든 기이한 형태의 집들이 계곡을 이루고 있다.
그 숙소가 마음에 들어 오래 묵다 보니 숙소 주인네 가족과 친구가 되었다. ‘알리’라는 이름의 친구는 꿈이 있고 그것을 위해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는 유쾌한 젊은이다. 그의 꿈 이야기를 들을 땐 나도 동화되어 같이 꿈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눈빛부터 다르다. 꿈을 좇아가면서 꿈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꿈을 찾아서 꿈을 이뤄가며 사는 것이다. 꿈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삶과 즐기면서 꿈을 이뤄가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나는 어떤 꿈을 어떻게 꾸고 있을까.

알리의 딸 ‘니메즈’는 여섯 살배기 귀여운 아이다. 알리의 꿈 중 하나가 바로 이 아이다. 니메즈는 아침이면 여행자용 숙소의 내 방에 들어와 나를 깨우곤 했다. 내 손을 잡고 나가 동네를 함께 돌아다닌다. 놓치는 것 하나 없이 꼼꼼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영어를 못하는 니메즈는 터키어로 말하고 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언어는 대화를 하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닭이 지나가면 닭에 대해 이야기하고, 꽃가루가 바람에 날리면 그 꽃에 대해 이야기한다. 니메즈는 자기네 엄마가 손수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팔찌를 내 팔에 채워줬다. 엄마에게 돈을 지불하려고 했지만 그녀 역시 그냥 ‘선물’이라고 말한다. 낮에는 꼬마 니메즈와 놀고 저녁이 되면 니메즈의 아빠이자 나의 친구인 알리와 동네를 다닌다. 한 번은 클럽에도 갔었는데 그 풍경이 우리나라 나이트클럽과 비슷해서 재미도 있고 1990년대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카파도키아에서 우연히 만나 사귄 친구 알리의 딸 니메즈. 이 여섯 살배기 꼬마와 비록 말은 안 통했지만 마음과 몸으로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이렇게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 속에서도 내가 날마다 빠뜨리지 않는 일과가 있다. 해가 질 때쯤 언덕에 올라가는 것이다. 그 언덕에 오르면 카파도키아가 한눈에 들어오면서 석양을 온몸과 온 마음으로 느낄 수가 있다. 따뜻한 하늘색은 사람들의 지친 하루를 녹여주는 듯하다. 그 푸르던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갈 때에는 차가운 사람의 마음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사진을 몇 장 찍고 그림을 몇 장 그리는 것으로 이 모든 광경을 담을 순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담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마을 뒷동산에 올라 보는 풍경이 아니고 정말로 산 정상에 올라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있다. 그곳까지 가려면 한참 걸어야 하는데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었다. 왜냐면 가는 곳마다 신비스러운 바위들이 즐비해 볼거리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표 한 장을 주웠는데 내가 가는 목적지인 ‘선셋포인트’(일몰 관람지)라는 곳의 입장권이다. 그 입장권이 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실제로 통했다. 선셋포인트에 올라 바라보면 마을 뒷동산에서 본 풍경과는 차원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거대한 자연과 장엄한 풍경이 나를 압도한다. ‘내가 작아지는 기쁨’을 선사하는 곳이다. 거룩한 자연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은 존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카파도키아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붉은 노을이 처연하게 아름답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있다가 해가 다 지고 난 뒤에야 하산하기 시작했다. 오를 때 왔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이다. 산속에서 해는 놀랄 만큼 빨리 지고 어둠이 순식간에 찾아온다. 처음 가보는 길은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위험해지기 마련이다. 불빛이 보이지 않을 때부터 마음이 더 다급해져서 미끄러지고 넘어지게 된다. 그나마 하늘에 떠오른 상현달이 금세 길을 비춰주니 한결 나아졌다. 평지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안도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겨우 지나가는 오토바이 한 대를 볼 수 있었는데, 운전자가 말하길 이곳에서 괴레메까지는 한 시간 거리란다. 내가 잘못 내려와도 한참 잘못 내려온 것이다. 왕복 2차선 도로를 만나니 그래도 희망이 보인다. 처음으로 지나가는 차를 무조건 잡았다. 다행히 여자 운전자였고 남자 두 명이 더 타고 있었다.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자 고맙게도 “괴레메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힘들고 지쳐 일단 타긴 했지만 무턱대고 안도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여자 혼자 타고 가는 차였으면 괜찮겠지만 남자 두 명한테 신경이 쓰인다. 우선 나는 괴레메까지 가는 길을 모른다. 더욱이 어두운 밤이고 모든 상황이 나한테 불리하다. 그런 긴장 속에서도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니 조금은 경계가 풀렸다. 하지만 괴레메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그이들과 친해진 것은 이때부터였다. 괴레메에 살지도 않는 세 남녀는 나를 무사히 데려다 준 것으로도 모자라 함께 와인을 파는 집에 들어갔다. 와인과 물담배가 잘 어울리는 곳이다. 일행 가운데 한 남자는 직업이 교사이고 나머지는 그의 친구들이란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긴 밤이 흘러갔다.

다시 아침이 밝았다. 여행자들 속에 섞여 나는 다시 여행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몇몇 사람들과 함께 차를 빌려 카파도키아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내가 있던 마을은 카파도키아 내의 작은 마을 괴레메였는데 카파도키아는 생각보다 훨씬 넓은 도시였다. ‘록타운(Rock Town·바위 마을)’이라고 적힌 지도 한 장을 들고 그 바위들을 찾아 떠난다. 바다도 보고, 육지 거북이도 만나고, 멋진 계곡도 구경하고, 성곽을 지나 돌아온다. 카파도키아에서의 하루가 제대로 끝나려면 노을을 꼭 봐야 한다. 어디서 보든 멋진 광경을 선사하는 노을로 오늘도 하루를 마무리한다.

강주미 여행작가·‘중동을 여행하다’ 저자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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