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을의 나라/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1만3000원
갑을관계는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왜 한국사회는 ‘노예관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난히 더 심한 것인가. ‘언론 권력’·‘강남 좌파’ 등의 저서를 통해 논쟁적 이슈를 생산하며 한국사회의 명암을 추적해 온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이번에는 신간 ‘갑과 을의 나라’에서 한국의 갑을관계 문화를 분석했다.
갑을관계는 한국인의 모든 일상적 삶에 전방위적으로 깊숙이 침투해 있다. 저자는 “갑은 군림하고 을은 비위를 맞추는 갑을문화는 개발경제 시대를 거치면서 나온 뿌리 깊은 병폐”라고 지적한다.
그 기원은 조선시대로까지 올라간다. 갑을관계의 출발점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관존민비다. 오늘날의 갑을관계에서도 여전히 관(官)은 민(民)을,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지배하는 갑의 위치에 있다. 3공화국에서 6공화국에 이르는 동안 진행된 관료조직의 ‘정치적 도구화’는 관료조직이 정권에 충성을 바치게 만들었고, 이 같은 관계를 기반으로 해 관료조직은 국민에 군림하는 지위를 누리게 됐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한국사회 갑을관계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특이현상으로 저자는 브로커와 선물 문화를 꼽는다. 갑과 을을 연결해 주는 브로커는 전방위에 편재해 있고, 그 연결과정에는 온갖 비리가 난무한다. 을이 갑에게 주는 것으로 인식되는 한국인의 선물 관행도 갑을관계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슬로건을 심리적 면죄부로 삼아 온 갑, 나부터 살고 보자며 체념의 지혜를 터득한 을도 기존의 질서를 확대 재생산하는 데 일조했다. 사회구성원 간 갈등을 해결해야 하는 정치도 그동안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갑을관계 심화를 부채질했다.
현재의 갑을관계를 지속해 나가는 건 을뿐만 아니라 갑에서도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평소 ‘증오의 종언’을 시대정신으로 주장해 온 저자는 ‘을의 반란’을 촉구하고 있다. 모든 환경과 조건이 달라져 새로운 삶의 문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득권층은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이 많아 저자의 이전 저서와 마찬가지로 적잖은 논란을 불러오겠지만, 자신을 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들으면 속이 시원해질 소리가 많이 실려 있다.
박창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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