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美·中 겨냥해 확~ 늘린 파사트, 한국서 통할까?

세단은 가솔린 엔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절, 폴크스바겐은 유럽에서 많이 타는 디젤 엔진 세단을 들여왔다. 해치백 골프와 세단 파사트, 제타는 모두 디젤 엔진으로 시장을 공략했다. 독일차에 대한 프리미엄을 바탕으로 이뤄낸 성과다.

폴크스바겐이 독일차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벗어던졌다. 대표 중형 세단 파사트를 들여오면서 색깔은 더욱 분명해졌다. 유럽에서 생산한 차를 들여오면서 자동주차, 전자식주차브레이크 등 값비싼 기술임에도 실용적이면 반드시 장착한다던 그간의 노선을 벗어났다. 지난 13일 출시와 함께 시승에 나선 7세대 파사트는 폴크스바겐의 새로운 지향점을 뚜렷하게 보여줬다.

▶ 폴크스바겐 신형 파사트. /사진=이다일 기자
▲ 미국과 중국을 겨냥한 독일차, 한국에 상륙하다

폴크스바겐의 새로운 중형세단 파사트는 미국에서 생산한다.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가 쓴맛을 본 뒤로 테네시주 채터누가에 공장을 건설하고 심기일전해서 만든 차가 바로 파사트다. 작년 4월에 첫 차를 만들었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광고 ‘수퍼볼’에 등장해 관심을 모았던 그 차다.

독일 브랜드가 설계하고 미국 공장에서 조립한 차를 한국으로 들여왔다. 한-미 FTA의 효과까지 더해져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고 업체는 설명했다. 새로운 파사트는 2.0ℓ 디젤엔진과 듀얼클러치 6단 변속기(DSG)가 장착된 모델이 4050만원이고 곧 이어 출시할 2.5ℓ 5기통 가솔린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한 모델이 3750만원이다.

독일산과 미국산의 원산지(?) 차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폴크스바겐은 중형 세단 파사트를 만들면서 두 가지 플랫폼을 개발했다. 폴크스바겐이 향후 자동차 개발에 사용하겠다는 모듈식 플랫폼 MQB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유럽형과 미국형으로 개발한 플랫폼의 가장 큰 차이는 뒷좌석의 길이다. 유럽형은 전체 길이가 4769㎜인 반면 미국형은 4870㎜로 길다. 차이는 운전석 뒤 B필러부터 뒷좌석의 공간이 넓어지고 트렁크도 깊어졌다. 뒷부분만 늘린 형태다.

▶ 신형 파사트는 뒷좌석 길이가 구형에 비해 77mm나 늘어났다. 성인 남성 2명이 앞뒤로 탄 모습 /사진=이다일 기자
폴크스바겐이 미국서 생산해 국내에 들여오는 파사트의 뒷좌석과 트렁크를 늘린 이유는 따로 있다. 이와 똑같은 차를 중국에서 판매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크고 긴 차를 좋아해서 소형차에도 리무진 버전을 만드는 중국에서 성공하려면 뒷좌석의 크기가 중요하다. 폴크스바겐도 이 점을 고려해 다소 비정상적으로 길쭉한 차를 만들었다. 그리고 작년 4월 미국서 생산을 시작했고 이 차가 한국으로 수출됐다. 또, 중국에서는 오는 19일 ‘new Lavida’라는 이름으로 상하이-폴크스바겐에서 출시한다.

▲ 한·미·중·유럽 옵션은 제각각…한국형이 가장 떨어져

폴크스바겐코리아가 들여온 파사트는 2가지 트림밖에 없다. 엔진에 따라 가솔린과 디젤이다. 옵션 사항은 1가지로 고정돼 소비자들은 엔진에 대한 선택밖에 할 수 없다. 전 세계에서 팔리는 파사트 가운데 가장 기본 사양이 좋은 차는 유럽형이다. 정확히는 옵션 선택의 폭이 넓다고 봐야한다.

유럽에서 판매되는 파사트의 기본형은 세미오토 에어컨이 들어가지만 풀오토 에어컨을 선택할 수 있고 할로겐 헤드라이트를 제논으로 바꿀 수 있다. 또, 주간주행등과 테일램프에는 기본으로 LED를 적용했고 운전석 계기반에는 컬러 TFT LCD가 장착돼 각종 기능을 표시한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사양은 유럽과 또 다른 옵션으로 구성됐다. 풀오토에어컨이 기본사양에 들어있지만 유럽형보다 옵션 선택의 폭이 적다. 미국서 생산해 한국으로 들여오는 파사트는 가장 기본적인 품목만 장착했다. 유럽형에서 보던 전자식파킹브레이크, 자동주차 등의 옵션은 사라졌다. 특히, 뒷좌석 송풍구가 사라졌고 후방카메라 등 중형차에 기본적으로 적용되던 옵션들이 사라졌다.

미국과 한국 그리고 중국에서 판매되는, 독특하게 길어진 파사트는 사실 700만대 규모의 중국 시장을 노린 폴크스바겐의 전략이다. 넓어진 실내를 채울 다양한 옵션들이 중국시장에서는 준비돼 있다. 오는 19일 중국 출시를 앞둔 파사트를 살펴보면 뒷좌석 헤드레스트 LCD모니터를 비롯한 가죽시트, 뒷좌석 송풍구, 전자식파킹브레이크, 자동주차시스템, 프리미엄 오디오 등 고급스런 옵션들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 19일 중국에 출시하는 파사트(좌, 현지명 lavida)와 13일 국내에 출시한 파사트(우) 비교.
▲ 2.0ℓ 디젤엔진과 듀얼클러치 DSG 변속기의 결합

미국과 중국의 이른바 ‘대륙’을 겨냥해 만든 폴크스바겐의 파사트를 한국땅에서 시승했다. 서울 광장동 워커힐을 출발해 양평까지 이어지는 왕복 100㎞ 구간에서다. 도심과 고속도로, 국도가 고루 섞여있는 길이다. 2.0ℓ TDI 엔진은 익숙하다. 특히 DSG 변속기의 상쾌한 출발은 여전하다. 도심구간을 통과하는 30여 분 동안 연비는 10㎞/ℓ를 겨우 넘기고 있었다. 정차 시간이 길어 평균속도는 20㎞/h에 불과했다. 정차시 시동을 꺼주는 폴크스바겐의 블루모션 기술이 아쉬운 순간이다. 이어진 국도와 고속도로 주행으로 시승구간 100㎞의 연비는 12㎞/ℓ대를 기록했다. 공인연비보다 조금 낮은 수치다.

국도로 접어들어 굽이굽이 코너를 돌아나가자 기존 파사트와 다른 점이 눈에 띄게 나타났다. 탄탄했던 하체와 서스펜션이 마치 국산차 혹은 미국차처럼 말랑해졌다. 국산 중형 세단보다 오히려 말랑한 느낌이 급격한 핸들링에서는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단단한 하체를 자랑했던 유럽차의 장점이 사라진 모습이다.

오디오와 내비게이션은 국산 제품을 장착했다. 폴크스바겐코리아에서 붙인 것이다. 쓰는데 불편함은 없다. 이전 모델부터 이어진 그대로다. 운전석에 앉아 실내를 살펴보니 오랜만에 보는 주차 브레이크 레버가 있다. 최근의 중형세단에서 보기 힘든 사양이다. 대부분 풋 브레이크나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를 사용해왔고 폴크스바겐이 국내에 선보인 대부분의 차에서 사라진 주차 브레이크가 간만에 등장했다.

가격을 낮춰 경쟁력을 높였다고 폴크스바겐코리아가 밝혔지만 동일한 품질을 유지하며 가격을 낮춰야 경쟁력이 생긴다. 신형 파사트는 품질도 낮아지고 가격도 낮아졌다. 센터페시아 중앙에 자리 잡은 아날로그 시계는 품질이 조악하다. 플라스틱과 플라스틱을 조합해 만들어 마치 면세점에서 담배 한 보루 사면 딸려오는 그런 시계가 연상된다. 미국형에 기본으로 장착된 풀오토에어컨은 이 차에서 가장 좋은 옵션이다.

정면 계기반은 폴크스바겐의 기존 차에서 보던 흑백의 LCD가 들어있다. 중국 사양에서 풀컬러LCD를 자랑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기어노브 옆으로는 빈 버튼들이 늘어서 있다. 아무 기능도 들어있지 않은 빈공간이다. 유럽과 중국에서는 자동주차, 전자식파킹브레이크 등 옵션이 들어가는 자리다. 시트는 가죽과 스웨이드를 조합했다. 마찰이 많은 등 부분에는 스웨이드를 댔고 바깥쪽은 가죽으로 만들었다. 이제 파사트를 두고 ‘프리미엄 수입차’, ‘독일차의 품질’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다. ‘Made in Germany’가 아닌 ‘Made by Germany’가 됐다.

▶ 신형 파사트는 유럽산 차체에서 뒷좌석과 트렁크를 길게 늘렸다. 긴 차체를 좋아하는 중국 소비자에 맞춘 디자인이다. /사진=이다일 기자
▲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경쟁상대 만만치 않아

폴크스바겐코리아는 파사트를 들여오면서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했다. 물론 여러 가지 옵션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지만 일단 가격면에서는 뛰어난 경쟁력을 갖췄다.

4050만원의 디젤 모델은 복합공인연비가 14.6㎞/ℓ다. 중형 세단에서는 높은 수치지만 디젤 세단이 17㎞/ℓ를 넘나드는 것을 고려하면 낮은 수치다. 가솔린 세단의 연비도 만만치 않다. 폴크스바겐이 경쟁 차종으로 지목한 현대차 그랜저는 2.4ℓ 가솔린 엔진을 장착하고도 구 연비 기준으로 12.8㎞/ℓ다. 새로운 복합연비 기준으로 추산하면 10㎞/ℓ 남짓한 수준이다.

가격으로만 본다면 경쟁 차종으로는 현대 그랜저, 르노삼성 SM7, 쌍용 체어맨 등 국산차와 도요타 캠리 하이브리드 등을 꼽을 수 있다.

새로운 폴크스바겐 파사트는 독일차의 프리미엄을 바탕으로 시장을 공략했던 상황과 달라진 품질로 인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가장 경쟁이 치열한 4000만원대 시장에서 폴크스바겐은 월간 500대씩 파사트를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BMW의 5시리즈나 메르세데스 벤츠의 E클래스보다는 낮은 수치지만 도요타 캠리를 넘어선 판매를 목표로 잡았다. 독일차 브랜드의 힘으로 경쟁력을 가질지 혹은 실용적인 소비자들이 옵션보다 실용성, 차의 기본 기능에 큰 점수를 매길지 주목된다.

 이다일 기자 aut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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