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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시장올레 프로젝트'에 귀를 기울이자

입력 : 2012-11-16 10:11:29 수정 : 2012-11-16 1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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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으로 월간 마이크로소프트 편집장을 지낸 식품전문가. 다소 의아한 조합이다. 동질성을 찾기 힘든 컴퓨터와 식품이란 이종업종 전문가인 정병태 씨가 하루는 열어 보는데 꽤나 시간이 걸리는 ‘묵직한’ 이메일을 보내왔다.

경동시장과 청량리시장은 약 22만㎡의 넓이로 그 안에는 동대문구 인정시장 10곳 가운데 7곳이 있다. 시장전문가 정병태 씨는 이 곳을 시장올레길 최적지로 삼았다.

정 씨는 오래전 컴퓨터 분야 일을 한 전문가였다가 2004년부터 재래시장 살리기 운동에 뛰어 들어 지금은 청량리, 제기동 지역에 거주하면서 시장살리기 운동단체인 시장살리기운동협의회 ‘시장가자’의 서울·경인지역대표로 활동 중이다.

그가 보내 온 이메일은 '시장올레 프로젝트-청량리·경동시장블록의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제안'이란 제목의 90여 쪽에 달하는 제안서다. 10여년 간 모아온 시장과 관련된 3만여 건의 데이터와 청량리‧경동시장 블록 상점·상인 정보 5000여 건의 자료를 기반으로 만든 보고서형태 제안이다.

6년 동안은 현장에 살면서 체감한 데이터를 통해 재래시장이 안고 있는 최대 문제는 손님의 감소, 특히 젊은층 손님의 부재를 극복하겠다는 취지로 제안서를 만들었다. 정 씨는 프로젝트 목적을 “시장을 도시인의 정신적 휴식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고 젊은층 고객을 유치해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그는 ‘올레길’을 택했다.

제안서에는 시장 올레길을 통해 시장을 생활·문화적 공간과 관광자원으로 거듭나게 해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다양한 작은 프로젝트와 행사를 통해 활기차고 재미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젊은이들이 찾게 하는 방법을 담고 있다. 

재미난 것은 커뮤니티형 홈페이지를 만들어 젊은층 손님의 참여를 높이고 시장과 상점별 홈페이지를 갖춰 물품가격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국내 최고의 물가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가 10여년간 수집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의 이번 제안은 우리 공직사회의 탁상행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는 현재 시장 관련부처에서 시행하는 시장살리기 사업을 보면 화가 난다고 했다. 시장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정책을 펴면서 혈세만 수십~수백억 쏟아 붓고 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중소기업청은 시장 살리기에 수년간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었지만 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과 방향 설정의 오류로 인해 실패를 거듭해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문화관광체육부의 '문화를 통한 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약칭 '문전성시')' 역시 우리 시장의 전통문화를 이해 못하고 이질적인 문화를 도입한 실패사례로 지적했다. 정 씨는 각 시장마다 특성과 주변 생활환경을 분석해서 계획을 짜야 시장살리기가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모델시장을 경동시장과 청량리 일대 시장을 삼았다. 이 일대 시장은
전체 약 22만㎡의 넓이로 그 안에는 동대문구 인정시장 10곳 가운데 7곳이 있다. 또 주변에는 인정시장에 버금가는 골목시장과 주변상가가 있다. 블록 외부에는 서쪽에 서울약령시, 북쪽에는 음료 도매상이 밀집해 있는 깡통시장(제기상가번영회), 그리고 남쪽에는 청량리수산도매시장과 야채수산시장이 있다.

블록에서 비상업지역을 제외하면 약 17만㎡의 광대한 시장이다. 면적으로 보자면 동양최대라고 하는 가락시장의 3분의 1 정도지만 상인수와 상업공간만을 따지면 시장으로서는 국내 최대 규모이기 때문에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의 제안서를 보노라니 그의 땀 냄새가 진하게 난다. 그의 발품이 눈앞에 선하다. 그의 지난한 천착에 경외감이 든다. 물론 계획과 현실의 괴리와 오류가 있을지언정 한 사람의 노력이 수만~수십만의 생계를 윤택하게 하고 수백만의 소비자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면 그 정도의 오차는 무시할 수 있겠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류가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도 책상에서 수 억원을 까먹는 탁상행정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기자에게 제안서를 보낸 이유는 이를 검토하고 현실화시킬 수 있는 곳을 연결해 달라는 데 있다. 문득 박원순 서울시장이 떠올랐다.

박원순 씨가 서울시장이 되기 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시절에 박 시장과 정 씨가 만났다. 정 씨가 시장살리기 열변을 토하는 장면을 박 시장이 동영상으로 찍어서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경청하면서 맞장구치는 모습이 생각났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박 시장이 그의 제안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여 보면 어떨까 싶다.

유성호 기자 (경제매거진
에콘브레인 편집장ㆍ평론가 / shy1967@econbra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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