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초대석] 7일 국내 개봉 ‘가족의 나라’ 재일교포 영화감독 양영희

니가타항서 북송선 탄 세 오빠 40여년전 헤어지던 모습 생생
일시 귀국 후 돌아갈때 못잡아…
日서 태어났지만 국적은 한국, 극단활동때 개명 요구 받기도
민족차별 아닌 인권문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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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 일본 오사카에서 북한으로 건너간 오빠 3명 가운데 막내 오빠가 1999년 종양치료를 받기 위해 일시 ‘귀국’한다. 체재 예정 기간은 3개월. 가족들은 감시자의 동행 하에 28년 만에 재회한다. 하지만 오빠는 북한 당국의 갑작스런 지시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2주 만에 북한으로 되돌아간다.

재일교포 2세 양영희(49) 감독이 만든 영화 ‘가족의 나라’는 그의 이런 특별한 가족 이야기를 재구성해 만든 작품이다. 양 감독은 1964년 오사카에서 조총련 간부인 아버지와 양복 재단을 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3남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나 조총련계 학교에 다녔다. ‘조국으로 돌아가자’는 ‘북송사업’에 따라 1971년 겨울에 둘째(1954년생)와 셋째 오빠(1956년생)가, 1972년 봄에는 큰 오빠(1952년생)가 북한에 들어갔다.

일본에서 지난해 8월부터 상영되고 있는 ‘가족의 나라’는 소설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내용을 차분하게 영화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에는 가족에 대한 애절한 마음이 잘 표현됐다. 북송된 사람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북한과 일본 정부의 태도에 대한 비판도 담겨 있다. ‘가족의 나라’는 올해 일본 요미우리문학상 희곡시나리오부문과 일본 영화상인 제55회 블루리본상 작품상을 비롯해 각종 상을 휩쓸며 일본의 대표적 영화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7일 개봉한다.

일본에서 한국 이름을 내걸고 자기 얘기를 해온 양 감독은 “너무 많은 상을 받아 압도되고 있다”면서 “이제 겨우 스타트라인에 섰다는 실감이 든다”고 말했다. 양 감독과 인터뷰는 지난달 말 도쿄 시부야의 영화 제작사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2011년 연출한 다큐멘터리 ‘굿바이 평양’ 등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가족 이야기다.

“북한 가족 이야기를 비롯한 일본 내 터부를 다뤄 재미도 없고 장사도 안 되는 영화만 계속 만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 가족 얘기가 재미있고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소재라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얘기를 토해내야 다음으로 갈 수 있어 나에게는 ‘숙제’가 돼 버렸다. 그 결과가 나온 것 같아 기쁘다.”

-‘가족의 나라’ 내용은 모두 사실인가.

“대부분 사실이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실제로는 북한으로 간 오빠가 3명이지만 영화에서는 한명으로 단순화했다. 영화 후반부에 오빠가 북한으로 돌아가려 하자 여동생이 자동차 문을 잡고 버티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러지 않고 그저 오빠를 바라보기만 했다. 영화에서는 오빠를 그냥 보내고 싶지 않은 심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극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했다. 말을 통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눈빛과 몸, 마음으로 이야기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고 다시 헤어질 때조차 롱샷과 원경으로 처리했다. 나는 이 방법밖에 알지 못한다. 컷을 쪼개는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빠들이 북한으로 떠났던 기억은 남아 있는가.

“오빠들이 니가타항에서 귀국선에 타던 모습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어머니와 나는 한복을 입고 인공기를 흔들었다. 하지만 양복을 입은 아버지는 멀리서 쳐다보기만 했다. 어디 갔다가 금방 올 것 같이 생각했다. 오빠들은 배 위에서 ‘영희야, 피아노 연습 열심히 해라’는 편지를 보냈다.”



-일본 내 영화 상영 상황은 어떤가.


“현재 일본 전역 100관이 넘는 곳에서 상영되고 있다. 처음에는 30∼40관 정도에서 상영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영화관이 없는 지방에서도 보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했다. ‘장사가 안 되어도 좋으니 내 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싶다’고 영화관 주인들이 연락해 오기도 한다. 독립영화치고는 관객 숫자도 굉장히 많은 편이라고 들었다.”

-지금이야 분위기가 좋지만 개봉 전까지는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제작 예산이 너무 적어 촬영은 2주일밖에 하지 못했다. 하루도 여분이 없었고 엑스트라 한 사람도 추가할 수 없을 정도로 여건이 어려웠다. 유명 주연 배우나 음악담당 스텝도 ‘이 영화에 참가하는 것은 비지니스가 아니다. 마음으로 참가하고 싶다’고 하더라. 이들에게 커피 한잔 제대로 사주지 못했다. 그런 작은 위로조차 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창피했다. 개인적으로는 촬영 기간 전기값을 내지 못해 아파트 전기가 끊긴 일도 있었다.”

-한 영화제가 양 감독을 운명처럼 영화의 세계로 이끌었다고 하던데.

“2년마다 10월에 열리는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였다. 1990년대 초부터 10년쯤 이 영화제에 다닌 것 같다. 일본에서는 보통 남과 다른 것을 불편하게 여긴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차이가 나는 점은 감추려 하는 게 일반적이다. 개성적으로 살자고 하지만 그러면 남들로부터 공격당한다. 그런데 영화제에서 본 가족 다큐멘터리들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어느 가족이 더 이상할까’ ‘어느 가족이 더 불행할까’를 경쟁하는 것 같았다. 화장한 얼굴이 아니라 민낯을 경쟁하는 것 같아 너무 재미있었다. 나도 ‘아버지는 왜 북한을 지지하지’, ‘왜 하필 아들들을 북한에 보냈지’, ‘왜 우리 가족은 이렇게 살지’라는 의문을 갖게 됐다. 그리고 우리 가족 이야기를 영화 소재로 보기 시작했다.”

-양 감독은 프리랜서 PD로 활동하면서 재일교포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다 1997년 미국 뉴욕 뉴스쿨대에 입학했다. 6년간의 뉴욕 생활은 어땠는지.

“학교에서 장학금도 받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바쁘게 살았다. 일본에 있을 때는 어떻게 달라져야 더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무엇을 감추거나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아도 됐다. 내 특징을 나타낼수록, 나를 100% 드러낼수록 뉴욕 사람들은 더 흥미를 가졌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가족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를 꼭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양영희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살아가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오사카에서 극단 활동을 할 때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면접을 볼 때마다 ‘당신은 괜찮은데 양영희라는 이름이라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들은 ‘다나카’나 ‘스즈키’ 같은 일본 이름을 쓰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거절했다. 그때마다 ‘이름이 뭘까, 왜 나는 타협하지 못할까’ 궁금했다. 방금 만난 사람이 부모에게서 받은 이름을 고치라 마라 할 권리가 어디에 있느냐고 화가 났던 것이다. 민족적인 차별이 아니라 뭔가 불공평한 것에 대한 인권적인 문제였다. 그것이 내 근본이었다.”

-이제 영화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 아닌가.

“태어난 곳은 일본 오사카이고 국적은 한국이지만, 나는 자신을 한국인이나 일본인으로 범주화하지 못했다. 진짜 내 나라라고 편하게 느끼고 말할 수 있는 마당을 찾으면서 살아온 것 같다. ‘가족의 나라’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면서 50세가 다 된 지금에야 겨우 내가 있을 자리가 마련된 것 같은 느낌이다. 재일교포가 한국 이름을 가지고 자기 주장을 하며 일본에서 산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다. 뒤집어 말하면 재일교포도 이제 실력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됐기 때문에 앞으로 ‘차별’이라는 불평을 하지 못할 것 같다.” 

대담=김용출 도쿄 특파원 kimgija@segye.com

양영희 약력 ▲일본 오사카(1964년) ▲미국 뉴스쿨대 커뮤니케이션학부 석사과정 수료(2003)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2006) ‘굿바이 평양’(2011) 연출 ▲영화 ‘가족의 나라’ 연출(2012) ▲64회 요미우리문학상 희곡시나리오부문 수상(2013) ▲55회 블루리본상 작품상 수상(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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