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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살람, 중동]<17> 이집트, 박물관 안의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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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3-07 22:23:52 수정 : 2013-03-07 22: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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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를 타면 한번에 닿는 곳
버스에서 내리기 무섭게 낙타 호객꾼들이 몰려든다
입장료를 내고 만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그 위용에 흥분도 잠시…
관광산업에 휘둘리는 인류문명의 유적과 마주하니 씁쓸하다
이집트에 도착했을 때 어렴풋이 ‘사막’이란 생각만 갖고 있었다. 이 피라미드의 나라에선 낙타를 타고 아직도 못 찾은 피라미드와 모래 속에 갇혀 있는 수많은 보물을 찾아다녀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카이로공항에 도착해 우표 같이 생긴 스티커가 비자라는 말을 듣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를 것이라며 스스로 기대치를 낮춘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카이로 시내로 향한다. 검은 차도르를 쓴 여인들이 눈에 띄는 걸 보니 아직 나는 이슬람 영향권에 있는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잘 세워진 건물들을 보는 것은 영 어색한 일이다. 동화 속 ‘어린 왕자’가 다녀간 사하라사막이 있는 곳이어야 하는데, 왜 이곳에 현대식 건물과 자동차가 즐비할까.

중국에서부터 육로와 바닷길로만 다니자고 다짐했던 나는 비행기를 탄 것이 못내 아쉬웠다. 땅 또는 바다에 놓인 국경을 지나면서 공기가 달라지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껴야 하는데, 비행기로 뚝 옮기고 나면 그냥 어리둥절할 뿐이다. 예멘에서 이집트행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탔지만 기운이 영 개운치가 않다. 그래도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만난 검은 차도르의 여성들은 예멘 사람이었다. 나도 예멘에서 왔다고 하니, 그렇게 반가워할 수가 없다. 어쩌면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왔는지도 모르겠다. 이 여성들 덕분에 이집트가 조금은 편안하게 느껴졌다.

카이로는 참 재미있는 도시다. 한쪽에는 거대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자리 잡고 있고, 다른 쪽에는 잘 지어진 현대식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이렇게 뒤섞인 곳은 사람들도 뒤섞여 있다. 재미있을 법한 이야기를 많이 간직한 곳이다. 소설에 나오는 연금술사도, 인디아나 존스처럼 보물을 찾는 모험가도, 신기루 속의 오아시스도 만날 것만 같다.

피라미드를 먼저 보고 싶진 않았다. 버스 타고 가면 쉽게 볼 수 있다는 말에 실망해서일 것이다. 카이로에서 가장 먼저 본 건 박물관이었다. 이곳을 그냥 도시라고 생각하고 박물관도 보고 다른 좋은 곳도 구경한 다음 피라미드는 나중에 다른 도시로 이동하듯 그렇게 가보고 싶었다. 이집트 보물이 프랑스 루브르박물관보다도 더 적다는 카이로박물관은 씁쓸하고 떨떠름한 표정을 자아낸다. 현대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는 미술관에 갔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어쩌면 솔직하다고 느껴졌다. 모호함이 없다. 현대 미술 특유의 모호함 없이 솔직하게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모호함은 살바도르 달리의 모호함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리고는 강을 건넌다. 노을이 질 무렵 다리를 건너는 건 행운과 동시에 낭만과 추억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이게 과연 나일강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좀 서글펐다. 내가 어렸을 때 배운 기억으로는 세계 4대문명이 있는데 황하·메소포타미아·인더스·이집트문명이다. 나는 지금 이집트문명의 발상지이자 그동안 역사·지리 서적에서만 봐온 나일강 위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우리나라 서울의 한강처럼 그냥 도시 속의 강일 뿐이다. 물론 다른 지역을 흐르는 나일강은 좀 다르리라.

이집트의 상징이라고 할 거대한 스핑크스. 얼굴에 새들이 다닥다닥 앉아 있어 멀리서 보면 피부병에 걸린 것 같다.
해가 지고난 뒤 잊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감동할 만한 달이 떠오른 것이다. 보름달인데 너무 커서 주변 사람들과 ‘저게 달이 맞느냐’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물론 이집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달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 달이 너무 크고 가까워서 ‘여기는 우주 법칙이 뭔가 잘못된 것 아닐까’라는 의심까지 품었다. 역시 나일강 줄기에서 맛본 경치는 남달랐다.

이집트의 정식 명칭은 ‘이집트아랍공화국(Arab Republic of Egypt)’이다. 대륙으로 치면 아프리카 북부에 속해 있지만 중동 지역과도 맞닿아 있다. 그리고 수니파 이슬람교인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이슬람 세력이 어디서 나와 어디까지 미쳤는지 생각해보면 이집트 사람들은 당연히 무슬림이다. 나는 점차 이슬람 종교와 문화의 근원지로 가고 있다.

물담배 향기가 나는 곳으로 가니 이슬람 복장을 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함께 물담배를 피우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그 틈에 비집고 끼어 앉았다. 이슬람의 모든 나라에서 가장 좋은 것은 ‘물담배를 피우면서 마시는 차’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더운 바람이 스칠 때 뜨거운 ‘차이’ 한 잔을 하면 모든 에너지가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 차이는 홍차 종류의 차를 끓여서 마시는 것으로, 우유를 넣거나 설탕을 넣는 건 나라마다 다르다. ‘차이’라는 말도 나라마다 약간 다르게 쓴다. 예멘에서는 ‘샤이’였고, 파키스탄에서는 ‘짜이’였고, 이란에서는 ‘차이’였다.

카이로에서 흔히 먹는 음식. 우리나라 비빔밥을 닮았다.
이제 피라미드에 가보겠다고 결심하고는 짐을 챙겨 거리로 나섰다. 피라미드로 유명한 가자지구는 카이로 한쪽의 사막에 있다. 시내버스를 타고 한 번에 갈 수 있을 만큼 가깝다. 버스에서 내리니 낙타 호객꾼이 몰려든다. 낙타를 타고 피라미드까지 가라는 것이다. 그곳 도로는 아스팔트도 깔려 있었다. 사막을 걸어야 할 낙타로 하여금 이런 아스팔트 길까지 걷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역시나 안 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10분 정도만 걸어가면 바로 피라미드 입구가 있다. 어차피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을 거면서 낙타 호객꾼까지 두고 돈을 요구하는 게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안에 들어가면 내 우울한 기분을 확 씻어줄 뭔가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낙타를 타고 몇 시간을 걸어 망원경으로 피라미드가 맞는지, 아니면 신기루를 잘못 본 것인지 헷갈리면서 찾는 게 피라미드라고 생각했던 내가 지금 버스를 타고 피라미드에 도착해 입장료를 받는 입구를 지나고 있다. 그러니 피라미드는 내게 얼마나 더 많은 실망을 안겨줄 것인가.

피라미드는 정말 거대하게 컸다. 사막은 끝도 없이 넓고 나는 한없이 덥기만 했다. 하지만 피라미드를 만나는 것은 모든 것을 제치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하나하나 쌓아 올린 돌들이 이 거대한 피라미드를 이루었다니, 인간의 힘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피라미드 내부는 신비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나는 진정한 피라미드를 봤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피라미드는 내게 미지의 대상이고, 모험의 끝이었다. 그것을 이런 식으로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단지 커다란 역사박물관에 왔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나았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옮겨다 놓은 아주 큰 역사박물관인 셈이다.

스핑크스의 얼굴은 저주가 걸려서 그런지 새들이 까맣게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스핑크스는 대지 표면보다 훨씬 아래 깊숙한 곳에 위치해 그의 등은 겨우 대등한 위치에서 볼 수 있다. 그래도 그 까만 얼굴은 한참을 올려다봐야 할 만큼 거대했다. 이런 것들을 다 보고 돌아선 곳에는 끝없는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그 사막 지평선 위로는 그림같이 낙타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한 편의 아름다운 풍경화 같지만 정체를 알고 나면 그 역시 순진한 여행객을 태운 낙타와 호객꾼 행렬일 뿐이다.

역시 나는 피라미드를 본 것이 아니다. 박물관 안에서 피라미드를 봤을 뿐이다. 피라미드는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그보다 더 의미가 있는 건 피라미드로 향하는 길, 피라미드를 찾기 위한 길이리라. 이런 생각을 떨칠 수 없게 만든 건 어디에나 흔한 패스트푸드점이다. 유명한 미국 상표가 커다랗게 내걸린 그곳 건물 2층에서 피라미드가 보인다는 것은 이곳이 실은 박물관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언젠가는 내가 직접 피라미드를 찾아 나설 것이다. 그때는 ‘피라미드를 봤다’고 제대로 말할 수 있겠지.

가자지구에서 그나마 볼 수 있는 사막에 둘러싸인 피라미드 풍경. 사진 속 피라미드는 가장 큰 피라미드는 아니다. 제일 큰 피라미드는 관광객으로 뒤덮여 있어 못 찍었다.
이런 깊은 감상과 씁쓸함에 잠겨 있을 때 숙소에서 들려온 소식이 있었다. 사막으로 가는 팀을 짠다는 것이다. 바하리아사막으로 간다고 한다. 그것도 물론 평범한 ‘관광’이겠지만, 그래도 나의 허전한 마음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가기로 한다.

강주미 여행작가·‘중동을 여행하다’ 저자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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