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전자책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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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할 때마다 책을 정리하는 게 가장 큰 일이라고 하소연하는 이들이 많다. 버리자니 손때 묻어 애틋하고 끼고 가자니 망설여지는 책들이 한두 권이 아니다. 공간이 한정돼 있고 이삿짐도 만만치 않아 애물단지이기 십상이다. 우선순위를 매겨 냉정하게 자르는 수밖에 없다. 오래된 책일수록 추억이 묻어 있어 버리기 아깝지만 언제까지 껴안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자책 시대에는 이런 걱정을 할 필요 없다. 수천권을 자신의 계정에 저장해놓고 언제 어디서나 간단히 원하는 책을 화면에 띄워 읽을 수 있다.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며 필요한 구절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로 전송해 지인들과 공유할 수도 있다. 눈이 침침한 사람은 글자 크기를 키우면 되고 청각장애인은 텍스트를 읽어주는 기능을 활용할 수도 있다.

문제는 콘텐츠다. 아직까지 우리 전자책 시장은 야한 소설이나 자기계발서 같은 가벼운 콘텐츠들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전자책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종이책을 많이 접하고 소득이 높을수록 전자책에도 관심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이 원하는 콘텐츠는 전자책으로 출시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최근 들어 한국 전자책 콘텐츠도 무거워질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외국문학 전문 출판사인 ‘열린책들’에서는 ‘세계문학 앱’을 출시했다. yes24는 박경리의 ‘토지’와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담은 ‘100년의 걸작-박경리 조정래 에디션’도 내놓았다. 민음사는 ‘디지털 싱글 전자책’ 시리즈를 내놓기 시작했다. 동서양의 고전을 엄선해 ‘잡지 기사보다 길고 단행본보다 짧은’ 분량으로 우선 전자책으로 출시하고, 나중에 종이책으로 묶는 콘셉트이다.

한글만 고집하지 않는다면 전자책 콘텐츠는 풍성한 편이다. 자원봉사자들이 대거 참여한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의 결과로, 저작권 시효가 지났거나 저작권자의 동의를 얻은 공짜 전자책만 3만4000여 권이나 올라와 있다. 디지털 활자 시대의 해일을 손바닥으로 막을 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 전자책 발행 주체별로 전용 단말기가 다르고 시장의 룰도 제각각이다. 콘텐츠 확충과 함께 혼돈스러운 가격 체계도 정리가 시급한 현실이다.

조용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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