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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강국의 길을 묻다] (50) 줄줄 새는 군사기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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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5-15 15:26:48 수정 : 2013-05-15 15:2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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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사업'·'린다 김 사건' 등 90년대부터 잡음 끊이지 않아
관련업무 수행한 예비역 고용…업체들 '전관예우' 통한 공략
200만弗 이상 사업 규제 무위…투명한 시스템 관리 선결과제
방산업계의 고질적인 군사기밀 유출 문제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얼마 전 국군기무사령부가 미 보잉사의 전 에이전트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차기전투기(F-X)와 대형공격헬기(AH-X) 도입사업 관련 군사기밀 유출을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군사기밀 유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군 당국이 추진하는 무기도입 사업 때마다 잡음이 불거져 왔고 그로 인해 일부 사업은 중단되거나 연기되는 홍역을 치러야 했다. 

◆사업마다 군사기밀 유출


대형 무기도입 사업을 둘러싼 군사기밀 유출에는 늘 군의 핵심요직에 있는 현역 및 예비역들이 연루돼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3년 발생한 율곡사업 비리다. 당시 감사원이 율곡사업 관계자들의 군사기밀 유출과 비위 혐의를 포착하고 이들을 고발함에 따라 세간에 알려졌다. 율곡사업은 우리 군의 무기와 장비를 현대화하는 작업이었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무기중개상으로부터 뒷돈을 받은 이종구·이상훈 전 국방부 장관과 한주석 전 공군참모총장, 김철우 전 해군참모총장 등이 구속기소됐다. 또 군 출신인 무기중개업자 정의승씨가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되고 방산기업인 현대정공, 삼성항공 관계자들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김대중정부 때인 1998년 터진 ‘린다 김 사건’은 로비스트와 군 고위인사들 간의 불륜 관계까지 폭로된 ‘막장 드라마’였다.

대북 정보수집 능력을 높이기 위해 통신감청용 정찰기, 영상정보 수집용 정찰기를 확보하는 백두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린다 김과 군 고위인사들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났고, 린다 김은 불법로비 의혹을 받았다. 사건에 연루된 이양호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다수의 정·관계 인사는 고개를 숙여야 했고, 예비역 공군 장성과 현역 영관급 장교들은 군사기밀을 빼낸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러한 군사기밀 유출사건은 2000년대에도 계속된다. 2002년 F-X 1차 사업 당시 공군 대령은 방산업체에 F-X 사업 계획을 빼돌렸다가 덜미가 잡혔고, 2004년 해군전력증강사업 때는 해군 소령이 방산업체에 3급에 해당하는 군 기밀을 전달하다 적발됐다. 2009년에는 한국형 전투기 개발(KF-X) 사업과 관련, 공군 예비역 소장이 스웨덴 방산업체인 사브사에 사업계획을 빼돌린 사실이 들통나기도 했다. 2011년 12월 김상태(83) 전 공군참모총장은 공군 전력증강사업과 관련한 군사기밀을 미국 록히드마틴에 넘긴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1월 서울 용산구 방위사업청에서 열린 차기전투기 사업설명회에서 미국의 보잉사, 록히드마틴사, 유럽의 EADS사 등 사업참여 희망업체 관계자들이 제안요청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전관예우는 군사기밀 유출 온상


무기도입 사업은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된다. 사업 담당자들에 대한 외부 인사의 접근은 철저히 차단된다.

업체들은 자연 관련 업무를 수행했던 예비역들을 다수 고용, 사업 담당자들에게 접근한다. 이른바 전관예우를 통한 공략이다.

박근혜정부 초대 국방장관 내정자로 지명됐다가 낙마한 김병관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의 경우도 군 전역 후 무기중개업체에서 고문으로 활동했던 경력이 드러나 낭패를 봤다. 이번에 압수수색을 당한 보잉사 전 에이전트도 예비역 장성과 영관장교를 고용, F-X와 AH-X 사업에 대한 군사기밀을 빼냈다는 후문이다.

방산업체에 취업한 한 예비역 육군 장성은 “무기도입 업무를 담당하는 계급은 대부분 중령이나 대령급으로 군 생활을 함께 했던 선배가 연락해 식사 한번 하자고 하면 이를 뿌리치기 어렵다”면서 “한번 만남이 이뤄지면 이후에는 술자리나 골프접대로 이어진다”고 털어놨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입수한 정보는 해당 업체가 각종 무기도입 사업에서 유리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유착 정도가 심하면 군사기밀 유출 사태로까지 비화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방산업체 관계자들은 “무기중개업체의 경쟁력은 현역시절 굵직한 사업을 진행해봤던 예비역들을 얼마나 영입하느냐에 달렸다”면서 “무기중개상들이 군사기밀을 빼내는 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 업계에서는 만연해 있다”고 전했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무기중개업체는 1200여개에 달하고 이곳에서 일하는 예비역의 수는 파악조차 안 될 정도다.

방위사업청은 무기중개업체에 지불하는 중개료로 전체 무기도입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2010년부터 200만달러 이상 사업에서 무기중개업체를 배제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밑에선 여전히 무기중개업체들이 군의 무기 도입 사업에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기도입 업무를 다루는 군 관계자는 “무기도입 사업 담당자들과 무기중개업체에 몸담은 예비역들 간의 유착고리를 완전히 근절할 수는 없다”면서 “군사기밀 유출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시스템을 보다 투명하게 관리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조만간 방사청의 핵심 기능이 국방부로 이관되면 기밀 유출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병진 선임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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