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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살람, 중동] 〈45〉 세네갈 장미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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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2-05 21:59:39 수정 : 2013-12-06 11: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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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에서 가장 유명한 곳을 손꼽으라고 한다면 고레섬과 장미호수일 것이다.

장미호수는 말 그대로 장빗빛을 띠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다카르에서 장미호수를 가려면 세네갈 북쪽에 위치한 생루이 지역으로 가야 한다. 생루이는 예전에 프랑스가 서아프리카 전체를 지배하고 있을 당시의 수도였다. 그 당시는 나라가 나눠지기 전이다. 또 말리로 연결된 다카르 랠리의 종착지이기도 하다. 다카르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는 곳이다. 가는 길에는 가끔 소들이 거닐고, 염소들이 뛰어다닌다. 북쪽으로 향하는 도로는 모리타니 국경을 지날 때 왔던 곳이다.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때의 기억들을 더듬어 본다. 처음 도착한 나라에서는 낯설고 설레었지만, 이제는 이 또한 일상처럼 쉬운 길이 되어버렸다. 이런 낯선 일상들이 여행의 묘미를 더해 준다.

장미호수는 관광지답게 많은 상인들이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고,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었다. 호수는 생각보다 넓었다. 장미호수라는 말이 와 닿는다. 붉은빛이 도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한 장밋빛이다.

그곳은 여행객들에게는 신비로운 호수지만, 세네갈 사람들에게는 소금 생산지로서 의미가 크다. 바닷물 염도의 10배가 넘는 염분을 지녔기에 소금을 얻어내기에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염도가 높고 미네랄이 풍부한데, 태양광선의 작용으로 붉어졌단다. 하지만 이런 설명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붉은색이 마냥 신비롭기만 하다. 핏빛 같은 물이 끈적끈적해 보인다.

수영복을 갈아입고 들어가 봐야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누워서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 염도가 높다고 했고, 가라앉을 수가 없다고 했다. 아무리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라도 이곳에서는 가라앉지 않고 둥둥 뜨기만 한다. 몸이 뜨는 것이 마치 무중력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에 떠서 몸을 돌리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가라앉지 않는다. 사해와 같은 원리이고 같은 느낌이다. 장미호수가 사해와 다른 것은 빛깔의 아름다움이다. 물속이 비칠 정도로 붉은빛이다. 자칫 장난이라도 치다가 눈에 물이 들어가면 위험해질 수도 있다. 눈이 따가워서 견딜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이 찾아온다.

장미호수는 사람들이 둥둥 떠다닐 정도로 염도가 높다.
그래서 생수를 준비해 가야 한다. 바로 생수로 씻어내야만 한다. 장미호수의 물 맛은 ‘이것이 소태구나’를 알게 해준다. 그렇다고 직접 마셔 볼 필요는 없지만 나는 물 위에서 장난을 치다가 호숫물이 눈에도 들어가고, 입에도 들어갔다. 이런 건 직접 경험해 볼 필요는 없는데, 원하지 않아도 꼭 경험하게 된다. 한편에서는 세네갈 사람들의 생업이 이뤄지지만, 또 한편은 여행객들의 놀이터로 남겨두었다. 이 신비로운 호수에 누가 안 빠지고 견디겠는가.

이들의 생업은 이 물에서 소금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장미호수는 그렇게 모두에게 기쁨의 선물을 안겨주었다. 나는 장미호수의 매력에 흠뻑 빠져서 허공을 떠다니고 있었다. 호수에 몸을 띄우고 하늘을 바라보니, 푸르른 하늘에는 구름만이 바람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나도 가끔은 바람이 이끌어 준다. 파란 하늘과 빨간 호수의 만남이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어디에선가 음악이 들려오는 듯하다. 그것이 진짜로 들려오는 음악이었는지 나의 상상 속에서 나오는 것인지는 지금도 헷갈린다. 지난번에 세네갈 친구들이 연주해 줬던 음악이 바람을 타고 나에게 전해졌나보다.

호수에 떠서 한참 동안 있으니, 내가 구름을 타고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모든 자연법칙이 섞여 있다. 하나하나 느끼면서 장미호수에 떠 있었다. 햇살이 따가운지도 모르고 있다가 나오니 나도 세네갈 사람들과 비슷한 피부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를 보니, 이젠 나의 모습이 아프리카에 적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슬람 지역에서는 중동 사람의 모습으로 적응해 갔었는데, 이제는 아프리카에 나도 익숙해졌다. 아프리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람들의 모습 때문이다. 여전히 새벽에는 모스크에서 알라의 소리가 들려서 잠에서 깬다. 웅장하고 화려하면서도 자신들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중동의 모스크와는 달리, 이곳의 모스크는 소박하다. 이슬람도 이곳에 와서 이들에게 새롭게 적응한 것이다. 같은 종교이지만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아프리카 이슬람 문화다. 

장미호수에 정박해 있는 배.
다시 돌아온 다카르는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다카르는 자연에 심취된 나에게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경적 소리를 울려대며 비켜 서라고 했다. 숨 쉬기도 힘든 매연을 뿜어대면서 내 옆을 아스라히 지나가는 차량들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보이지 않았던 사람이 하얀 치아만을 빛내며 나를 끌어당겨줬다. 고맙다고 말하기도 전에 그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다카르는 밤이 되면 자동차와 사람들이 함께 뒤엉켜버려서 정신없는 길거리가 된다. 모든 도로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는 시장 근처에는 차도와 인도의 구분조차 없어서 더 심하다.

그 시장은 중고물건만 파는 곳인데 아침 일찍 가야 좋은 물건들을 고를 수 있다. 신기한 물건들부터 입던 속옷까지 모든 것들을 내다파는 곳이다. 그곳에서는 카메라를 꺼내기 조차힘들다. 소매치기도 걱정이 되지만, 사람이 워낙 많아서 찍기도 힘들고 또 나도 물건을 골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서 보석 같은 가치 있는 물건을 찾아내는 일이 재밌다. 값져서 보석이 아니라, 신기하고 특이해서 나에게는 보석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다카르 가는 길에서 만난 소들.
다카르에서는 중국시장도 자주 갔다.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곳으로 손님들도 대부분 중국인들이다. 차이나타운이 세네갈의 상권을 뺏어갔기 때문에 아시아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는 않다. 물론 일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말하면 그들은 금세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내가 중국시장을 간 이유는 음식재료 때문이었다. 한국음식을 해 먹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재료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중국시장이다. 가끔은 한국음식을 먹고 싶었다. 중국시장에는 당면에서 배추, 고춧가루 등 없는 것이 없다. 신기하게도 중국사람들은 나를 보면 단번에 한국인인 것을 알아맞힌다.

다카르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지기 시작했을 때쯤 나는 또다시 떠날 채비를 했다. 세네갈 안에 갇혀 있는 작은 나라 ‘감비아’로 가기로 했다. 결정하고 나면 짐을 꾸려서 떠나기만 하면 된다. 나는 언제나 훌쩍 떠나 버리면 되는 여행자다. 감비아로 향하는 길이 어떨지 설렌다.

강주미 여행작가·‘중동을 여행하다’의 저자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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