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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살람, 중동] <47> 공동체 마을의 삶에 빠져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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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2-19 21:27:55 수정 : 2013-12-20 14: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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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만큼 소박한 사원… 새벽마다 알라의 부름 소리
감비아 비자 유효기간이 이미 끝났는데도, 나는 감비아를 떠나지 않았다. 세네갈 비자도 받았지만 떠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감비아에 반해 버려서 비자 문제는 생각도 하지 않고 머물고 있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한적한 강가에서 만난 친구 때문이다. 그의 말은 귀 기울여서 열심히 들어야만 했다. 영어와 원주민어가 섞여 있는데 무엇을 말하는지는 자세히 들으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원주민어도 익숙해져서 영어를 골라내기는 쉽진 않다.

‘알라쥐’, 이것이 그의 이름이다. 덩치는 산 만했고, 눈의 흰자위를 빼면 온몸이 빛나는 까만 피부로 뒤덮인 감비아인이다. 그냥 체격만 좋은 것이 아니라 미국 프로농구 선수처럼 다부진 근육질 몸이다. 하지만 내 친구 알라쥐는 덩치는 크지만 쪼그리고 앉아서 색칠 공부 하는 것을 좋아한다. 부러진 색연필로 밑그림에 색을 조심스럽게 칠하고 있었다. 섬세하게 그림을 그렸다. 큰 덩치에 색칠 공부 하고 있는 모습이 재밌어서 한참을 웃었지만 정작 알라쥐는 내 웃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세네갈 비자를 신청해 놓은 날 만난 사람이 바로 이 귀여운 친구다.

그는 흔쾌히 자신의 동네로 나를 데리고 갔다. 작은 마을이 아기자기하니 예뻤다.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우리나라의 시골마을과 비슷했다. 알라쥐네 집은 여럿이 모여 사는 공동체 안에 있었고, 이곳은 대부분이 그런 구조였다. 또 과부들만 모여 사는 공동주택이 따로 있었다. 이곳만 그런 것인지 감비아의 다른 곳도 그런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렇게 살고 있었다.

알라쥐의 집은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여러 가구가 공동으로 가운데 마당을 사용하고, 그 둘레를 한 칸 방 집들이 메우고 있었다. 알라쥐는 부인과 함께 방 한 칸에서 살고 있었고, 그의 형이 건넌방에 살고 있었다. 처음엔 몰라서 그 방을 쓰기로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형이 친구네 방으로 옮겨간 것이었다. 아침이면 나를 위해 씻을 물을 페트병 하나에 담아서 준다. 그것은 우물 하나 밖에 없는 이 마을에서 구해오기 힘든 물이었을 것이다. 미안한 마음에 겨우 양치질과 고양이 세수를 한 후 물을 남겼다.

강렬한 색깔로 칠해진 감비아 마을의 집들
마을의 우물은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데 그곳에서 물을 길어오는 아이들이 동네에 물을 제공해 준다. 그 우물물은 흙탕물에 가까웠지만 이 마을의 유일한 식수원이다. 그 우물까지 가는 데 벌써 땀을 한 바가지 흘렸다. 아이들과 함께 갔는데 아이들도 힘들었는지 야자 열매를 따기 시작했다. 야자 열매는 단단하지만 아이들은 쉽게 구멍을 내어 나에게 건넸다. 갈증에는 역시 야자수가 최고다.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우물물을 길어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당나귀가 끄는 마차에는 물이 한가득 실렸다. 뿌듯한 마음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이들의 식수는 우물에서 구해올 수 있지만 나의 식수는 그렇지 않았다. 그 우물물에 면역성이 없는 나는 다른 물을 구해야만 했다. 구멍가게에 가서 생수를 물어봤지만 역시나 없단다. 하지만 구해다 주겠다고 했다. 다음에 다시 가니, 1.5ℓ 생수병에 든 물을 구해놨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그 병에는 제조연도가 희미하게 써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많이 지나진 않았다. 앞으로도 더 구해 달라고 부탁하고 생수 한 병을 사와서 마시니 마실 만했다.

이 마을에는 작은 이슬람 사원 하나가 있다. 언뜻 봐서는 사원인지도 모를 정도로 작고 허름했다. 그래도 이슬람 사원의 상징인 돔은 가지고 있었다. 이곳도 역시나 새벽마다 알라의 부름 소리가 울려퍼진다. 그 시간이 오전 5시에서 6시다. 덕분에 나도 일찍 잠에서 깼다. 모두가 이슬람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러 갔다. 오늘은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길까를 기대하면서 거리로 나가본다. 여자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기만 하면 서로 머리를 땋아 준다. 곱슬거리는 머리는 그냥 기르면 관리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촘촘히 가닥을 땋아 붙여 놓으면 예쁜 레게 머리가 되는 것이다. 나도 머리를 땋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머리를 자주 감을 수가 없어 나 역시 머리 관리가 힘들기 때문이다. 나도 머리를 땋아 달라고 하니, 소개해준 집이 있다. 그 집은 이 마을에서 꽤나 잘사는 집이었다. 미용실이 없는 이곳에서 가장 머리를 잘하는 곳이라서 소개해준 것이다.

감비아의 작은 마을 안에는 소박한 이슬람 사원이 하나 있다.
아프리카에 진출한 우리나라 제품 중에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이 가발과 사진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곱슬머리 때문에 가발 착용을 좋아한다. 또한 사진에 대한 관심도 상당하다. 현재 가발과 사진 인화 분야는 아프리카 전역에서 한국 기업을 최고로 친다고 한다.

그집의 주인여자가 나를 보더니 나한테 어울리는 스타일로 땋아 주겠다며, 그 작업을 자신의 딸에게 시켰다. 주인 여자는 레게 머리를 땋는 데 뛰어난 기술자였다. 내 머리를 땋는 속도가 놀랄 만큼 빠르고 정확했다. 내 레게 머리는 금세 완성됐다. 긴 머리였던 내 머리는 아주 깔끔해졌다. 이렇게 머리를 땋아 놓고 보니, 왜 이들이 레게 머리를 하는지 쉽게 이해된다.

하지만 며칠 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햇볕을 많이 쬐지 않았던 내 두피가 많이 놀랐던 것 같다. 며칠 후 잠을 자고 있 는데 머리에서 물이 흘러내렸다. 처음에는 피가 흐르는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두피에 화상을 입어서 물집이 잡혀 있었다. 자면서 뒤척이니 그 물집들이 터져서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끔찍한데도 그렇게 아프진 않았고, 아프리카의 태양이 강렬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감비아의 아이들은 카메라가 마냥 신기한 듯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나는 그 동네 사람들과 친해지고 있었다. 그들은 축구경기는 모두 한 집에 모여서 본다. 그 이유는 TV가 있는 집이 드물고 또한 자주 정전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알라쥐 집에 모여서 TV를 봤는데, 하루는 전기가 나갔다. 그날이 중요한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유럽 프로축구 경기인데 이들은 이것도 다 챙겨서 본다.

정전이 되서 알라쥐 친구 집에 가서 같이 응원하면서 봤다. 그리고 며칠 후에 다른 동네에서 나를 아는 척하는 친구가 있었다. 누군지 몰라서 물어보니, 그때 같이 축구를 봤던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자주 생겼다. 어디를 가도 나를 아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친구들이 생겼다. 심심하면 알라쥐와 그의 형이 일하는 곳을 가본다. 그곳은 가끔 오는 여행객들에게 배를 태워주는 곳이다. 손님이 거의 없어서 항상 놀고 있다. 알라쥐도 그곳에서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 알라쥐의 형은 작기는 하지만 배를 가지고 있었고, 그 배를 몰면서 돈을 벌었다. 형은 가끔 나를 배에 태워주었다. 그 배는 덴턴브리지(Denton Bridge)에서 출발하는데 많은 동물들을 볼 수 있단다. 그래서 여행객들이 가끔 와서 배를 타나보다. 배를 타고 강을 오르내리는 것은 신선놀음과 같았다. 준비해온 샌드위치를 사람들과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가끔은 쓸데없는 이야기들로, 또 가끔은 종교와 평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강물 위에서의 하루가 흘러간다.

강주미 여행작가·‘중동을 여행하다’의 저자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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