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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살람, 중동] 〈49〉 세네갈의 낯선 일상 익숙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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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1-02 21:14:09 수정 : 2014-01-03 11:2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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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사람도 깊이 뿌리내린… 척박한 땅의 넉넉함
이곳이 감비아인지, 세네갈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다. 사실 그런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 세네갈의 영토이지만 감비아와 멀지 않은 섬은 지도에 이름조차 나와 있지 않다.

이곳에 올 때 타고 왔던 배 같은 것은 사람을 위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물건을 나르기 위한 운송수단의 성격이 강하다. 배는 주로 조개 껍데기를 실어 나른다. 조개 껍데기는 단단하기 때문에 건축자재로 많이 쓰인다. 모래밖에 없는 이곳에서 조개는 중요한 건축자재다. 그래서 바닷가 한편에는 조개껍데기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도로를 건설할 때에도 쓰인다고 하는 조개껍데기는 바닷가 마을에서 배를 통해 육지로 운반된다. 

갈라진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나무가 대견스럽다.
처음에 이 작은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다음 날 오후에 떠나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다음 날 그 생각이 터무니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침 일찍에만 배편이 있단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아침 일찍 일어나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당분간은 하지 않았다. 아무 걱정 없이 지내는 이곳에서의 시간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가 가고 있었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그렇다고 심심하지도 않은 하루가 오늘도 지나간다.

따뜻한 물에 씻고 싶다는 생각도, 맛있는 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언제나 낯선 일상들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말라리아에 걸리게 만드는 모기들이 득실댔고, 가끔 물리기도 했지만 다행히 말라리아에 걸리진 않았다. 실제로 말라리아에 걸리는 사람들은 아주 흔했다. 그렇다고 모두 다 그 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더럽게 보기 시작하면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겠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보면 모든 것이 괜찮아진다.

척박한 땅에도 뿌리 내리고 살아가는 마른 나무가 그렇게 말해주는 듯하다. 물 한 방울 없을 것 같은 땅속에서 물을 끌어올리고, 잎사귀 하나 피우지 못할 것 같은 나뭇가지에 빨간 꽃이 핀다. 우리가 보는 겉모습들은 어쩌면 편견에 가려진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 뒤에 가려진 수많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값진 일이 되어버렸나 보다.

다시 세네갈의 육지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많은 것들이 익숙해졌고, 사람들도 나를 익숙하게 대해 줬다. 그건 그들과 비슷하게 변한 나의 머리 모양, 그을린 피부색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편한 마음으로 편견 없이 바라보면 그들도 나를 그렇게 바라봐 준다.

다시 다카르까지 가는 길에 몇 군데의 마을을 거쳤다. 그곳은 이름도 모르는 작은 시골마을일 뿐이었다. 세네갈의 수도인 다카르에 도착하니 도시 느낌이 물씬 났다. 다카르에서는 대사관과 병원 등을 찾아 몇 가지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황열병 접종카드는 인천공항에서 예방주사를 맞고 쉽게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말라리아 예방 접종은 미리 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곧바로 아프리카로 온다면 미리 맞을 수 있지만 다른 나라들을 여행하고 온 나는 현지에서 접종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아이를 낳은 다음날 다시 일터로 나가는 세네갈의 여인들.
유럽 사람들이 세운 병원을 갔는데, 그곳에서 나보다 어린 세네갈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하루 전에 아이를 출산했고, 이날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엄마도 아이도 모두 건강해 보였다. 하루 전에 출산한 산모라고는 믿어지지 않아 “어제 출산한 게 맞냐”고 되풀이해서 물었다.

그녀는 오른팔로 가뿐하게 아이를 안고, 다른 팔로는 짐을 들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바로 그다음 날 아이를 한 팔로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 여자들이 일을 할 때는 아이를 한 팔로 안고 일을 한다. 길거리에서 땅콩을 파는 아줌마들도 아이 한 명쯤은 가볍게 안고 있었다. 다카르는 도시이기 때문에 병원에서 아이를 낳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는 집에서 출산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녀는 스무 살이 갓 넘어 보이는 앳된 얼굴이었다. 밝게 웃으면서 어제 낳은 아이를 보여 주었다. 그녀도 갓 낳은 아이를 안고 일을 하러 갈 것이다. 남편은 일을 하러 나가서 돌아오지 않고, 그녀가 직접 생계를 꾸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더없이 가벼워 보였다. 건강하게 아이를 낳았다는 기쁨 때문일 것이다.

한국이라면 산후조리원에서 한 달을 지내고 직장에서 휴가도 받지만, 세네갈 여인들은 이런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작은 일에도 지치곤 하는 나의 모습이 부끄러울 만큼 그녀들은 씩씩하고 당당해 보였다.

세네갈에서 염소는 중요한 가축이다. 거리에 가끔 낙타와 소가 지나다니지만, 먹을 수 있는 가축으로 키우는 것은 염소와 닭이다. 염소 떼를 몰고 다니는 사람을 가끔 봤는데, 그들을 따라가 보니 염소시장이었다. 그곳에서 염소를 사고판단다. 차로 실어 오는 것이 아니라, 직접 걸어서 다 몰고 온다. 이곳에서는 눈에 띄게 많은 아이들이 놀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염소들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 알 수 있었다. 염소똥을 치우는 일을 하며 약간의 돈을 받는 것이었다. 염소똥도 헛되이 버리지 않는다. 비료로 쓰이기도 하고, 연료로 쓰이기도 한다. 염소똥을 모아서 가져가는 사람들도 있다.

염소떼를 몰고 염소시장을 나선다.
또 찾아가게 되는 곳은 바닷가다. 조용하고 가끔은 음악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좋아하는 장소이다. 여기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꼬마 아이가 와서 같이 그림을 그린다. 세네갈 아이는 아니었고, 덴마크에서 왔단다. 여행객은 아니고 이곳에서 살고 있단다. 꼬마 아이의 그림을 보고 있자니 부러워졌다. 보이는 대로 보고, 보고 싶은 대로 보면서 거리낌없이 그림을 그린다. 동그라미가 삐뚤어져도, 색이 맞지 않아도 개의치 않는 그림이 자유로운 그림이 된다. 잘 그리려고, 잘 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때로는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다카르에서의 낯선 생활은 어느새 나의 익숙한 일상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생활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른다. 시간의 흐름을 깨닫게 해주는 것은 여권에 찍힌 비자 만료일자이다. 비자가 만료될 때쯤이면 나는 또 다른 나라로 떠나야 한다. 이제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강주미 여행작가·‘중동을 여행하다’의 저자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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