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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셰익스피어 아저씨,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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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3-14 21:09:38 수정 : 2014-03-14 21: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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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작품은 삶을 비추는 거울
‘한국의 햄릿’들은 어떤 고민 할까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 이 가혹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참고 견뎌내는 것이 고상한 일인가, 아니면 거센 바다에 맞서서 무기를 집어들고 덤벼드는 게 옳은 일인가.” 영국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 나오는 이 대사는 희곡을 읽거나 연극을 보지 않은 사람도 대개는 기억할 정도로 유명한 구절이다. 사실 이 대사는 서구사회에서 ‘근대적 인간’의 탄생을 알리는 중요한 단서다.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쓸 시기의 서구 사회는 신(神)에 의존하지 않는 사람 스스로의 생각이 겨우 움트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한 개인이 삶과 죽음의 문제를 신의 지휘 없이 스스로 내면에서 생각해내려 했다는 것 자체가 아주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므로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타난 이런 생각의 혁명은 이후의 서양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런데 같은 햄릿을 두고도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지성적 인간(콜리지)’ ‘고결하고 도덕적인 인간(괴테)’ ‘분열된 자아(블래들리)’ ‘모친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진 인간(프로이트)’ 등으로 실로 다양한 정의가 내려지면서 햄릿은 근대인의 상징이 된다. 영향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햄릿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기 시작하는데, 17∼18세기에 활약한 영국 평론가 윌리엄 해즐릿은 “햄릿은 바로 우리다”라고 말한다. 이런 경향은 현대에서도 줄어들지 않는다. 호주의 유명 배우 멜 깁슨은 “그의 고민이 나의 고민이 됐다”고 말하고, 아카데미 주연 남우상을 수상한 영국 출신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햄릿 역을 연기하다가 “아버지의 유령을 보았다”라고 까지 했다. 도대체 셰익스피어는 왜 이토록 사람들을 뒤흔들어 놓는단 말인가. ‘햄릿’의 배경은 12세기 덴마크 왕가이고, 저술 시기는 1601년쯤으로 알려져 있다. 이 희곡에는 인간성과 윤리에 대한 당대 유럽의 생각이 반영돼 있지만, 시대와 사회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지닌다. 삶과 죽음, 정의와 불의, 진실과 거짓에 맞닥뜨리고, 매 순간 선택을 강요받는 햄릿의 체험은 평범한 사람이라도 누구나 살면서 만날 수 있는 일이다.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 또한 다르지 않다. 그래서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셰익스피어 극이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리라.

김무곤 동국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
영국 시인 새뮤얼 존슨은 이런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삶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라고 말했다. 자살사망률, 노동시간, 1인당 술 소비량, 사교육비 모두 세계 1위를 자랑(?)하는 지금의 한국인들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자신의 무엇을 발견할까, 그것이 궁금하다. 마침 올해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맞아 한국의 연극계가 셰익스피어 맞이에 발 벗고 나섰다. 국립극단은 ‘450년만의 3색 만남’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세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3월에는 첫 번째로 연극 ‘맥베스’를 선보인다. 4월에는 ‘베니스의 상인’을 각색한 ‘노래하는 샤일록’과 ‘한여름 밤의 꿈’이, 또 5월에는 뮤지컬 ‘템페스트’가 공연된다. ‘노래하는 샤일록’은 ‘베니스의 상인’을 재해석한 작품이며, ‘한여름 밤의 꿈’은 영국 국립극장과 남아프리카 인형극단 핸드스프링 퍼펫 컴퍼니가 함께하는 해외초청작이다.

셰익스피어를 한국에 초청한 건 국립극단뿐이 아니다. 전 문화부 장관이자 배우, 연출가인 김명곤이 만든 첫 뮤지컬 ‘오필리어’가 5월 세종문화회관에서 관객을 만날 준비에 바쁘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이번 봄 서울에서 공연될 셰익스피어 극 중 가장 기대되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건 햄릿이 아니라 ‘오필리어’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김명곤 연출을 직접 만나 물어보니 원작 ‘햄릿’을 확 뒤집었단다. 남자가 아닌 여자, 죽음이 아닌 삶, 미움이 아닌 사랑에 초점을 둔 작품을 만들고 있다 한다. 셰익스피어가 본다면 “이쯤 되면 한번 해보자는 거냐”라고 말할 것 같다. 2014년 봄에 셰익스피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 얼굴. 그걸 보여주려고 셰익스피어 아저씨가 450년 만에 한국에 선물을 가득 들고 오셨다.

김무곤 동국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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