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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이냐, 아름다움이냐”… 디자인 양대 화두 영원한 시소게임

입력 : 2014-03-25 21:11:14 수정 : 2014-03-26 09: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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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展·엔조 마리展 비교해보니 실용과 아름다움은 항상 디자인에서 주된 화두가 돼 왔다. 때론 실용이 강조되기도 하고 때론 미감이 우선되기도 한다. 어쩌면 실용과 아름다움은 디자인에서 영원한 시소게임일 수 있다. 20세기 부엌 디자인전과 엔조 마리 디자인전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부엌에서 만나는 디자인

부엌은 20세기 전반에 걸쳐 새로운 재료, 기술 그리고 삶의 방식과 함께 디자인 실험의 축소판이었다. 가장 주된 관심사는 효율적이고 위생적인 주방이었다. 건축과 가구, 공간 디자인 영역에서 활동하던 많은 디자이너들이 여기에 동참했다. 6월29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열리는 ‘키친(kitchen)-20세기 부엌과 디자인’전은 1920년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방 디자인의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 1920년대는 자동차 산업에서 효율성을 강조하는 컨베이어벨트 조립라인이 구축됐고 합리적인 가사 관리가 이슈로 부각된 시기다. 이 같은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부엌에도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가장 보편적인 부엌 형태의 효시가 된 ‘프랑크푸르트 부엌’, 사각 여행 상자 형태에 바퀴가 달린 ‘미니-키친’, 나무 형태의 ‘키친 트리’ 등을 볼 수 있다. 눈금이 표시된 알루미늄 조리재료통, 선반이 살짝 기울어진 냄비건조대 등 가사 노동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배려가 곳곳에 담긴 ‘프랑크푸르트 부엌’은 1926년 오스트리아 최초의 여성건축가 마가레테 쉬테리호츠키가 설계한 것이다. 붙박이식 수납공간을 가진 일체형으로 오늘날 가장 일반적인 부엌 형태가 여기서 나온 셈이다. 

슈테판 베베르카가 디자인한 ‘키친 트리’. 철 기둥을 중심으로 싱크대, 조리대, 선반 등이 나뭇가지처럼 펼쳐져 있다. 사용자에 따라 각 요소의 위치와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고 좁은 공간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부엌이다.
1950년대 부엌은 여기서 한발 나아간다. 특히 독일 주방가구 포겐폴은 60㎝ 크기의 유닛으로 부엌 가구를 만들어 공간에 따라 자유롭고 효율적인 구성이 가능하도록 했다. 제품디자이너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에 소개됐던 레이먼드 로위가 디자인한 매끄러운 실루엣의 ‘룩 키친’은 1950년대 확산된 ‘유선형 디자인’을 담고 있다.

효율성과 위생성을 향상시키던 부엌은 급기야 전문 요리사의 작업장과 같은 형태로 발전한다. 불탑이 1998년 선보인 ‘시스템20’ 부엌은 가벼운 알루미늄을 사용해 이동이 쉽고 ‘따로 또 같이’가 가능해 다양하게 주방을 꾸밀 수 있도록 했다.

‘위니테 다비타시옹 부엌’은 샤를로트 페리앙이 디자인했다. 르코르뷔지에가 건축한 임대주택을 위한 것이었다. 식기 수납장은 양쪽에 미닫이문을 둬 활용도를 높였다. 조에 콜롬보가 1963년 디자인한 미니-키친은 바퀴가 달려 이동이 가능한 소형 부엌이다. 50㎝ 크기의 사각 형태지만 소형 냉장고와 전기 버너 2개, 저장용 찬장 등 나름대로 있을 만한 건 다 갖추고 있다. (02)720-5114

◆모두를 위한 모두가 할 수 있는 디자인

이탈리아 유명 디자이너 엔초 마리(82)는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디자인 된 사물’이 아니라 디자인의 과정을 통해 “사회가 진짜로 필요로 하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디자인 철학은 오늘날 트렌드에 지나치게 치중하여 본질보다 스타일에만 집중해, 일상과 멀어진 디자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평생 ‘더 나은 인간의 삶을 위한 디자인’을 실천해 온 엔조 마리의 작품전이 6월21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다. 가구, 그래픽, 교육용 완구, 사무용 액세서리 등 엔조 마리가 50년간 만들어 온 다양한 디자인 생활용품과 시각 디자인 작품이 소개된다. 엔초 마리가 누구나 판자와 못, 망치 등만 가지고 의자와 테이블 등을 스스로 만들어 쓸 수 있도록 제공한 19가지 기본 가구 설계 도면을 토대로 한 학생들의 워크숍 결과물도 선보인다. 엔조 마리에게는 살아있는 디자인 거장, 착한 디자인과 오픈 소스 문화의 선도자, 산업사회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거부하는 디자인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엔초 마리의 19가지 오리지널 도면을 토대로 학생들의 손에 의해 완성된 워크숍 결과물. 엔초 마리는 누구나 판자와 못, 망치 등만 가지고 스스로 만들어 쓸 수 있게 저작권 없이 기본 가구 설계 도면을 공개했다.
전시는 5개 소주제로 구성됐다. 1부 ‘디자인 자급자족’은 엔초 마리의 디자인 철학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디자인 프로젝트로서 서울과학기술대학 디자인학과 학생들이 동대문시장 상인들을 위한 가구 만들기를 진행한 결과물이 전시된다. 2부 ‘만드는 사람을 배려하는 디자인’은 도자기공을 위한 프로젝트로서 기계적인 생산만을 하던 도자기 직공들에게 창조력을 발산시키도록 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전시된다.

특히 3, 4, 5부에선 엔초 마리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디자인으로 풀어보는 전통과 혁신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인 3부 ‘혁신과 전통’, 엔초 마리 50년 작품을 집대성한 4부 ‘엔조 마리, 그의 50년 작업들’, 그리고 엔초 마리와 동고동락한 유명디자이너 작품 전시인 5부 ‘엔조 마리, 그리고 동시대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을 통해 엔초 마리가 꿈꾸는 디자인 유토피아의 단면을 보여준다. (02)2153-0000, 2266-7088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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