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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시작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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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3-28 20:50:36 수정 : 2014-03-28 20:5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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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을 드는 순간은 언제나 설레
새로움 찾을 때 삶의 가치도 발견
긴 겨울이 언제 갔는지 모르게 봄이 왔다. 꽃봉오리가 터질 듯이 팽창하고, 꽃도 형형색색으로 만개했다. 자연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청량하다. 새로움을 시작하는 이는 봄의 기운에서 생명의 이미지를 만끽하게 된다. 흰 바탕 위에 붓을 처음 올리는 순간, 그 순간에 두근거림을 느끼지 않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마음에 드는 형상을 떠올려 본다. 텅 빈 화면을 바라보면서, 그 위에 그려질 대상을 찾아 나선다. 호흡을 가다듬고 서서히 이미지를 그려 나간다. 때로는 빠르게 화면에 담아낸 그림에 시선이 머무른다. 항상 새로운 것을 지향하고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과정은 어려움의 연속이다. 그래서 경험을 많이 하고, 여행을 다니면서 색다른 생각과 이상을 느끼고자 한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이와 토론하고 그 느낌을 정돈해 인생의 철학적 의미로 반추하며 시각적인 표현을 위한 밑거름으로 삼게 되는 것이다.

아득했던 시절, 자신감이 떨어졌던 기억이 난다. 그림에 대한 생각이 바람에 날리는 가벼운 존재로 생각됐던 것이다. 이때에는 누구나 그렇듯 다정하고 소중한 그림 친구, 자신을 온전히 받아 줄 동료가 필요하리라. 이는 서로에게 힘이 돼줄 수 있는 동반자로서, 학업의 길에 있어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이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리라.

신하순 서울대 교수·화가
흰 구름이 떠 있는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그만큼의 넓고 넓은 화면을 상상하면서 생각을 펼쳐본다. 그 마음을 품고 후련하게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기운을 가진다. 그림의 시작은 설렘으로 화면을 바라보게 한다. 마음속의 여러 가지 대상을 화면에 그리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막연한 기대는 실패라는 두려움에 마음을 세우지 못한다. 화면 위에 마음속의 대상을 선뜻 그려내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 것이다. 때로는 실패한 그림이지만 묻어둔 그림을 다시 펼쳐 볼 때가 있다. 그 당시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미감을 느끼면 다시금 창작의 열정이 표현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목표한 고지에 빨리 도달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적당한 시기를 거친 후에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야 할까?’ 어찌 보면 미술에 있어서 빠른 지름길이 있다면,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면서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우회로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입학했을 때의 만족도 평가에서 미술대학은 90%에 달하는 놀라운 호응과 만족을 표시했다. 그러나 졸업하는 학생의 만족도는 극히 낮은 수준에 머무르는 지표를 본 적이 있다. 이것은 미술학도들이 기대와 자신감 속에 입학을 하지만, 자신의 창의적 모순과 예술적 진로의 어려움을 학교생활을 하면서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지나치게 높아 그 결과와 기대치가 일치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필자는 깊은 고민에 빠질 때가 많다.

젊은 학생들이 피부로 느끼는 것은 누구의 보호도, 예술의 울타리도 그들에게는 한없이 머나먼 여정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예술이 주는 가치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어떤 바람이 불어도 자신의 일을 묵묵히 지탱하는 힘은 미술 그 자체가 마냥 좋아서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긴 여정을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한 것이다. 젊은 그들은 새로운 것을 찾고, 새로운 것을 갈구하고, 새로운 것을 융합해 자신의 진로에 다시금 초석을 만들려고 한다. ‘애써 외면하며 경제논리의 경쟁사회에서 물러나 앉아 자신의 삶을 모색하고 자신의 길이 진정한 길인가’를 자문하면서 새로운 발자국을 만들어간다. 젊은이들의 새로운 발자국을 통해 문화의 창의적 융합이 함께하는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게 될 충분한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문화 융성을 꿈꾸는 예술가들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창의적 발상의 무대가 새로움을 추구하는 청년들에게 주어질 수 있는 사회로 거듭나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신하순 서울대 교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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