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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철칼럼] 국정원의 무능이 진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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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03 21:44:51 수정 : 2014-04-03 21:4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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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개발 저지한 다간처럼 왜 못하나
국정원 혼선과 무능, 남재준 책임 느껴야
이스라엘 모사드 국장 메이어 다간의 취임사는 특별했다. “적에게 먹히지 말라. 적의 뇌를 삼키는 사람은 여러분이어야 한다.” 그가 취임한 2002년 8월 이스라엘의 최대 안보 위기는 이란의 핵개발이었다. 이란의 핵은 이스라엘에게 적의 뇌였다. 폭격 등 전쟁이 효과적이지만 그건 국제사회가 용납하지 않는다. 핵개발 지연이 차선책이었다. 다간이 나섰다. 전쟁을 제외하곤 안보를 지키는 최후의 수단이 모사드이기 때문이다.

정보 전쟁엔 온갖 수단이 동원된다. 이중 스파이와 위장 조직은 기본이고 암살, 파괴 공작도 다반사다. 2006년, 이란 상공을 날던 군용 수송기 추락 사고가 잇달아 일어났다. 2007년, 이란 전 국방차관이 해외여행 중 사라져 이스라엘에 망명했다. 2010년엔 5명의 이란 핵과학자가 수도 테헤란에서 자동차 폭발 사고 등으로 제거됐다. 해킹팀의 바이러스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 통제 컴퓨터의 절반가량을 고철로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다간이 지휘한 모사드 작품인 것으로 드러났다.

백영철 논설위원
다간이 모사드 국장으로 임명되던 그때 이란이 핵전쟁 수행능력을 갖출 것으로 전문가들이 예상한 시점은 2005년이었다. 이 시점은 모사드 활동으로 2007년에서 2009년으로, 다시 2011년으로, 또다시 2015년으로 늦춰졌다. 이란은 결국 핵을 포기하게 된다. 모사드가 지연시켜 놓자 미국 정부가 나서 지난해 11월 이란과 핵개발 중단 협상을 타결 지었다. 적대국 언론이 다간을 칭찬했다. 그가 퇴임하기 1년 전 이집트 유명 일간지는 이렇게 보도했다. “그가 없었다면 이란의 핵개발 계획은 이미 수년 전에 완성됐을 것이다. 그는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으면서 조용히 일했지만 지난 7년간 이란의 핵개발 계획에 극심한 타격을 입혀 진전을 막았다.”

다간은 취임사를 실천했다. 이란의 핵개발을 저지했으니 적의 뇌를 삼킨 셈이다. 한국엔 다간 같은 슈퍼맨이 있는가? 대북 햇볕정책을 편 김대중, 노무현정부 시절은 물어볼 필요조차 없다. “정보는 국력이다”고 외쳤지만 실제론 고급 첩보망이 와르르 무너진 시절이다. 문제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는 보수정권인 이명박정부 이후에도 유능한 국정원장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4년이나 장기 재임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는 순간에도 무엇을 하는지 파악하느라 허둥댔다. 직원들은 인도네시아 대표단 투숙 호텔에 잠입하다 꼬리를 잡혀 국가 망신까지 시켰다. 그도 모자라 대선 때 정치 댓글을 다느라 한눈까지 팔았다. 사설 탐정조직도 이런 수준은 아니다.

지금의 국정원은 한술 더 뜨고 있다. 국정원 간부가 가짜 서류를 만들어 재판부에 제출한 혐의로 얼마 전 기소됐다. 정보기관 간부가 적국을 속이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적국도 아닌 재판부와 국민을 속이려다 들통이 났다. 거물 간첩도 아니다. 유우성은 당초 국정원 협조자로 만들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의 피라미에 불과하다. 국정원은 이웃나라가 위조서류라고 한 뒤에도 “위조 사실이 없다”고 잡아뗐다. 대통령이 “수사에 협조하라”고 하자 얼마 안 돼 검찰에 넘겨진 중국 내 협조자는 자살 소동을 벌였다. 어느 나라 정보기관에서 이런 혼선과 자중지란, 총체적 무능을 국민 앞에 보여준 사례가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전사다. 여러분도 전사가 돼라.” 2013년 3월, 남재준 국정원장의 취임사는 강한 인상을 주었다. 모사드의 다간처럼 국정원의 남재준도 적의 뇌를 삼킬 작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그 취임사는 공허하다. 국정원은 국가안보를 지키는 최후의 전사여야 하는데 과연 그런 것인지 묻는 국민이 많아진 것이다. 국정원이 더 강해지기 위해선 더 유능해져야 한다. 북한 도발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이름 없는 남녀 요원들이 고독 속에서 위장된 신분으로 가족들과 떨어진 채 목숨 건 활동을 벌이는 장면이 국민에게 각인돼야 한다. 모사드 같은 조직으로 태어나려면 남재준 원장이 스스로 책임을 통감하는 수밖에 없다.

백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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