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나, 악마는 당신의 또 다른 모습 아닌가

입력 : 2014-04-10 21:56:12 수정 : 2014-04-10 21:56:1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연극 ‘메피스토’
“허무하고 허무하다. 모든 것이 무의미한 밤이로다.”

세상만사를 이룬 사람이 지나간 세월을 허무하게 느끼면서 자살을 선택하거나 쾌락에 몰입하는 것을 ‘파우스트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누구나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며 후회한다. 만족을 모르고 내달리는 끝없는 욕망 탓이다. 해결법은 시간을 되돌려 인생을 다시 사는 것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되찾기를 원하는 ‘젊음’. 괴테는 ‘메피스토’를 통해 누구나 바라지만 가질 수 없었던 ‘회귀의 욕망’을 꺼내든다.

예술의전당이 위대한 고전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해 선보이는 기획공연 ‘SAC CUBE-CLASSICS’의 첫 번째 작품 ‘메피스토’는 원작 ‘파우스트’의 굵은 선을 따라가지만 이야기의 진행 관점을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로 옮겨, 선·진리·지혜를 추구하던 파우스트가 메피스토를 통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악’을 만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고전의 진수로 평가받는 ‘파우스트’는 괴테가 60여년에 걸쳐 완성한 필생의 대작이다. 학문적인 탐구와 삶에 대한 인식을 통해 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믿었지만, 결국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회의에 빠지는 노학자 파우스트와 그에게 쾌락의 삶을 선사하는 대신 영혼을 넘겨받기로 한 유혹의 아이콘 메피스토의 이야기를 통해 ‘선과 악’, ‘구원과 타락’ 속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삶을 담아낸 작품이다.

영혼을 담보로 젊음을 가진 파우스트가 원한 건 절세미인도 아닌, 시골 처녀 그레첸이다. 수수하다 못해 가난한 이 아가씨에게서 파우스트가 본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괴테가 말하는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한다”라는 것과 닿아 있다. 타락한 남자는 여성을 파멸시키지만 그 남자를 용서하고 구원하는 것은 순수함을 간직한 여성이란 의미다. 그레첸은 순수한 어린 시절의 사랑으로 돌아가고 싶은 회귀 본능을 자극하는 인물이다. 파우스트에게 그레첸은 그가 그토록 원했던 완벽한 세계의 다른 이름인 셈이다. 결국 젊음에 대한 욕망으로 불타는 파우스트에 의해 그레첸은 악마의 제물로 바쳐지고 만다. 파우스트는 뒤늦게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메피스토에게 외친다. “돌려라! 모든 것을 돌려놓아라! 내게 숨겨왔던 것을 다 돌려놓아라!”

사람들은 파우스트가 신에 의해 구원받게 되는 것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악마와 결탁하여 스스로 타락의 길을 선택한 파우스트를 신이 왜 구원한단 말인가. 하지만 괴테는 “인간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한 방황하지만, 잘못을 인식하고 더 나은 것을 지향하려는 노력만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구원을 선과 악을 구분 짓는 잣대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사는 동안 악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이 얼마나 이를 극복하려 노력했느냐는 ‘의지 문제’로 보는 것이다.

파우스트가 자신의 죄를 참회하며 ‘인간의 고결한 가치(선으로 회귀하려는 노력)’를 선택해 구원받는다는 원작과 달리, 연극 ‘메피스토’에서는 메피스토가 파우스트에게 원론적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악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그들이 불쌍한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는다고 하지만 실은 자신이 스스로 영혼을 집어삼킨 것이 아닌가?”

메피스토는 파우스트를 끝내 구원하고야 마는 신에게도 따진다. “내가 그에게 달라붙었습니까, 아니면 그가 나를 불러들였습니까? 대답해 주십시오!”

메피스토의 악에 받친 이 대사는 사실 객석에 날아와 꽂힌다. ‘나(악마)를 부른 것도, 원한 것도 모두 당신 아닌가. 나는 사실 당신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닌가.’

연극 ‘메피스토’에서는 신에 의해 구원받는 파우스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깨닫고 비로소 또 깨닫는, 깨달아가며 진화를 꿈꾸는 인간 파우스트가 존재할 뿐이다.

연극계에서 현재 가장 ‘핫’한 콤비로 불리는 서재형 연출·한아름 작가 부부는 관객에게 상대적으로 친숙한 ‘그레첸의 비극’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 방대한 고전을 110분에 담아냈다. 배우들의 호연도 돋보인다. 남성적 캐릭터로 그려졌던 메피스토를 여배우 전미도가 유혹적이고 변덕스러운 악마로 재탄생시켰다. 은발에 붉게 찢어진 눈, 거친 목소리, 검은색 남성용 정장 안 붉은색 여성 블라우스 차림의 그는 개와 인간, 아이와 노인, 여성과 남성을 오가며 인상 깊은 연기를 선사한다. 정동환이 그린 파우스트는 지성의 최고 위치에 오른 인간이라기보다, 신을 닮고 싶다고 외치는 순간에 소변이 마려운, 평범하고 나약한 인간에 가깝다.

19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관객을 맞는다. (02)580-1055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세계섹션>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