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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문화의 불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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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11 20:47:55 수정 : 2014-04-11 21: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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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예술 향유층 주로 여성
‘다양성’ 위해 남성도 지갑을 열라
한국에 온 프랑스 기자와 인터뷰한 적이 있다. 우리가 만난 곳은 어느 북카페였는데 그가 실내를 둘러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남자는 다 어디 있나요? 손님이 모두 여성이라는 뜻이었다. 그곳만이 아니었다. 그는 서울에서 미술관과 책방과 소극장에 가고 문화 행사를 둘러보았는데 남자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내가 얼른 대답을 찾지 못하자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누군가 농담을 던졌다. 오락실이나 술집에 있는 거 아닐까요? 기자도 농담으로 대꾸했다. 아, 한국 남자는 다 파티에 갔군요? 문화는 여성에게 맡겨두고? 그 말에 나는 몇 달 전 한국문학번역원 주최로 프랑스에서 열렸던 한국문학 행사를 떠올렸다. 그 행사에 참석한 프랑스 청중도 여성의 숫자가 훨씬 많았다. 어느 나라든 여성이 문화를 향유하고 나아가 주도하는 추세라는 데에는 그도 동의했다. 그러나 한국처럼 문화 행사에 남성을 찾아보기 힘든 곳은 없다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우리의 대화는 문화를 가까이 하는 사람과 그러지 않는 사람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로 이어졌다.

은희경 소설가
얼마 전 새 소설집이 출간돼 북 콘서트 행사를 했다. 거기에서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참석자가 거의 여성인 걸로 미루어 특히 여성독자에게 인기가 많은 모양이라고 사회자가 말했다. 나는 다른 작가의 사인회나 낭독회에도 여성이 거의 자리를 차지한다, 아마 문학 독자가 거의 여성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대답했다. 소규모 콘서트나 강연회에 가봐도 청중은 다수의 여성과 그 여성들한테 이끌려 할 수 없이 따라온 소수의 남성, 두 부류라며 남성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농담을 던졌다.

나는 남녀의 특징을 구분해 획일적으로 재단하는 사고방식을 싫어한다. 또 이런 현상을 사회적 맥락 없이 섣불리 남녀대결로 이끌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얼마 전 자장커 감독의 ‘천주정’과 웨스 앤더슨 감독의 ‘부다페스트 호텔’을 둘러싸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오갔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두 영화 모두 다양성 영화, 즉 블록버스터 같은 대중영화와 달리 지원이 필요한 예술영화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천주정’이 뛰어난 작품임에도 흥행이 저조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그에 반해 화면이 예쁜 ‘부다페스트 호텔’은 여성 취향에 힘입어 흥행이 잘 된다고 꼬집었다. 그러자 문화에 꾸준한 관심을 갖고 소비해온 여성들이 반박했다. 다양성 영화 시장을 키워온 것은 여성이라며 영향력을 갖고 싶다면 남성도 문화에 지갑을 열라는 반응이었다.

나로 말하자면, 두 영화 모두 개봉을 기다린 영화였다. 중국 싼샤시의 댐 건설을 둘러싼 마음 아픈 삶의 현장을 그린 자장커 감독의 ‘스틸 라이프’와 소년소녀가 자기 방식으로 세상을 재편해가는 동화 같은 이야기인 웨스 앤더슨의 감독의 ‘문라이트 킹덤’ 모두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것으로 감탄과 감동이 있다면, 전자는 감동이었고 후자는 감탄이었다. 두 영화 사이에 간극이 있다면 취향 차이일 텐데, 어느 한쪽만 흥행이 됐다면 더 많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사람쪽으로 기우는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문화가 이른바 ‘여성 취향’으로 흘러가는 게 우려스럽다면 남성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말하는 의견에도 설득력이 있다. 그렇게 된다면 사회가 문화를 통해 얻으려는 ‘다양성’에 더 접근해가는 길이 될 수도 있고 말이다.

우리는 모두 안정적이고 안락한 삶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나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고 각자 다른 누구와도 다른 고유한 면을 갖고 있다. 심신이 편안하고 사회적으로 결함이 없고 인생의 숙제도 어느 정도 풀어놨다 해도 인생의 내면에 빈 공간이 남게 마련이다. 그것을 채워주는 것은 ‘다른 방식의 생각’을 하게 해주는 문화와 예술일 것이다. 수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은 그런 불온함이 없으면 인간은 시스템의 부속품이자 노예상태가 된다고 경고했다. 문화와 예술은, 주입된 시스템에서 벗어나 나를 개인적으로 이해하고 그리고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출판계의 불황이 심각한 모양이다. 우리는 다들 어디에 있는 걸까? 불온함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이대로 행복하다는 뜻일까.

은희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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