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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이든 흑인이든 피부 5㎜만 벗기면 다 똑같아… 당신도 그렇다

입력 : 2014-04-15 20:41:11 수정 : 2014-04-15 20: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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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효석 작가 5월 1일까지 작품전 얼굴 피부가 벗겨져 살점이 드러난 초상화가 기괴스럽다. 눈만 없다면 영락없는 정육점의 고깃덩어리다. 한국미술의 희망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효석(42) 작가의 작품이다. 백인 여성 얼굴과 쇠고기 덩어리를 합성한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유화작품이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백인종이나 흑인종이나 얼굴 피부 5㎜만 벗겨내면 모두가 똑같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누구나 인간의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경기 평택 미군기지 근처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에게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일 수 있다. 그는 어머니 젖이 부족할 땐 문간방 백인 아줌마의 품에 안겨 젖을 빨아야 했다. 인근의 ‘양공주’들도 인정 많은 자상한 이모들에 지나지 않았다. 가난도 서로를 감싸주니 문제될 게 없었다. 국외자에겐 ‘불편한 진실’로 치부됐을망정 그에겐 가장 익숙하고 인간적인 풍경이었다. 세상의 편견들을 그는 일찍이 알아버린 것이다.

“초등학교 때까지 동네 형들을 따라 미군을 상대로 그림을 파는 ‘이발소그림’ 화방에 놀러가곤 했다. 들락거리면서 붓을 들었는데 잘 그린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 그림을 그리게 된 단초가 됐다.”

그가 전업작가로 처음으로 내놓은 작품이 살점 드러난 초상이다. 인간애의 바탕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당대에 다소 엽기적인 그림을 그렸던 고야, 카라바초, 터너, 베이컨 등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이들의 공통점도 인간존엄에 대한 천착이었다. 요즘 그는 돼지 조형물에 몰두하고 있다. 지인의 양돈 농장에서 1년 반 체류하며 5000여마리의 돼지들과 살면서 작업했다.

“좁은 틀에 갇혀 사육되는 돼지의 모습에서 자본의 논리를 보게 됐다. 잉여가치 창출을 지상과제로 여기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아름다운 미술’이라는 고정관념을 넘어 거북스럽고 혐오스러운 이미지를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오고 있는 한효석 작가. 그는 인류의 영원한 화두인 인간존엄이라는 인문학적 관심을 시각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에게 농장에서 일하는 동남아 근로자들의 모습도 예사롭지 않았다. 새벽에 일을 시작해 밤늦게 일을 끝내는 자본의 기계였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철저하게 소외되는 노동력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보다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철지난 사회적 이념문제가 아니라 영원한 화두인 인간문제다.”

그는 자연사한 돼지의 사체를 액체실리콘으로 본뜬 뒤 레진을 부어 형태를 만들고 색을 입혀 실물처럼 돼지를 재현했다. 350∼400㎏에 달하는 돼지 사체들을 운반하느라 목과 어깨엔 온통 멍과 상처자국이다. 어미돼지와 새끼돼지의 정겨운 모습도 보이고 샴쌍둥이 새끼돼지도 있다. 실물 크기에 피부색까지 완벽해 진짜 돼지들 같다.

“사체가 썩기 전에 본떠야 했다. 여름엔 부패가 빨라 주로 겨울에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

쇠고기를 찍은 이미지와 백인 여성의 얼굴 이미지를 합성해 만든 사진을 토대로 그린 ‘살코기 인물화’.
그의 작품을 많은 이들은 혐오한다. 전시장에서 전시가 거부돼 쫓겨날 뻔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왜 이런 작업을 할까.

“대중들이 거북해한다고 포기하고, 대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면 차별화가 사라진다. 예술은 독창성이 생명이다. 예술영역이 될 수 없는 것을 미술로 끌어오는 데 앞으로도 집중할 생각이다.” 그는 인테리어 소품 같은 예쁜 그림 작업을 거부한다. 그럴 바에야 그림을 포기하고 돈 잘 버는 일을 하겠단다.

그가 유일하게 견지하는 것은 인간애, 인간존엄이다. 그의 작품에 관통하는 화두다.

“작가는 객관화되는 순간 끝이다. 대중의 기호에만 맞춘다면 작가가 아니라 장인이다.”

5월 1일까지 아트사이드 갤러리. (02)725-1020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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