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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가슴이 뜨거운가… 세상 향해 소릴 질러봐!

입력 : 2014-04-17 21:54:57 수정 : 2014-04-17 21:5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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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내 심장의 전성기’
“우리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어봐! …우리가 젊은 날, 보고 느꼈던 것들을 기억해 봐! 그것들이 우리가 삶에 지쳤을 때,… 힘이 되어 줄 거야.”

‘386세대’란 단어는 199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신조어로,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 혼란스럽던 사회 상황과 민주화 열기로 가득찬 1980년대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뚫고 나와야 했던 세대로, 이제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중·장년이 되었다. ‘내 심장의 전성기’(이시원 작, 최원종 연출·사진)는 한때 뜨거운 심장을 불태우며 헤비메탈 음악을 했지만, 시대의 흐름에 휘말리면서 높이 날아보지도 못한 채 날개를 접고 주변인으로 살아가게 된 50대 남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젊음과 낭만이 살아 숨 쉬는 인천 송도의 카페 거리. 그 거리 끝자락에 민속주점 ‘핵폭발’이 있다. 주점 한쪽에 마련된 무대에서 왕년에 유망했던 헤비메탈그룹의 보컬 최광현이 간지나는 복장을 하고 파워풀한 무대를 연출한다. “누구 하나 들어주지 않아도 폼생폼사 내 스타일대로 노래하다 죽으리∼. 나는야 헤비메탈 그룹의 리더이자 보컬이니까∼.”

‘핵폭발’은 광현이 젊은 시절 활동했던 그룹 이름이다. 80년대 초, 세상을 삼켜버릴 듯 폭발적으로 떠올랐던 ‘핵폭발’의 데뷔 앨범은 세상과 맞짱 떠보겠다는 내용과 욕설이 난무한다는 이유로 부적격 판정을 받고 판매금지 처분된다. 설상가상, 민주화 운동으로 끓어오르던 대학가에서 누군가 ‘핵폭발’의 데뷔곡 ‘최후의 전쟁터’를 부르며 투신자살하는 바람에, ‘핵폭발’의 노래는 저항 음악으로 회자되고, 멤버들은 취조와 고문을 당하며 긴 머리를 잘린다. 그룹은 해체되고 뿔뿔이 흩어진 채 30년이 흘렀다.

다른 멤버들이 모두 떠난 뒤로도 광현은 음악을 놓지 못하고 꿈의 언저리를 맴돌며 살았다. 그동안 딸도 하나 생겼다. 딸 보람은 음악을 한다며 가정을 돌보지도, 평범하게 살지도 못하는 아빠와 헤비메탈 음악에 진저리를 친다. 열 네살 때부터 복싱을 시작한 보람은 복싱을 통해 아빠로 대변되는 세상과 싸우고, 광현은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과 싸우며 피곤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광현은 후두암 진단을 받게 되고, 아빠와 딸은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광현은 한번도 빛을 발하지 못한 자신의 인생을 일으켜 세우고, 딸에게도 한 번쯤 좋은 아빠가 되고자 딸이 흥얼거리며 부를 수 있는 곡 하나 남기기로 마음먹는다. 보람은 그토록 싫어했던 아빠의 음악이 자신에게 복싱을 하게끔 하는 원동력이었음을 깨닫는다.

‘핵폭발’을 재결성하기 위해 멤버들을 모으는 광현. 그룹 해체 후 대기업 인사부장으로 중산층의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던 전 멤버 석주를 드러머로 앉히고, 통기타를 튕기며 라이브카페에서 트로트를 부르는 두영이도 다시 데려온다. 숨은 실력자인 베이시스트 박사장까지 합세해 재결성된 ‘2014 핵폭발’. 이들의 시들지 않은 치열함을 배우려는 젊은 펑크 밴드 ‘칼슘과 마그네슘’까지 합세해, 그들은 마침내 헤비메탈로 하나가 된다. 30년 만에 재결성된 ‘핵폭발’은 보람의 복싱 경기 오프닝 공연을 장식한다.

영화계와 연극무대를 오가며 명품배우로 거듭난 손병호가 최광현 역을 연기한다. 그는 한국 연극계의 거장, 극단 목화의 오태석 선생 수제자답게, 음악에 대한 자존심 때문에 자신과 가족을 지켜내지 못한 최광현으로 빙의한다. 이미 영화나 연극 뒤풀이에서 선보인 수준급의 가창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으려는 듯, 그는 무대 위에서 실제 라이브로 연주하고 노래하며 투혼을 불사른다.

‘왜 다시 헤비메탈인가?’라는 질문에 연출가 최원종은 “헤비메탈이야말로 치열하게 세상과 부딪치며 싸우는 음악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세상이 그들의 치열함에 답해줄 때까지 그 음악을 멈추지 않을 인물들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고 싶단다.

386세대. 패기는 약해졌지만 열정은 가슴 속에서 영글어 인생을 너그럽게 바라볼 줄 아는 관록이 생겼다. 당신 심장의 전성기는 언제였는가. 가장 뜨겁게 가슴이 뛰고 있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그 사람을 위해 노래할 수 있는 지금이 바로 당신의 전성기가 아닐까. 헤드뱅잉이 인상적인 종반부, 연극 ‘내 심장의 전성기’는 우리에게 소리친다.

“눈치를 보지 말고, 겁먹지 멀고, 소리를 질러!”

6월 1일까지 대학로 자유극장. (02)765-1776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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