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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마지막 밤… 기쁨과 아쉬움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입력 : 2014-04-17 21:41:05 수정 : 2014-04-17 21: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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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김혜나의 리말라야 듀엣] <8·끝>
14 day: 9월 18일, 타토파니(Tatopani·1190m)∼시카(Shikha·1935m)

눈꺼풀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환한 빛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누가 불이라도 켰나 싶어 벌떡 상체를 일으켜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불빛이 아닌 달빛이었다. 온 세상에 불이 다 켜지기라도 한 듯 휘황찬란한 보름달이 내 눈 앞에 있었다. 이 세계가 온통 달빛으로만 차오른 지금 이 순간….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서서히 달빛이 저물어 갈 때쯤 나는 침대에 다시 누웠다. 그리고 새벽 5시경 일어나 선배와 함께 차를 타서 나눠 마시며 간밤에 보았던 달빛을 떠올렸다. 앞으로 나아갈 길들에도 한밤중과 같은 어둠이 몰려올지 모른다. 그러나 그 속에도 분명 달빛과 같이 밝게 빛나는 존재가 있으리라는 예감이 따뜻한 찻물과 함께 나를 가득 채워갔다.

그만 출발할 시간이 다 되어 우리는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한 뒤 곧바로 로지를 나섰다. 타토파니 마을을 빠져나가는 길목에 자리한 공터에는 대여섯 대의 버스가 들어오고 또 나가는 중이었다.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와 함께 쓰롱 패스를 넘어온 트레커들도 있었다. 그들과 가볍게 인사하며 작별한 뒤 우리는 시카 마을을 향해 가기로 했다.

그때부터 우리 앞에 오르막이 다시 나타났다. 수풀 우거진 오르막길을 한참 동안이나 걸어 올랐는데도 도무지 오르막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온몸에 땀이 줄줄 흘러 옷이 다 젖어들 정도로 끊임없이 오르고 또 오르고…. 철인과 같은 체력을 자랑하며 쓰롱 패스에서도 훨훨 날아다니던 버럼과 선배 또한 평소보다 많은 땀을 흘리며 자주 쉬어 가야 할 정도였다. 설상가상으로 수풀 곳곳에 ‘주카’라고 부르는 네팔 거머리가 도사리고 있었다. 가뜩이나 오르기 힘든 계단 길에서 거머리까지 신경 쓰며 걷다 보니 몸과 마음이 다 녹초가 되어버렸다. 점심 무렵이 되어 비로소 시카 마을에 도착했을 때에는 10시간 넘게 트레킹을 했던 날보다 더 힘들고 피곤한 기운만 감돌았다. 방이고 뭐고 확인할 겨를도 없이 검부가 정해주는 곳에 군말 없이 묵기로 하고 로지의 식당 의자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우리는 식당에서 밥을 다 먹고 난 뒤 방으로 돌아가 짐을 풀었다. 선배가 샤워를 하는 동안 나는 창문 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시카는…, 아주 커다란 평안이 감도는 곳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까지 휘감아도는 이 온화함과 평화로움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내 샤워를 마치고 나온 선배도 내 옆에 서서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곳 기운이 참 묘해요, 선배.”

“그러게…. 아주 조용하고 차분한 마을인 것 같아.”

나 또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 뒤 우리는 주변을 좀 산책해 보기로 했다. 로지 뒤편으로 난 푸른 목장 길 사이를 걸어가 보니 측면 들판 위에 소와 버펄로들이 모여서 풀을 뜯고 있었다. 그 곁을 지나는 동안에도 참 평화롭고 평안한 기운이 우리를 온통 에워쌌다.

너른 들판을 돌아 나가자 반대편 산봉우리에 자리한 집들이 보였다. 그곳에도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산 속 아주 깊은 곳에도 언제나 집이 있고 논이 있고 사람이 있고…, 삶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별 것도 아닌 듯 매일 반복되는 단순한 삶일지도 모른다. 하나 서서히 저물어가는 석양빛과 어우러지는 이 모든 삶의 풍경들이 눈이 아닌 마음을 파고들며 어딘가 모르게 애잔한 기운을 남겼다.

히말라야 산세의 평화로운 풍경.
사진제공 조시현
시카∼고레파니(Ghorepani·2860m)


“오늘도 계속 계단 길을 오를 것이다.”

신비롭게 느껴지던 시카 마을에서 떠날 채비를 마치고 아침을 먹는 중 검부가 말했다. 선배와 나는 그 말에 너무 망연자실한 나머지 입맛까지 싹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는 것만으로도 몸이 무척 힘든데 계단으로 이어진 오르막길까지 계속 가야 한다니…. 우리는 도대체 왜 타토파니에서 버스를 타고 그만 산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어쩌자고 이 산길을 다시 올라온 것인지 막심한 후회가 밀려들었으나 이미 늦은 일이었다.

산은 한 번 올라온 이상,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갈 수가 없었다. 아예 애초에 오르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올라온 뒤에는 결코 중도에 하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왜, 인지는 나도 잘 알 수 없었다. 다만 길을 되짚어 돌아가는 것이 길을 계속 나아가는 것보다 더 힘들고 괴롭게만 다가왔다. 번듯한 직업이나 애틋한 연인 하나 없이 홀로 견뎌온 20대의 습작기 때에도 그랬다. 방 안 구석에 처박혀 홀로 소설을 써나가는 일이 너무나 고되고 외로워 나는 늘 작가로서의 길을 포기하고만 싶었다. 그러나 어쩐지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좀체 돌아설 수가 없었다. 그렇게 포기하고 마는 순간 나를 따라오게 될 자괴와 허무를 견디는 일이 더 힘들고 괴로운 까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길을 간다는 것은 역시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카 마을의 로지에서 빠져나온 순간부터 우리 앞에는 고행 길만이 쭉 펼쳐졌다. 설상가상으로 고도가 2000m를 넘어가니 다시금 흉통이 조이며 고산병 증세가 나타났다. 숨 쉬기가 점점 힘들어짐과 동시에 체력이 정처 없이 떨어져 내렸다. 쓰롱 패스를 넘던 때와는 또 다른 고통이 우리에게 훅 닥쳐왔다.

수도 없이 많은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는 동안 우리는 다시금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고레파니로 가는 길은 정말 힘들고 고된…, 지옥의 계단과 같았다.

고레파니로 향하는 오르막길의 계단.
고레파니∼간드룽(Ghandruk(Ghandrung)·1940m)


숨이 막혔다. 새벽에 내린 비로 축축하게 젖은 흙길을 밟으며 차분히 걸어가려는데…. 해발 3000m 지점을 넘어가고 있기 때문일까. 피상과 마낭 구간에서 호되게 겪은 고산병 증세들에 다시 시달려야만 했다. 해발 5000m가 훌쩍 넘는 쓰롱 패스까지 갔다 왔으니 해발 3000m 언덕쯤은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게 큰 오산이었다.

가빠지는 숨을 몰아쉬며 오르막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한참을 그렇게 걸어 올라가 보니 크고 너른 언덕이 나왔다. 데우랄리 패스(Deurali Pass·3090m)라는 곳으로 고레파니 산군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개였다. 그곳의 찻집에서 따뜻한 찌아를 한 잔씩 주문해 마신 뒤 곧바로 다시 걸어 나갔다. 다행히 그곳부터는 내리막길이었다. 그러자 고산병 증세 또한 금세 사라져 우리는 다소 빠른 걸음으로 산 속 숲길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후부터는 길고도 먼 내리막길이 내리 이어졌다. 그 길을 가고 또 가다보니 비로소 저 멀리에 자그마한 마을이 하나 드러나 보였다. 검부는 저곳이 바로 간드룽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트레커들이 많이 지나는 곳이라 그런지 곳곳에 독일식 빵집이 자리해 있고 제법 규모가 큰 호텔도 보였다. 우리는 그중 한 군데 호텔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이제…, 이 호텔에서 히말라야의 마지막 밤을 보낼 것이다. 보름이 넘는 시간을 산에서만 보냈더니 솔직히 아쉬운 마음은 없었다. 그저 가슴이 뻥 뚫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시원한 감정만 가득 차올랐다.

선배와 나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쉬다가 저녁때가 되어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검부와 버럼을 만나 시즐러와 볶음밥, 맥주를 주문했다. 그리고 먼저 나온 맥주를 잔에 따라 다함께 건배했다.

한잔 두잔, 술잔이 기울어지는 동안 선배와 나는 저마다 검부와 버럼에게 고맙고도 애틋했던 마음들을 꺼내어 놓았다. 선배는 쓰롱 패스에 오르던 길 손가락 끝이 시커멓게 변할 정도로 얼어버렸을 때 검부가 손수 마사지해주며 장갑을 끼워주던 일, 나는 쓰롱 패스에서 다리를 다쳐 제대로 걷지 못할 때 검부가 끝까지 내 곁을 지켜주며 함께 내려와 줬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검부와 버럼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결코 안나푸르나를 종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신들이 있어 지금 여기 우리가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자 검부와 버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검부는 우리에 대해, 자기가 이제껏 만나 온 어떤 트레커들보다도 강인하고 따뜻한 사람들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이번 트레킹은 자기에게 일이 아닌 휴가와도 같은 여정이었다고…. 그런 검부와 버럼에게, 우리가 또다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게 된다면 그때에도 꼭 동행해 달라고 부탁했다. 검부와 버럼 또한 좋다고 대답하며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했다. 그와 동시에 모두의 맥주잔이 부딪치며 새하얀 거품이 흘러내렸다. 그제야 비로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안나푸르나의 마지막 밤…. 기쁨과 아쉬움, 기대와 회한의 꽃다발이 내 품에 다가와 안겼다.

소설가 김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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