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권 넘게 취급 절도 근거지이기도
트래비스 맥데이드 지음/노상미 옮김/책세상/1만6000원 |
1990년 3월 체포된 스티븐 블룸버그는 미국 최고의 ‘책 도둑’으로 통한다. 268군데의 도서관에서 희귀본을 포함해 2만3600여권을 훔쳤다. 듀크대, 하버드대, 위스콘신 주립 역사학회 등이 피해를 입었다. 훔친 책의 가치는 무려 2000만달러(약 207억원)로 추정됐다.
이 희대의 책 도둑이 재밌는 점은 이만한 가치의 책을 파는 데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저는 그(다른 책 도둑인 제임스 신)가 책을 함부로 대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책을 훔친 것은 단지 돈 때문이었지요.” 범죄자이긴 하지만 책이 너무 좋았다는 블룸버그에게, 애서가들이라면, 묘한 동질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책을 향한 ‘고귀한 광기’에 휩싸였던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예외적인 경우다. 대개 책 절도는 돈벌이 수단이었다. ‘북로우의 도둑들’에 등장한 책 도둑들이 그랬다. “고인의 눈에 얹어놓은 동전을 훔치는 것과 같은 … 파렴치한 범죄행위를 벌였던” 이들은 그저 ‘잡놈’이었다.
20세기 초 미국 뉴욕 맨해튼 4번가의 여섯 블록은 ‘북로우(Book Row)’로 불렸다. 말 그대로 책들이 늘어선 거리였다. 일단 출판된 책이라면 100만권이 넘는 헌책을 취급하는 이곳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값싼 책들에 매료된 사람들, 책 말고는 아는 게 없어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손님을 침입자처럼 대하기도 했던 서점 주인들이 ‘책의 거리’ 북로우를 지배했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천국’이었던 이곳이 도서관의 입장에서는 ‘지옥’이었다. 도서관을 대상으로 조직화된 도둑질을 벌였던 이곳이 절도단의 근거지였기 때문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초기 시집 ‘알 아라프, 티무르’의 표지 사진. 포의 사후 그의 책은 희귀본으로서 서적상, 애서가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
1931년 뉴욕공공도서관에서 알 아라프를 훔쳐낸 것은 폴과 스위드라는 인물의 도움을 받은 새뮤얼 레이너 듀프리였다. 듀프리를 사주한 해리 골드는 북로우 절도단의 두목급 인물이었다. 골드는 훔쳐낸 알 아라프를 여러 서적상들과 접촉해 유통시키려 한 인물이기도 했다. 책이 도난당한 사실을 알게 된 도서관의 특별조사관 윌리엄 버그퀴스트는 북로우의 서적상과 희귀본 거래상 등을 총동원해 알 아라프를 뒤쫓는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헌책방 거리 ‘북로우’의 20세기 초 모습. 싼 책에 매료되었던 독자들, 책밖에 아는 게 없었던 서점 주인들이 지배했던, 지금은 사라진 거리다. 희귀본 거래도 많이 이뤄져 ‘북로우 절도단’이라 불리는 조직화된 책도둑들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책세상 제공 |
‘북로우의 도둑들’은 범죄를 다루고 있지만 책에 열광했던 시대에 대한 정겨운 시선도 담고 있다. 책 도둑에 대해서는 지금도 여전히 관대한 경향이 읽혀진다. 책만이 가지는 독특한 특성 때문에 책에 대한 이야기는 그것이 범죄라고 해도 독자들을 설레게 한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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