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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참사 불러온 정부의 부실한 선박안전관리

관련이슈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입력 : 2014-04-19 17:43:46 수정 : 2014-04-19 17:4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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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부, 일 터지자 "해사안전 관리는 해경 소관" 여객선 세월호의 침몰사고를 계기로 정부의 부실한 선박 및 항해 안전 관리의 실태가 드러나고 있다.

해사안전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 등에서 선장 등 선원에 대한 안전교육만 제대로 이뤄지도록 감독했어도 피해 규모를 크게 줄일 수 있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침몰사고 이후 '내 소관이 아니다'란 태도로 책임 회피에 급급한 해수부 관료들의 행태에 대해서도 비판이 일고 있다.

◇ 구멍 뚫린 해사안전 관리

19일 해수부와 해양경찰청 등에 따르면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열흘마다 세월호에서 소화 훈련, 인명 구조, 퇴선(배를 버림), 방수 등 해상인명 안전훈련을 실시해야 했다.

청해진해운이 해경에 제출해 심사를 받은 세월호의 '운항관리규정'에는 이런 내용의 비상대응훈련계획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또 3개월마다 비상조타훈련을, 6개월마다 충돌·좌초·추진기관 고장·악천후 대비 등 선체 손상 대비훈련과 해상추락 훈련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훈련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고 초기 선장 등 승무원들이 "선실에 그대로 있으라"고 안내방송을 하는 대신 승객들을 갑판으로 불러모아 탈출 대비만 시켰어도 피해 규모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란 점에서 뼈아픈 대목이다.

이처럼 훈련을 소홀히 한 이유로 관리·감독의 부실이 꼽힌다. 운항관리규정을 심사한 해경이나 여객선 운항 면허를 내준 지방해양항만청도 훈련이 계획대로 실시되는지 감독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리·감독 부실은 또 있다. 청해진해운은 15일 세월호 출항 전 인천항 운항관리실에 제출한 '출항 전 점검보고서'에서 승선 여객 450명, 화물 657t, 차량 150대를 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까지 밝혀진 총 승선 인원은 476명이고 이 중 선원 29명을 뺀 여객은 447명이다. 특히 청해진해운이 사고 후 발표한 화물은 1천157t이고 차량은 180대로 보고서 내용과 딴판이다.

출항 전 점검보고서는 순전히 엉터리였던 셈이다.

1차적으로는 선사의 부실한 신고가 원인이지만 이를 걸러야 할 정부 당국의 관리·감독 체계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다.

이 보고서는 선사들의 모임인 한국해운조합이 운영하는 운항관리실에만 제출된다. 회원사들의 모임인 조합이 회원사의 보고서를 받는 셈이다. 해경이나 지방해양항만청이 이를 확인·점검하는 절차는 없다.

더 큰 문제는 출항 전 점검보고서뿐 아니라 해운사의 안전관리 업무 전반을 해운조합이 채용한 운항관리자가 담당한다는 점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해운조합에서 운항관리자를 채용하지만 운항관리자의 직무에 대한 점검, 지도감독은 해경에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리·감독 체계가 없지는 않지만 이번 사례에서 보듯 무용지물인 셈이다. 승선 인원과 화물 적재량에 대한 감독 소홀은 과승·과적으로 이어질 구조적 통로를 열어둔 것이란 점에서 무책임한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 근본적으로는 회원사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해운조합이 채용한 운항관리자가 과연 엄격하게 해운사의 안전운항을 관리·감시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선수가 감독을 겸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도덕적 해이가 생겨나기 쉬운 구조다.

이런 우려는 해운조합의 역대 이사장 12명 중 현 이사장인 주성호 전 국토해양부 2차관을 포함한 9명이 해수부 관료 출신이라는 데서도 확인된다. 이사장 자리가 로비 창구 역할을 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 사안마다 "해경 소관"…발뺌하는 해수부

해경에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해수부 관료들의 태도도 도마 위에 오른다.

이번 사고를 취재하는 해수부 출입기자들이 해수부 관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는 "해사안전 관리 업무는 93년 서해페리호 사건 이후 해경으로 넘어갔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그 사안은 우리 소관이 아니다'란 것이다.

이 논리는 '전가의 보도'였다. 각종 자료나 현황 파악을 요구하는 기자들에게는 어김없이 "그 내용은 해경에서 관리해서 우리는 모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세월호의 항로 이탈 의혹이 일자 기자들이 해수부에 세월호의 항로도를 요구했는데 그때 해수부의 답변은 "그건 해경에서 갖고 있다"였다.

세월호의 운항관리규정을 요청해도 "해경에서 심사하고 심사필증을 내준 것이어서 우린 모른다"는 답이 나왔다.

그러나 이 규정은 해수부가 몰라서는 안 되는 규정이다. 해운법 21조는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운항관리규정을 심사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세월호의 운항관리규정을 해수부가 모르고 있다면 해수부 장관이 이를 심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장관이 법적 의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특히 해수부 홈페이지의 '기관소개'에는 해수부 해사안전국의 기능 중 하나로 '해양안전대책의 수립 및 시행에 관한 사항'과 '종사자에 대한 해사안전에 관한 교육'이 명시돼 있다.

또 해사안전법 4조는 "국가는 국민의 안전한 해양 이용을 촉진하기 위해 국민에 대한 해사안전 지식·정보의 제공, 해사안전 교육 및 해사안전 문화의 홍보에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8일 오후 세월호의 인양 계획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가 전화한 해수부의 모 국장은 "해수부는 세월호의 인양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 전혀 참여하고 있지 않다"며 "그 문제는 해경과 해군, 전문 구난업체가 논의해 결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같은 날 오전 이 국장 산하의 한 과장은 정부세종청사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함께 세월호 인양과 관련한 회의를 열었다.

국장 말대로라면 이 과장은 세월호 침몰사고로 청와대까지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제 업무도 아닌 일로 직원들을 불러모아놓고 회의를 열며 시간을 낭비한 셈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국가적 대형 참사가 터진 상황에서 관할권을 내세우며 부서 간 칸막이를 조장하려는 공무원의 복지부동 행태는 공복의 자세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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