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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속보이는 ‘애도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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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20 22:22:56 수정 : 2014-04-20 22: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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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을 슬픔에 빠뜨린 세월호 사고 이후 기자들은 바빠진 것 외에 눈에 띄는 변화를 또 하나 겪고 있다. 하루 수백통씩 쏟아지던 ‘보도자료’ 이메일이 확 줄어든 것이다.

보도자료는 기업이나 공공기관, 때로는 개인이 알리고 싶은 정책이나 행사 등 새 소식을 담아 언론계 종사자에게 보내는 홍보성 자료다. 보도자료 추이를 잘 살펴보면 홍보 활동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보도자료 건수가 줄어든 것은 최근의 국민적 정서를 고려해 각 기관이 홍보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 연예기획사는 소속 가수가 데뷔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보내면서 “국가적으로 안 좋은 일이 있어 마음 아픈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보도자료를 보내게 되어 개인적으로 마음이 무겁지만,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이기도 했다.

일정이 취소·연기됐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는 늘었다. 본격적인 행락철을 맞아 주말에 열릴 예정이던 문화·체육 행사의 상당수가 열리지 않았다. 서울의 한 자치구는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는 상황에서 국민적 애도에 동참하기 위해” 봄꽃축제 등 행사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백소용 사회2부 기자
특별히 전할 메시지가 없는데도 밑도 끝도 없이 “애도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가 오기도 한다. 주로 정치인들이 보낸 것이다. 한 서울시의회 의원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께 깊은 애도를 표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보냈다. 비통한 심정이라면서도, 어울리지 않게 환한 미소를 띠고 있는 자신의 얼굴 사진까지 첨부했다. “서울시의회가 도울 것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라는 하나 마나 한 다짐도 덧붙였다.

6·4 지방선거를 앞둔 여러 후보들은 애도를 빙자한 자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여객선 침몰사고를 계기로 안전한 지역 건설을 약속한다”,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고인과 유족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등의 내용을 담은 문자메시지를 불특정 유권자에게 보내면서 자신의 이름과 기호를 덧붙여 출마를 알리는 식이다. 이런 메시지를 보면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모든 사람의 관심이 세월호 사고에 집중돼 있어 다른 이슈는 주목을 받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홍보의 초점을 애도와 무리하게 엮어서 감성적 접근을 시도한 ‘애도 마케팅’은 국민 감정만 상하게 한다. 한 아웃도어 브랜드 업체는 “무사히 돌아오길… 부디…”로 시작해 “더 늦기 전에 지금 내 옆에 있는 가족, 친구, 동료들에게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은 어떨까요?”라며 할인 이벤트 소식을 알렸다가 거센 역풍을 맞았다.

이들이 사고 희생자나 실종자를 안타깝게 생각한다면 그 메시지를 왜 희생자·실종자 가족이 아닌 기자나 유권자, 소비자에게 보내는 것일까. 바짝바짝 타 들어가는 가족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요란스럽지 않게, 묵묵히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격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길이다.

백소용 사회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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