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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지난 16일, 밤 늦게 귀가했더니 아내 눈이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퇴근 후 TV 뉴스를 보면서 줄곧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 “학생들을 구조할 수는 있는 거냐”고 연신 물었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하소연도 했다. 안산 단원고 학생들 또래의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남의 일 같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아내 감정은 허망함과 죄책감으로 바뀌었다. “어른들 잘못으로 어린 학생들이 저렇게 됐다.”

대한민국이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늘어만 가는 사망자 숫자에 뉴스나 신문 보기가 겁난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이들도 있다. 온 국민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과 자괴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는 죽음을 초래할 정도의 충격적인 사고를 경험한 뒤 겪는 심한 고통을 가리키는 의학용어다. 반복적으로 사고를 떠올리거나 만성적인 우울·불안 증상과 인지장애를 보이기도 한다. 일상생활이 힘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미군이나 1995년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생존자들이 이런 증세를 나타냈다. 이번 여객선 침몰사고에서는 사고 당사자나 가족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가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워낙 충격적인 일이어서 모두가 내 가족이 당한 것처럼 느끼고 자책하는 감정을 갖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사고 사망·실종자 가족들의 고통에 비하겠는가. 이들이 겪고 있을 정신적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구조된 학생이나 승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원고 교감은 안타깝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한 승객은 “발밑에서 유리창을 두들기며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던 남학생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려 미칠 것 같다”며 울먹였다.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이번 참사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심리적 불안 증세를 극복하도록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줘야 한다”고. 구조된 단원고 학생들은 아직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멍한 상태로 불안과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이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갖지 않고 불가항력적 상황이었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정부는 물론 사회 각계각층의 지속적인 관심과 보살핌이 절실한 때다.

원재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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