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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쳐가는 실종자 가족들…기약없는 생환소식에 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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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20 19:43:17 수정 : 2014-04-20 23:5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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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52(번째). 발견시간 오후(낮) 12시5분, 성명 미상, 긴 생머리, 안쪽 회색 티에 회색 후드 티, 하의 검정 운동복. 검정 가죽케이스 핸드폰….”

20일 전남 진도 팽목항에 마련된 사망자현황 상황판이다. 담당 공무원은 인양된 시신의 인상착의를 기록했고, 실종자 가족들은 몰려가 비통한 표정으로 확인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시신 인양선이 들어오는 바다와 상황판을 번갈아 보면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항구를 지켰다.

세월호가 침몰된 지 시간이 흘러 어느덧 5일째로 접어들자 실종자 가족들의 표정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해경 관계자가 팽목항 대합실 앞에서 구조현장 진행상황을 발표하면 실종자 가족들은 마음을 졸이며 귀를 기울였다. 이전처럼 거세게 저항하거나 의혹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불신이 짙게 밴 목소리로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며 뒤돌아섰다.

시신확인소에는 인양된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가족들이 길게 줄지어 섰다. 가족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확인소에 들어갔다가 허탈한 표정으로 돌아나왔다. 가족들은 “몇몇 시신은 얼굴이 파랗고 손상이 됐지만, 다른 시신들은 얼굴이 마치 자고 있는 것처럼 아주 편안한 표정이라 물에 빠져 죽은 것으로 믿기 힘들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망 장소나 손상 정도가 달라서 그럴 수 있다”고 대답했다.

확인소에서는 실종자의 시신을 찾은 가족들의 오열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친구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인천에서 진도에 왔다는 이모(21)씨는 “(친구의) 어머니는 아직까지 자식들이 살아 있다고 믿고 있지만 아버지는 거의 체념하고 ‘시신이 더 손상되기 전에 발견됐으면’ 한다”며 “5일이 지나도록 생존자 한 명 찾지 못한 정부가 너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20일 전남 진도군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이 DNA 유전자 검사를 받고 있다. 해경은 DNA 샘플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분석한 후 사망자의 DNA와 비교할 예정이다.
진도=김범준 기자
시간이 지날수록 사망자 수가 늘고 있지만 목포 시내의 부족한 장례식장 때문에 유가족들의 속은 또다시 타들어가고 있다.

목포한국병원에 이어 사망자들이 안치되고 있는 목포중앙병원 장례식장에는 19일 밤부터 20일 오전 사이 시신 8구가 들어왔다. 하지만 목포중앙병원에는 안치실이 5실밖에 없어 발걸음을 돌리게 된 유가족들이 경찰과 병원 관계자에게 항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유가족은 고성을 지르고 일부는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목포기독병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최대 6명의 사망자를 받을 수 있지만 현재 시신 10구가 들어가 유가족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해경은 사망자의 정확한 신원 파악을 위해 이날부터 DNA 확인 절차를 추가했지만 검사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적어도 하루가 걸려 사망자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유가족들은 텅 빈 장례식장에서 24시간 대기해야 하는 일이 빚어지고 있다. 이번에 최대 희생자가 발생한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 유가족들은 “텅 빈 장례식장에서 하루 종일 앉아있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시신 안치실이 부족해 장례식장에서 발길을 돌린 한 유가족은 “정부가 오락가락 행정으로 혼란을 키우더니 이제는 시신마저 제대로 안치할 수 없게 됐다”며 “진짜 필요할 때는 도와주지 않으면서 왜 이제 와서 절차 타령이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정진대 목포한국병원 정신의학과장은 “생존자 12명이 목포한국병원에 입원해 있다”며 구조된 생존자들의 심리상태를 고려해 관심을 접어줄 것을 부탁했다. 정 과장은 “생존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잠도 못 자고 있으며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 과장에 따르면 이 병원에 입원한 12명 가운데 절반가량은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이들은 최소 1개월에서 길게는 1년간 심리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병원 측은 전했다.

목포·진도=정선형·이재호 기자 linea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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