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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 버리고 탈출' 선장 살인罪 처벌 가능할까?

관련이슈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입력 : 2014-04-21 18:02:34 수정 : 2014-04-21 1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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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 법리검토 가능성 수백명의 승객들을 여객선에 남겨둔 채 먼저 탈출한 '세월호' 선장의 법적 책임은 어디까지인지를 놓고 수사당국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선장에 대해 엄중 처벌 의지를 보인 만큼 수사결과에 따라선 중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검찰이 선장의 구속영장에 적시한 혐의만 해도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 선박의 선장 또는 승무원에 대한 가중처벌), 형법상 유기치사, 업무상 과실(선박 매몰), 수난구호법 위반, 선원법 위반 등 5가지나 된다.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선장의 신병 확보에 중점을 두고 수사가 마무리 안 된 상태에서 우선적으로 적용가능한 죄명을 구속영장에 적시한 만큼 앞으로 기소죄명에는 다른 혐의가 추가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승객 버리고 도주한 선장,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대형 안전사고가 터질 때마다 불거지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에 대해 검찰이 법리 검토할 가능성이 법조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살인죄의 법정 형량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刑)이다. 검찰이 선장을 구속하면서 적용한 특가법과 비교하면 '사형'이 추가되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다만 살인죄는 고의성을 입증하는 게 관건이다.

일반적으로 살인죄는 지적요소(인식)와 의지적요소(의사)를 모두 충족시킬 때 성립된다. 사망이 발생 가능한 상황을 인식했거나 살인을 목적으로 한 의사가 명확히 입증되야 한다.

다만 일반적인 고의가 없더라도 세월호 선장에 대해 미필적 고의(未必的故意)에 의한 살인죄를 검토해볼 만한 여지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미필적 고의란 범죄사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인식하고 이에 따른 결과를 인용(認容)하는 것으로 살인 의사가 다소 약하더라도 사망이 가능하다는 상황을 충분히 인식했다면 미필적으로 사람을 사망시키려 한 의사가 있다는 점에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세월호 선장인 이준석(69·구속)씨는 여객선이 한쪽으로 점점 기울어지자 배가 침몰하기 전 탈출한 점에서 사고의 위험성은 충분히 인식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문제는 이씨가 여객선에 남아 있는 승객들을 사망에 이르게 하려는 살인 '의지'가 있었느냐는 점이다.

배가 침몰하면서 승객들 중 사상자가 발생할 것을 예상하고도 이씨가 선장으로서 적극적인 구호 조치를 하지 않고, 침몰 상황을 방관했거나 필요한 의무를 고의로 회피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 의율을 검토해볼 만하다.

반면 이씨가 선원(승무원)들에게 승객들에 대한 탈출을 지시했거나 이씨 본인이 부상 등으로 인해 승객들을 직접 구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살인죄의 책임을 묻는 건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수사당국은 세월호 선원과 승무원, 승객들을 상대로 사고 당시 구체적인 상황이나 관련 진술, 세월호 교신 내용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면서 선장에 대한 처벌 수위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대형 참사'마다 살인죄 놓고 고심

검찰은 과거 대형 사고에서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기소를 검토하거나 실제 기소한 적이 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수사한 서울지검 형사5부는 당시 사고 책임자들에 대해 주위적으로 살인죄, 예비적으로 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는 삼풍백화점 사고가 사망 471명, 부상 718명, 실종 31명 등 건국 이래 단일사건으로서는 최대 희생자를 낸 대형 참사인 점을 고려한 것이었다.

당시 수사팀 검사들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가 인정받을 수 있는 요건으로 객관적인 붕괴위험의 존재, 붕괴위험에 대한 인식, 붕괴결과에 대한 인용 등 세 가지 조건을 꼽았다.

삼풍백화점 회장과 사장 등은 건물이 붕괴되기 전 바닥침하현상이나 균열이 발생한 사실을 미리 인지했고 검찰수사에서도 붕괴위험 가능성은 대부분 시인했다.

다만 붕괴위험에 대한 인식이나 붕괴결과에 대한 용인을 놓고 해석이 분분했다.

검찰은 백화점 경영진이 붕괴위험을 인식했다고 보는 증거로 균열현장을 각각 수차례 확인하거나 상세한 보고를 받은 점, 균열상황이 시간의 진행에 따라 진전됐고 이러한 추이를 면밀히 관찰했던 점 등을 꼽았다.

붕괴결과를 용인했다고 보는 증거로는 삼풍백화점 시설이사, 영업전무 등이 건물 균열사실을 보고받은 뒤 직원들에게 고객, 언론 등에 알려지지 않도록 수차례 보안을 당부한 점, 영업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고객을 즉시 대피시키지 않고 영업이 끝난 후 보수공사를 실시하려 한 점 등을 들었다.

반면 백화점 붕괴 전 균열 부분이 나타난 4~5층 위주로 일부만 대피시킨 것은 건물 전체가 붕괴될 것을 사전에 예상했거나 인식한 것으로 볼 수 없고, 백화점 건물 자체 및 상품의 손실, 인명 살상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등을 고려할 때 백화점 붕괴로 인한 손해가 당일 영업이익보다 훨씬 더 크다는 점 등은 살인죄 의율에 배치되는 증거로 제시됐다.

결국 이 같은 법리검토 끝에 검찰은 피의자들을 살인죄가 아닌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기소했다.

당시 대법원 판례가 살인죄의 성립에 있어서 결과발생에 대한 용인의사를 요구했기 때문에 검찰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의 경우 붕괴결과에 대한 용인을 명확히 인정할 수 없다고 보고 살인죄로 의율하지 않았다.

다만 검찰이 살인죄로 기소한 사례도 있었다. 1970년 발생한 '남영호 침몰' 사건이다.

남영호(서귀포~부산)가 적재용량과 승객 정원을 초과한 상태로 항해하다가 파도로 인해 침몰하면서 약 321명(실종자 포함)이 사망하고 선장 등 13명만이 구조된 사건이다.

당시 검사는 선장을 주위적으로 살인죄, 예비적으로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의율했지만 이듬해 1심에서는 살인죄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당시 법원은 가족을 8명 거느린 선장이 약 2일 정도 바다에서 수영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겨울에 망망대해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사고발생을 예견하고 인용하면서까지 과적운항했을리가 없다는 이유로 살인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검찰은 선주에 대해서도 주위적으로 살인방조죄로 의율했지만 마찬가지로 1심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비록 기업인으로서 눈 앞의 이익에만 급급했더라도 몇만원의 운임 이익을 얻으려고 1억5000만원 상당의 남영호선박 자체를 수장해 버릴리 없고, 익사한 승객 등 300여명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으로 경제적 파탄이 불가피한 사실을 알면서 전복사고의 결과를 예견했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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