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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관점 달라지면 화폭에 더 많은 차원 형상화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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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21 20:24:35 수정 : 2014-04-21 20: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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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시각언어의 논리 연구해온 화가 정수진 작업실 한켠의 탁자 위에 책들이 어지러이 놓여 있다. 신경생리학, 원효의 탄비량론, 괴델의 증명, 기호학, 샤먼 등 결코 가볍지 않은 책들이다. 초공간, 대각선 논법, 중론송에서 고구려의 고승 승랑에 관한 책까지 흔히 서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죽음의 한 연구’로 유명한 박상륭의 소설 ‘평심’도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 서울 서초동 정수진(45) 작가의 작업실 풍경이다. 캔버스와 이젤,물감 등이 없다면 주인이 화가라는 것을 짐작키 어려울 정도다.

“그림을 그리면서 풀리지 않는 화두들이 있을 때마다 손에 책을 들어요. 종종 지금 우리가 그림을 읽고 보는 방식이 정말 다일까, 의문을 제기하게 됩니다. 그림이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한 것은 누구보다 그림을 그리는 나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보는 사람 누구나 제각각 가질 수 있는 모든 의미가 그림의 의미라면 나는 무엇을 그리고 있다는 것인가? 간혹 작가들이 그림의 의미를 설명해 주는 경우가 있어도 그것을 납득할 만한 보편적 체계나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림을 그릴수록 궁금증은 커져갔다. 단순히 감각적 작업으로 치부하기엔 허무하기 그지 없었다.

“지금 우리가 그림을 읽고 보는 방식이 정말 다일까요. 문자에도 체계가 있고 음악에도 체계가 있는데 그림에만 체계가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지요.”

물론 그림에 대한 체계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동양에서는 오래전에 화론이라는 것이 있었고 서양에서도 도상학이란 것이 있었다.

“그림을 이해하고 읽기 위한 노력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어떤 것도 나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지는 못했습니다.”

우선 시대가 변했다. 그에 따른 수많은 형식 실험들이 이뤄졌다. 이런 변화를 이해하게 해줄 만한 체계, 새로운 화론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러니 그림은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되어가는 듯하다.

“저 역시 그림을 그리지만 그림이 무작위로 붓 가는 대로 그려서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름대로 어떤 체계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게 됩니다.”

작가들은 때론 무의식의 표출이라고 스스로를 설명하기도 하지만 궁색함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일반적으로 무의식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무의식과 혼돈을 쉽게 연관시키는 것이다.

“무의식은 정교한 논리체계를 가지고 있고 그 체계를 따라서 움직이고 있어요. 그 논리 체계가 너무나 정교해서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의식이 무의식의 세계를 혼돈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무의식이 가진 논리 체계는 우리 각자의 의식적 작용을 끊임없이 분석하고 있으며, 그 결과를 외부로 표출하고 있다”며 “조지 오웰이 ‘1984년’이라는 소설에서 그려낸 빅브라더는 우리들 각자의 내부에 있는 무의식의 눈”이라고 했다.

“우리들 각자의 의식에 미치는 무의식의 논리 체계는 같지만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우리의 의식 작용이 다르기 때문에 세상에는 다양한 현상들이 펼쳐질 수 있게 됩니다. 무의식의 논리 체계는 의식으로부터 받아들인 정보를 패턴으로 분석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무의식은 끊임없는 패턴 제조기인 셈이지요.”

그는 무의식에 내재된 패턴의 논리를 읽는 방법에 주목하고 있다. 그림은 이런 논리 체계를 시각적 단면으로 보여주는 매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차원의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형상화된 화폭도 다차원의 반영으로 이해될 수 있지요.”

유클리드 기하학에선 점은 0차원, 면은 이차원, 입체는 삼차원으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의 눈은 삼차원만을 볼 수 있다. 눈은 길이와 넓이뿐만 아니라 두께가 없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점, 선, 면의 0,1,2차원은 4차원만큼 볼 수 없는 차원인 것이다.

“보이지 않는 차원은 곧 우리의 감각과 의식의 차원이라 할 수 있지요. 유클리드가 구분한 차원의 기준을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으로 간주하는 데서 오류가 생깁니다. 유클리드 차원에 대한 분류는 상징적으로 받아들일 때만 유효합니다.”

서울 서초동 작업실의 대형 화폭 앞에 서 있는 정수진 작가. 그는 “그림은 ‘다차원의 기하학’이기에 진보된 매체가 발달한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최첨단의 매체”라고 강조한다.
사실상 다른 차원으로 여행을 한다는 것은 우리 의식의 내부로 들어가는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우리의 눈은 더 많은 차원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의식의 도움으로 가능하다.

“시각은 우리의 의식작용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아는 만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가 인문학자처럼 많은 독서량을 감내하는 이유다.

“보는 것에 대한 관점이 달라진다면 더 많은 차원을 보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저는 화폭에 그런 다차원을 형상화하려고 합니다.”

그는 책이라는 텍스트의 구조를 통해 나름의 다차원적 의식을 담금질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인문기자 못지않게 독서량을 소화해 내는 이유다. 청소년 시절에 영미 문학은 물론 러시아 소설에 흠뻑 빠졌던 문학소녀의 기질도 한몫하고 있다.

“‘이 그림의 뜻은 뭔가?’라는 질문은 너무나 광범위한 질문이고 ‘이건 뭐야?’라고 끊임없이 묻는 어린 아이들의 질문과도 다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림이 다차원을 담는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단답형의 답을 구하려 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우리는 다차원을 통해 인간정신의 고차원적 성취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예술을 통해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느낌과 감각의 세계는 그 세계의 비가시성을 버리고 색채와 형태로 가시화되어 평면에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반면에 보이는 물질의 세계는 그 세계의 물질성을 벗고 색채와 형태의 작용을 통해 평면에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바로 그림이지요.”

서울에서 태어난 정수진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대학원을 졸업했다. 시각언어의 고유한 논리를 연구해 온 작가는 평면의 다차원적 구조를 가시화한 작업으로 독자적 회화의 입지를 굳히며 국내외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5월18일까지 갤러리 스케이프. (02)747-4675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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