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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황제의 옥새는 중원 지배의 상징이었다. 1368년 몽고족을 몰아내고 황제에 오른 명 태조 주원장은 땅을 치고 통탄했다. “천하가 비로소 한 가족이 됐지만 아직 마음에 걸리는 일이 남았다. 전국옥새(傳國玉璽)를 얻지 못한 것이 한스럽도다!” 원나라 황제가 명의 추격을 피해 옥새를 들고 달아난 것을 한탄한 말이었다.

전국옥새는 처음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화씨지벽’의 명옥으로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옥새에는 ‘하늘로부터 천명을 받아 장수를 누리고 영원히 번창하리라’는 한문 글씨가 씌어 있었다. 천하제일의 인장인 만큼 역대 황제는 너나 할 것 없이 손에 넣고자 애를 태웠다. 진이 망하자 시황제의 손자는 한고조 유방에게 이 옥새를 바쳤다. 삼국시대에는 손견과 원술을 거쳐 조조에게 넘어갔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뒤 송, 원에 이어 청의 수중에 들어갔다. 마지막 주인은 장제스였다. 현재 대만 고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하지만 10세기 중엽 전란의 와중에 시황제의 진품 옥새가 사라지고 위조품만 전해졌다는 소리도 나온다.

조선의 왕들도 옥새를 왕권의 징표로 중히 여겼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개국한 후에도 ‘고려국왕지인’이란 글씨가 쓰인 고려 옥새를 사용했다. 명 황제로부터 정식 책봉을 받지 못한 탓이다. ‘조선국왕지인’의 새 옥새를 받은 것은 아들 태종이 즉위하고 나서였다.

나라의 명줄이 경각에 처하면서 옥새의 운명도 바뀌었다. 청에 굴복한 인조는 치욕적인 항복의식을 치른다. 왕은 명나라 옥새를 청에 바치고 새 옥새를 받았다. 이후 왕들은 사용한 인장은 한문과 여진 문자가 섞인 청나라 옥새였다. 하지만 청의 쇠락으로 옥새의 운명은 또다시 바뀐다.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 탄생을 계기로 ‘황제지보’의 글씨가 쓰인 국새를 새로 만들었다.

대한제국 국새가 60여년 만에 돌아온다는 소식이다. 25일 방한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국새와 어보 등 9과를 한국에 반환할 예정이라고 한다. 6·25전쟁 때 미군이 궁궐에서 훔쳐간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11월 미국 국토안보부가 압수해 이번에 고국 땅을 밟게 됐다고 한다.

국새의 귀환은 나라의 영욕을 대변한다. 반세기 넘게 타국을 떠돈 국새의 유랑은 자기 안위조차 지키지 못하는 민족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국새의 귀환일, 대한민국은 통렬한 반성문을 써야 한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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