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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 뒤의 자산가' 유병언 일가 행적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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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23 20:47:42 수정 : 2014-04-23 20:4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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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한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에 검찰과 국세청, 금융당국이 수사칼날을 정조준함에 따라 그 일가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23일 법조계와 관련업계에서는 유 전회장 일가에 대해 '커튼 뒤의 자산가'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유 전회장과 아들 대균(44), 혁기(42)씨 등 3부자의 행적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대균씨와 혁기씨는 청해진해운을 사실상 지배하는 회사인 아이원아이홀딩스의 최대주주로 각각 19.4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대균씨는 조각가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으며, '종교적 후계자'로 알려진 혁기씨는 지난해 봄부터 유럽에 머물고 있다.

유 전회장 일가에 대해 수사하고 있는 인천지검 특별수사팀(팀장 김회종 차장검사)은 유 전회장과 대균씨 등 관련자 30여명에 대해 지난 21일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다. 수사팀은 압수물 분석 진행상황과 참고인에 대한 소환조사가 어느 정도 이뤄지면 유 전회장 등을 소환한다는 계획이다.

또 유럽에 있는 혁기씨에 대해서는 조사가 필요한 경우 원활한 수사가 이뤄지도록 귀국을 최대한 설득한다는 방침이다.

탄탄한 중견그룹을 경영했던 유 전회장에 대해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그가 지난 1987년 발생한 '오대양사건'의 배후자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는 점이다.

'오대양사건'은 지난 1987년 8월 경기도 용인시 남사면에 위치한 공예품 제조업체 오대양의 구내식당 천장에서 회사 대표 박순자씨를 비롯해 32명의 시신이 발견된 사건이다.

사이비종교 교주였던 박씨가 신도들과 함께 집단 자살한 사건으로, 숨진 사람들은 모두 기독교복음침례회(세칭 구원파) 신도였다.

검찰은 변사 사건 자체는 동반 자살로 결론내렸다. 다만 변사 사건의 원인 중 하나를 유 전회장의 종교적 사기행각이라고 판단했다.

유 전회장은 구원파 신도들에게서 11억9000여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기소돼 1992년 5월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당시 검찰의 공소사실을 보면 유 전회장의 이전 행각들을 속속들이 알 수 있다.

유 전회장은 1941년 2월 일본 교토에서 출생해 46년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건너온다. 1962년 성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구 삼덕동에서 미국인이 운영하는 선교사 양성학교를 다니며 기독교의 교리 등을 전수받았다.

이후 장인이 되는 권신찬 목사와 대구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전도활동을 벌였다. 이와 동시에 연탄공장 등을 경영했다.

유 전회장은 자신을 따르는 신자가 늘자 서울·인천·안양 등 수도권으로 세력을 넓힌다. 1970년 경에는 권 목사와 함께 '한국평신도 복음선교회'를 조직한다. 1972년 목사안수를 받고, 극동방송국의 목사로 활동하며 교세 확장을 위해 노력한다.

교인이던 유 전회장이 기업인으로 변신한 것은 '복음은 생활을 통해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평신도들이 복음을 깨달았다고 할지라도 생활고로 교회를 등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허사라는 주장이다.

유 전회장은 1976년쯤 신자들의 헌금으로 조성한 자금을 이용해 부도직전에 있던 삼우트레이딩을 인수한다. 이후 1978년 3월 22일에는 대표이사로 취임한다. 1981년 11월쯤에는 한국평신도 복음선교회의 명칭을 기독교복음침례회로 바꾼다.

유 전회장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차용한 돈은 하나님께서 탕감해주신다", "돈을 내서 회사를 살려야 천국에 간다"는 등의 설교를 통해 신도들의 자금을 모집해 사업을 키워간다.

앞서 1979년 인수한 태양주택개발의 이름을 1982년 세모로 바꾼 것을 전후로 유 전회장의 사업은 탄탄대로를 달린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 전 새마을본부중앙회장과 친분이 있던 그는 1986년 9월 유수의 업체를 물리치고 한강유람선 운영권을 따냈다.

또 1995년 세모 해운사업본부에서 독립한 세모해운은 국내 최대의 연안여객선 업체로 자리를 잡았다. 당시 세모해운은 서해안과 남해안 20여개 항로에 27척의 여객선과 화물선을 운항하며 이 지역의 여객운송과 화물수송의 85% 이상을 점유했다.

잘 나가던 세모는 1997년 8월 12일 최종 부도처리된다. 핵심 계열사였던 세모해운의 적자가 누적되고, 한보사태 이후 제2금융권이 자금회수에 나선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부도 당시 세모그룹의 총자산은 7000억, 매출액은 3600억원 규모였다.

이후 유 전회장은 언론에서 자취를 감췄다. 유 전회장은 이후 '아해(Ahae)'라는 가명의 사진작가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해는 유 전회장의 호(號)다.

'아해'는 지난 2012년 5월 통째로 경매에 부쳐졌던 프랑스 쿠르베피 마을을 52만유로(약 7억7000만원)에 낙찰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해'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유명하다. 뉴욕·런던·모스크바·베네치아 등에서 전시회를 진행했다. 특히 2012~2013년에는 파리 루브르박물관 앞 튈르리 정원과 베르사유궁에서 잇달아 사진전을 열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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