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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우리 안에 아이히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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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24 21:08:08 수정 : 2014-04-24 21: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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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고리 끊은 충격적인 세월호 참사
철저히 규명·단죄하되 악의 평범성 극복할 길도 모색해야
‘악의 평범성’을 설파한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다. 요컨대, 평범한 사람도 극악한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변적 추론이 아니다. 아렌트는 유대인 희생자들을 가스실로 보낸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죄를 추궁한 1961년 예루살렘 특별법정 재판을 지켜보면서 이 명제를 끌어냈다. 나치 지도자 정신상태가 정상이었을 리 없다는 통념에 반하는, 오싹한 명제였다.

아이히만만이 아니다. 헤르만 괴링, 루돌프 헤스 등 뉘른베르크 법정에 선 나치 핵심 20여명도 정신적으로 건강했다. 전문가들이 2년에 걸친 개별 면담과 심리 검사에서 도출한 결론이다. 괴링 등도 학살극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괴물들이다. 인간은 미치지 않고서도 미친 짓을 하는 존재인가. 전문가들은 “그렇다”고 답했고, 아렌트는 그것을 ‘악의 평범성’으로 규정했다.

벌써 열흘째다. 5000만 국민의 눈은 축축이 젖어 오늘도 진도 해상을 향한다. 세월호 참사는 이중삼중 충격이다. 그 많은 대형 사건사고를 겪고도 아직도 정신 못 차린 후진사회 몰골을 다시 보게 된다는 점에서 우선 그렇고, 그 죗값을 순진무구한 어린 학생들이 대신 치르게 됐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악의 평범성 명제를 곱씹어야 하는 현실 또한 기가 막힌다. 

이승현 논설위원
문명의 이기는 불가피하게 흉기의 속성도 갖는다. 일상에 없어선 안 될 식칼도 강도 손에 들어가면 상해도구로 변한다. 차량, 선박, 항공기는 더 위험할 수 있다. 문명의 이기를 다루는 이들에게 국가와 사회가 기대하는 것은 살신성인이 아니다. 멸사봉공도 아니다. 다만 제 역할과 책무를 다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을 뿐이다. 그런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요리사를 겁내지 않는다. 큰 걱정 없이 버스에 오르고, 선박에 탑승한다. 서로 믿기에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믿음의 고리가 툭 끊겼다. 세월호 이준석 선장과 탈출 승무원들이 자행한 몹쓸 짓이다.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선장은 16일 일부 승무원들과 함께 단원고 학생의 조난신고로 출동한 해경 경비정에 냉큼 올라타 탈출했다. 대다수 승객의 발은 “객실에 있으라”는 안내방송으로 꽁꽁 묶어놓고. 시시각각 물이 차오르는 침몰 선박을 지킨 이들은 300명 가까운 승객과 애꿎은 나머지 승무원들이다. 그 얼마나 무서웠을까. 상상만 해도 속이 뒤집힌다.

이 선장은 승객들이 절망할 때 물에 젖은 5만원권을 말렸다. 19일 구속 이후엔 밥도 잘 먹고 낮잠도 잔다. 검경 수사에 임해서는 항해사, 조타수 등과 책임을 미루는 ‘핑퐁게임’을 하는 모양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검찰은 ‘부작위 살인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뭘 적용하든 법적 책임은 단호히 물어야 한다. 선박회사와 그 배후, 그 배후의 배후 책임도 철저히 규명하고 가차없이 단죄해야 한다. 그래야 이번에 끊긴 믿음의 고리가 그나마 다시 이어질 길이 열린다.

우리 모두 평범하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빌고 또 빌어야 하겠지만, 누가 언제 괴물로 변할지 모른다. 악의 평범성 명제가 그렇게 시사한다. 말초적 생존본능 대신 문화적, 사회적, 법적 규범이 살아 숨 쉬는 세상을 일구려면 이를 감안한 정밀 처방도 마련해야 한다. 이른바 ‘관피아 척결’이 됐든, ‘국가개조’가 됐든 법제적으로 악기(惡氣)를 제어할 탄탄한 처방이어야 한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이번 참사는 인간의 문제로 수렴되는 감이 짙다. 법과 제도를 손본다 해도 인간이 바뀌지 않는 한 뭔 효험이 있을지 의구심이 일기도 한다.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그렇더라도 평범한 인간이 쉽게 괴물로 변하는 황당한 현실 구조를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연한 대처가 필요하다.

아렌트는 “우리 안에 아이히만이 있다”고 했다. 어쩌면 세월호가 던진 궁극적 숙제는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어찌해야 악의 평범성에, 우리 안의 아이히만에 대처할 수 있을까. 다들 깊이 숙고할 일이다. 선장, 선박회사, 사주 일가, 정부만 손가락질할 게 아니라….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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