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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과 소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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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6-20 21:41:51 수정 : 2014-06-20 21: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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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적 영감·상상력의 원천은 독서
문학은 인간을 이해하는 소통의 창
나의 직업은 글을 쓰는 작가이다. 글이란 그 사람이 겪은 것, 읽은 것, 생각한 것에서 나온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이다. 그리고 생각이란 나머지 두 가지, 즉 겪은 일과 읽은 책을 통해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겪은 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무엇을 겪든 모든 일에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다 이야기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 것은 다르다. 나는 35세에 뒤늦게 작가가 됐는데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작가로서의 내게 가장 많은 영감과 상상력을 주는 것 역시 독서이다.

그러나 지금도 나는 작가보다는 독자로 보내는 시간이 더 좋다. 좋아하는 작가에게는 ‘팬질’도 한다. 동료 작가의 소설을 읽고 흥분을 삭이지 못해 한밤중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일도 종종 있다.

뉴욕의 헌 책방에서 소설가 필립 로스의 사인본을 발견하고는 사진을 찍어 대화창의 프로필 사진으로 쓰기도 했다. 30만원이 넘어서 사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또 나는 가끔 작가가 아닌 독자로서 북 콘서트에 간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동료라 해도 그날은 단지 좋아하는 작가이므로 무대를 바라보는 마음이 무척 설렌다.

김중혁의 소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은 과거를 지우는 탐정의 이야기이다. 한국 소설의 재미와 세련됨과 독특한 사유를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잊고 싶어했으나 부정할 수는 없었던 내면의 상처. 그것들이 표면에 떠올랐다가 하나씩 가라앉으며 사라지는데, 남는 것은 위로받은 마음이다. 과연 북 콘서트에 온 독자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그의 소설 한 대목을 듣고 제목을 알아내는 퀴즈 시간, 한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답을 맞히곤 했다. 콘서트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광주를 다룬 소설이다. 시적인 문장은 아름답고, 사실적인 시선은 담담하지만 고통스럽다. 울면서 읽어야 했지만 이 소설이 남기는 것 또한 정화된 위로이다. ‘그들이 왜 그래야만 했을까’라고 끊임없이 묻게 되는데, 결국 ‘인간은 존엄한 존재이며 삶은 지켜낼 만한 가치가 있다’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콘서트에 온 독자들 역시 시종일관 흐트러짐 없이 무대에 몰입했다. 삶에 질문을 품는 진지함과 문학의 미적 감수성에 대한 열망이 뿜어나왔다.

은희경 소설가
나는 많은 시간 스마트폰을 붙들고 산다. 검색과 쇼핑과 은행거래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하다 보면 ‘내가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은 문자를 익힌 거야’ 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달라진다. 내가 살아가면서 가장 잘한 일이 문학을 알게 된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문학은 나에게 직업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실패와 두려움과 고독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를 알고 인간을 이해하는 단서를 얻게 해주었다. 그리고 나와 인간과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그 일은 지금도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문학을 알지 못했다면 나는 나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인생이 훨씬 힘들고 배타적이고 경직됐을 것이다. 책을 통해 모순을 보고 질문을 품고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찾는 시간이 없으면 내가 나 자신이 아니라 프로그래밍된 시간을 처리하는 기계 같다는 느낌이 온다. 두 작가의 콘서트가 행복했던 것은 문학이 주는 공감 덕분이었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을 겪은 뒤, 숨겨져 있던 추악한 얼굴들을 많이 보았다. 그때마다 우리 사회가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작가 몇 명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그들은 공감 능력을 키우기 위해 문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자비로 좋은 책을 소개하는 블로그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진심으로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어떤 사람들은 공감 능력을 통해 제발 염치를 알게 됐으면 싶다. 독자로서 나는 문학이 그런 일을 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문학 독자로서 살 수 있다면 바쁘고 힘들어도,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아직 새로움과 즐거움이 남은 것이니까.

은희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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