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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윤의 내밀한 미술사] <4> 지구본 앞의 두 철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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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6-26 21:44:55 수정 : 2014-12-01 12:4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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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웃는 두 철학자… 세상 바라보는 따뜻한 연민은 ‘한마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생가가 있는 충북 음성에 가보면 지구본 모형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기념관 앞 연못과 광장의 중앙에 있는 지구본은 세계평화의 이념을 상징화한 것이다. 그러나 국제교류관계의 행사가 아니면 지구본의 조형물을 좀처럼 보기가 힘들어졌다. 대신 동네 시장에 늘어선 어린이 학습지 홍보 가판대에 진열된 지구본을 가끔씩 볼 수 있다. 학습지를 신청한 아이들만이 받을 수 있는 알록달록한 작은 지구 모형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국가와 도시의 이름들이 빼곡히 쓰여 있다.

완구로서의 기능이 남아 있을 뿐, 여기저기 돌려 가면서 육지와 바다의 지형을 눈으로 익히기 위한 용도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워낙 구글 어스와 같은 위성 영상 지도 서비스를 통해 지형과 건물의 3D 이미지에 익숙해졌고, 둥근 지구본보다는 인터넷 이미지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최초로 만들어진 지구 모형은 환재 박규수(1807∼1877년)에 의한 ‘지세의 (地勢儀)’로 알려져 있다. 연암 박지원의 손자였던 그는 대원군 시절의 북학파로 문호를 개방하여 외국과의 통상을 통해 개화를 추진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김옥균과 같은 급진 개혁파들은 박규수의 사랑방을 드나들며 개화사상에 눈뜨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지구본에 얽힌 일화는 젊은 김옥균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박규수는 지구본의 축을 돌리며 거대한 제국 청나라는 부동의 그 자리에 늘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달리 보면 그 자리는 미국이나 조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자신이 갖고 있던 천문학의 지식을 발휘하여, 막강했던 청의 세력이 쇠하고 있음을 깨닫게 했다. 또한 기존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일화는 청나라에 의존하려던 수구당을 몰아내려 1884년 12월에 일어난 ‘삼일천하’ 갑신정변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헨드리크 테르 브뤼헌의 ‘우는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 (1628년, 85.5 x 70cm,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턱을 괴고 있는 헤라클레이토스는 늘 무겁고 교훈적인 내용을 어려운 말로 설파하였고, 그 때문에 ‘어두운 철학자’라고 불렸다. 위트레흐트에서 활약한 화가 테르 브뤼헌은 어리석음으로 넘쳐나는 이 세상을 개탄하는 헤라클레이토스가 지구본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서양에서는 육로와 수로가 함께 표시된 지구본이 대항해 시대 이후에 바닷길을 보기 위한 중요한 장치로 사용되었다. 해상로를 개척하며 동양과의 무역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네덜란드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은 지도와 지구본의 제작이었다.

1595년에 4척의 상선이 암스테르담을 출발해 긴 항해 끝에 자바 섬에 도착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17세기에 설립된 동인도 회사는 아프리카의 희망봉에서 지금의 대만에 이르는 광범위한 범위에 걸쳐 무역 거점을 확보했다. 정확한 지리적 정보가 없이는 바닷길을 다스리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당시의 가장 앞선 과학기술로 지구와 지구본을 만들었다. 항해 중에 발견된 지형들을 재빠르게 최신판의 지도에 기록하였고, 레이던과 프라네커르 두 대학에서는 대형 지구본을 강단에 올려놓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헨드리크 테르 브뤼헌의 ‘웃는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와 ‘우는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지구본을 모티브로 한 흥미로운 작품이다. 그 희소성 때문에 신분을 상징하는 소장품으로 부유한 계층의 서재에 진열되었던 지구본의 인기를 반영하듯 동일한 주제의 그림들이 비슷한 시기에 많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그림 속에서는 단순한 장식품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시각적 상징물로 등장하고 있다. 십대에 이미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던 테르 브뤼헌은 당시 강렬한 명암의 효과를 극대화한 카라바조의 화풍에 영향을 받았다. 복잡하지 않은 구도 안에 소수의 인물을 큼직하게 그리는 것을 선호했던 화가는 호소력 짙은 포즈와 표정을 통해 사실감 넘치는 표현을 했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의상의 주름 사이로 반사되는 빛을 세심하게 그려 부드럽고 독특한 벨벳의 재질감이 더욱 돋보인다. 

헨드리크 테르 브뤼헌의 ‘웃는 철학자 데모크리토스’ (1628년, 85.5 x 70cm,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비관적인 태도를 보인 헤라클레이토스와는 정반대로 데모크리토스는 위선과 탐욕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을 향해 오히려 큰 소리로 웃고 있다. 지구본은 당시 부유한 계층 사이에서 신분을 나타내는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인기가 있었다.
그렇다면 왜 데모크리토스와 헤라클레이토스는 콤비처럼 함께 등장할까? 데모크리토스는 화면 앞을 향하여 지구본 위에 왼손을 편안히 올린 자세에서 오른손의 검지로 오른쪽 끝을 가리키며 입을 벌려 웃고 있다. 기원전 5세기에 활약한 그는 허무하기 짝이 없는 세상사에 매달려 사는 사람들을 보며 웃었다고 해서 ‘웃는 철학자’라고 불렸다.

반면에 헤라클레이토스는 몸을 반쯤 돌리고서는 지구본에 걸치고 있는 오른팔로 턱을 괸 자세를 하고 있다. 왼손을 허공에 들어올리며, 무언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뺨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세속적인 학자들을 멀리하고 혼자서 교훈적이며 난해한 내용의 철학을 펼쳤기에 ‘어두운 철학자’라 불렸고, 늘 턱을 괴고 고민하는 고독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이런 대조적인 두 철학자의 성격을 빗대어 유베날리스는 “한발짝 내딛고 세상을 나가보면 욕심과 허영에 가득찬 인간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헤라클레이토스는 울음을 터뜨렸고, 반대로 데모크리토스는 깔깔대고 웃기 시작했다” 라고 풍자하였다. 즉, 후대의 저술가들은 데모크리토스의 웃는 모습은 세상의 부조리와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냉소로 해석했던 것이다. 

페터르 파울 루벤스의 ‘데모크리토스와 헤라클레이토스’ (1603년, 125 x 96cm, 국립 조각 미술관, 바야돌리드)
울고 웃는 두 철학자를 그린 이 그림으로 루벤스는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당시의 세력가였던 레르마 공작도 흡족해 한 이 주제를 고른 루벤스의 기민함을 통해 훗날 외교관으로 활약할 수 있었던 그의 자질을 엿볼 수 있다.
울고 웃는 철학자의 주제는 위대한 화가 루벤스가 젊은 날 성공할 수 있던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화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루벤스는 만토바 공작에게 고용되어, 펠리페 3세와 왕의 측근인 레르마 공작에게 여러 점의 복제품을 선물로 주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스페인으로 향하는 도중에 빗물에 의해 심하게 손상되어 도저히 그 그림들을 바칠 수 없게 되자,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그는 바로 ‘웃는 데모크리토스와 우는 헤라클레이토스’를 그렸다고 한다. 그가 생각해낸 이 주제의 그림은 당시 까다롭기로 유명했던 레르마 공작의 마음에 쏙 들었고, 이 일로 인해 여러 점을 주문 받아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철학적인 성찰이 담겨진 웃고 우는 철학자의 모습은 어쩌면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중도’의 길을 가르쳐 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매일 아침 신문이나 뉴스를 보며 박장대소를 하고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림을 보며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태도를 돌이켜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사는 세상을 축소한 지구본 앞에 선 두 명의 철학자의 태도를 통해 자신이 살아야 할 길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에 유독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웃음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긍정과 미래에의 낙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울음 역시 단지 슬픔과 절망의 표현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연민의 마음에서 나올 수도 있다.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는 낙관론자와 희망을 잃지 않는 비관론자는 서로 상통한다는 말이 진리처럼 다가온다. 헤라클레이토스와 데모크리토스의 행동은 다르지만, 이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만큼은 소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에는 완전한 비극도 희극도 존재 하지 않기 때문에 울고 웃는 두 철학자는 늘 함께 그려져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양정윤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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