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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칼럼] 제재와 관여는 외교의 양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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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6-29 21:43:06 수정 : 2014-06-29 21:4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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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스마트외교’ 미얀마 개혁 유도
北에도 어떻게 조합할지 전략 필요
얼마 전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서 조촐하지만 의미있는 기념식이 있었다. 바로 1983년 아웅산 국립묘지 폭파사건으로 희생된 17명의 순국자를 기리는 기념비 제막식이었다.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열린 제막식에서 참석자, 특히 유족들은 우리 외교장관의 기념사에 눈시울을 적셨다. 그래도 사건이 발생한 지 무려 21년 만의 일이니, 만시지탄의 염이 컸다.

김태현 중앙대 교수·한국국제정치학회 차기회장
물론 남의 나라에 기념비를 세우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그래서 외교관들의 노고가 컸다. 그래도 크게 볼 때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지난 수년간 진행된 미얀마의 변화였다.

미얀마가 어떤 나라였던가. 1962년 쿠데타 이래 근 60년간 군부가 독재했다. 간헐적으로 일어난 민주화 요구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아웅산 수치를 도합 15년간 가택연금에 처했다. 2007년 민주화시위에 나선 승려들에게 총탄을 퍼부었다. 2008년 태풍으로 10만명이 넘는 사망 및 실종자가 생겼을 때 외국의 인도적 지원을 거부했다. 오죽하면 당시 프랑스 외교장관이 ‘강제’로라도 지원하자고 했을까.

그런 미얀마가 변했다. 2008년 헌법을 개정했다. 2010년 복수정당이 참가한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2011년 3월, 23년 만에 합헌정부가 출범했다. 수치가 가택연금에서 석방돼 재보선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다. 언론검열이 완화되고 노조활동이 허용됐다. 무역과 투자가 자유화되고 부패척결이 시작됐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각국이 제재를 해제하고 각국의 기업이 몰려들었다. 2세대 동안 바깥세상에 문을 닫아걸었던 이 나라가 마침내 빗장을 풀었다. 그 여파로 기념비 건립이 성사됐던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은 최근에 출간된 회고록에서 그 같은 미얀마의 변화를 자신 임기 중 최고의 순간으로 꼽았다. 그리고 그것을 제재와 관여를 조합한 소위 ‘스마트파워’ 외교의 성공사례로 소개했다.

1988년 이래 미국은 미얀마에서 일이 터질 때마다 경제제재를 가했다. 경제제재란 한번 가해지면 해제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제재는 가중 효과를 가진다. 그것이 20년간 거듭됐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지고 1960년대까지 가장 부국이었던 미얀마는 아세안 10개국 중 최빈국이 됐다. 그러나 미국이 원하는 정책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실로 외교수단으로서 경제제재는 효과가 없기로 유명하다. 군사행동 대신, 마지못해 취하는 경우가 많으니, 정권교체처럼 큰 목표를 달성하는 데 미흡할 수밖에 없다. 정권을 약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역효과를 낳기 십상이다. 그것이 정권강화의 빌미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독제재라면 다른 나라로의 출구가 있다.

미얀마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는 이 모든 약점을 구비하고 있었다. 군부정권은 경제제재의 책임을 야당에 전가함으로써 그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켰다. 외세의 위협을 강조해 군부통치를 정당화했다. 제재로 인해 왜곡된 경제 속에서 군부의 독점적 지위를 더욱 강화시켰다. 그리고 중국, 동남아, 인도 등과의 교역으로 연명했다.

그런 군부가 정치적 변환을 택한 것은 외부의 압력보다 내부의 압박 때문이었다. 민주화에 대한 스스로의 약속을 더 이상 미룰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군부의 입지를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시점에 오바마 행정부의 관여정책이 있었다. 제재의 압박만으로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지만, 변화의 움직임이 있을 때 제시한 제재 해제는 유혹적이었다. 개혁의 폭과 속도가 빨라졌다. 결국 제재와 관여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가위의 양날처럼 함께 작동하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관여를 어떻게 조합할지 생각해 볼 일이다.

김태현 중앙대 교수·한국국제정치학회 차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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