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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국어사전을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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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7-03 20:48:55 수정 : 2014-07-03 22:3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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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시대 한국어 어휘량 줄어
국어사전 DB 구축 국가가 나서야
중학교에 가기 위해 귀밑 단발로 머리를 싹둑 잘랐을 때였다. 아버지는 내게 입학 선물로 콘사이스 영어사전을 선물하셨다. 비닐 껍질로 만들어진 꽤 두꺼운 사전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 이제 영어를 배울 게야”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당시에는 그것이 유행이었다. 입학과 졸업 선물은 대개 영어사전 아니면 국어사전이다. 우리집 책장에도 여러 개의 국어사전이 꽂혀 있었다. 사전의 세로 흰 여백에는 단어를 찾기 쉽게 볼펜이나 사인펜으로 기역, 니은, 디귿 등을 차례로 써놓고 가로 흰 여백에는 훔쳐가지 못하게 자신의 이름과 학년과 반 번호를 써놓곤 했다. 담임은 영어단어를 다 외우기 위해 사전 한 장씩을 매일 찢어 먹어야 한다고 했다. 국어사전을 찢어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국어사전을 손에서 놓아 본 적이 없다.

국어사전의 탄생은 거의 백 년이 돼 간다.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조선말큰사전’이 최초의 우리말 사전이다. 1929년에서 1942년에 이른 13년간의 노고의 결과물이었다. 일제는 ‘조선말큰사전’을 만든 조선어학회 회원 29명을 체포했다. 일본 재판부는 사전 편찬을 조선민족 정신을 유지하려는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규정했다.

국어사전이 몰락하고 있다. 사전을 출간하던 민간출판사는 더는 열악한 출판상황을 견딜 수 없다고 말한다. 최근 ‘국어사전의 몰락’ 보도에 대해 인터넷 댓글의 일부에서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맞는 말이다. 중세 때 화약이 발명되자 칼싸움을 잘하던 기사들은 더 이상 소용이 없어졌다. 아파트마다 도시가스관이 들어오자 보일러공도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졌다. 문명의 발달은 끝없이 새로운 것을 향해간다. ‘나쁜 새것’이 ‘좋은 헌것’보다 더 호평을 받는 시대다.

나는 여기서 ‘애국심’ 운운하려는 것이 아니다. ‘민족 전통과 혼’을 운운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포털은 수도 없이 많은 정보를 수집해서 웹에 올려놓는다. 하지만 포털 사전의 단어 설명이 지나치게 간단하며 단순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사전을 만든다는 것이 단순한 일은 아닌 것이다. 유사어, 반대어, 무엇보다 최근에 쓰이는 ‘용례’를 계속 조사하면서 끝없이 업그레이드하는 일은 매우 전문적이며 학구적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전문가 집단이 오랜 시간 집중하면서 고증, 실증, 활용도를 조사해야 한다. 과연 포털이 최근의 용례를 위해 한국문학작품 혹은 다방면 서적을 챙기며 살피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영상과 스마트폰 시대에 한국어 어휘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어제 소개팅은 어땠니?” “완전 꽝이야!” “어머, 나는 킹카였는데.” 소개팅한 남자를 묘사하고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꽝’ ‘킹카’ 같은 말 한마디로 축약하고 은어로 변질시킨다. 온라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축약을 부추긴다. 표현은 세지고 어휘량은 줄었다. 상상의 영역은 점점 사라져 간다. ‘낚기’를 위해 더 ‘섹시’하고 더 ‘충격적인 표현’을 향해서만 나아간다.

그 나라 국민의 문화의 힘이란 ‘어휘의 양’과 ‘고급한 수준’에 달려 있다. 어휘량을 늘리고 고급하고 깊이 있는 어휘를 개발해야 한다. 아름답게 정서를 순화하는 말을 일구어내야 한다. 그것이 문화의 힘을 키우는 첩경이다.

한류 열풍으로 세계인들이 한국 드라마에 열광한다. 한국을 찾아와 한국 상품을 산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고 한국 문화에 대해 궁금해한다. 한류가 뜨겁다고 해서 한국민이 문화민족인가. 한국민은 여전히 동아시아에서 인구 대비 최하의 독서량과 최하의 출판량을 기록하고 있다. 언어를 버리면 문화도 민족도 없다.

좋은 말을 더 만들기 위해서 많은 한국작가들이 우선 노력해야 한다. 국어사전 편찬과정에도 더 많은 어휘를 발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더 많은 용례를 찾기 위해 힘을 기울여야 한다. 민간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국어사전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해 국가가 직접 지원에 나서야 한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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