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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백두산·한라산·후지산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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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7-07 22:04:38 수정 : 2014-07-08 1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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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잘살려면 줄기를 잘 타야 한다”는 말이 있다. 백두산 줄기, 한라산 줄기, 후지산 줄기를 잡아야 권력을 쥐거나 배를 곯지 않는다는 뜻이다. 백두산 줄기는 북한 권력의 상징으로 통한다. 김일성과 항일운동을 함께한 원로들과 그 후손들이다. 만경대혁명학원을 거쳐 금성정치대학, 김일성종합대학 등 북한 내 최고 대학에 보내져 김일성 일가의 충견으로 육성된다. 당·군의 고위직은 백두산 줄기의 예약된 출세 코스다. 신분 세습사회인 북한에서 금 숟가락을 물고 태어난 특권계급이 이들이다.

고난의 행군(1995∼1998) 이후 탈북자가 늘면서 한라산 줄기가 급부상했다. 한라산 줄기는 남한에 정착한 가족이 보내주는 돈으로 풍족한 생활을 한다. 적대계층으로 분류돼 온갖 천대를 받던 월남·탈북 가족들이 신흥 경제세력으로 떠올랐으니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탈북 가족이 보내준 돈으로 장사를 해 벼락부자가 된 이가 한둘이 아니다. 한라산 줄기와는 믿고 외상거래를 할 만큼 탈북자 가족에 대한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한다.

한 탈북자는 “지방 보위원들이 탈북자 가족 5가구만 관리하면 평생 먹고살 돈을 번다는 말까지 나돈다”고 전했다. 돈의 힘은 결혼관까지 바꿀 만큼 위력적이다. 북한 여성 사이에서 한라산 줄기는 신랑감 1순위로 꼽힌다. 한라산 줄기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노동당 간부 자녀까지 있을 정도라고 한다. 계기가 있지 않을까. 배급이 끊기면서 수백만명이 굶어죽었다. 이를 직접 목격했던 1990년대 출생 세대들이 생존의 길은 출신성분이 아닌 돈이라는 것을 체험으로 깨달은 결과다. 신분사회의 균열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시작된다더니 딱 그짝이다.

일본이 대북 송금과 양국 간 인적 왕래 제한을 일부 풀면서 재일북송 교포들인 후지산 줄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8년 만에 조총련 등의 돈줄이 풀려 대북 송금액이 늘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일본 친척들의 송금을 받아 한때 부유층으로 살아가던 후지산 줄기들은 일본 정부의 대북제재 장기화로 최악의 생활고를 겪어온 터이다.

백두산 줄기, 한라산 줄기, 후지산 줄기는 북한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반영한다. 배경이나 외부 지원이 없으면 먹고살기 힘들다는 뜻이 아닌가. 열심히 일해도 배고픔을 벗어날 방도가 없다. 능력과 노력에 상응하는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절망적인 북한의 현주소다. 이런 나라가 존재할 가치가 있을까.

김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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