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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따는 여인·만물상 주인… 친절한 ‘아프리카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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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7-10 21:44:13 수정 : 2014-12-22 17: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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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올라 카리베] 〈23〉 산마을 사람들과의 만남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의 밤하늘은 별빛으로 빛나 산세가 보인다. 별이 왜 ‘반짝반짝’ 빛난다고 표현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다. 별은 반짝거리면서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지기를 반복했다. 별자리도 뚜렷하게 보이고, 가끔은 별똥별도 볼 수 있다. 매일 맞이하는 아침과 밤이지만 매번 감동을 받게 된다. 맞은편 봉우리 위에 희미하게 빛나는 집 한 채가 보인다. 거기서 이곳을 보면 또한 이렇게 작은 불빛으로 보일 것이다.

숙소 주인 남자와 친분이 있는 외국인은 여행자 같아 보이기도 하고, 일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둘 다 맞다고 했다. 십 년 전 이곳에 왔고, 주인 남자와 같이 이 집을 지었단다. 처음에는 한 채밖에 없던 집을 같이 덧붙여 건축했다며 사진까지 보여줬다. 그 이후로 매년 이렇게 와서 지내고 있으며, 여행도 하고 주인 일도 도와주며 지낸다고 했다. 이 블루마운틴이 좋아 매년 오는 여행자다. 그는 나를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한국인이라고 굳이 말해줬다. 자메이카를 찾는 동양인 여행자들은 대부분이 일본인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국적에 대한 질문이 거의 없었다. 그도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놀랐다. 

블루마운틴에서 하루 종일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 산간마을 사람들.
매 끼니를 숙소에서 해결하기란 힘든 일이다. 오래 숙박하기 때문에 메뉴판 가격 그대로 받지는 않지만, 그래도 비싼 편이다. 그리고 살짝 지겨워지기도 했다. 그런 참에 이곳으로 올라올 때 봤던 마을이 생각났다. 그곳은 여기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거친 산간마을이었다. 그곳을 가 보기로 결심하고 카메라 하나 메고 걷기 시작한다. 내리막길인 데다 그늘이 지고 상쾌한 공기까지 더하니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길가에는 커다란 망고나무가 흔하다. 망고는 언제든 나무에서 따 먹을 수 있다. 마침 한 여인이 망고를 따고 있었다. 생각보다 큰 망고나무에서 망고를 따기란 쉽진 않다. 물론 내가 따 먹는 나무는 작은 망고나무다. 그녀가 따고 있는 나무는 끝이 보이지 않는 큰 나무다. 긴 막대로 도구를 만들어서 망고를 쉽게 따고 있었다. 망고는 흔해서 팔지는 않고 그냥 자기들이 먹는다. 산 아래에서는 당연히 거래가 된다. 그녀를 도와 망고를 따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긴 막대를 작은 망고에 조준하는 데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그녀는 쉽게 잘 하는 요령을 터득하고 있었다. 많이 따지도 않고 바구니 하나만큼만 딴다. 망고는 언제든 나무에서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망고 하나를 겨우 따서 발걸음을 옮긴다. 계속 걷다 보면 언젠가는 차가 지나간다. 차를 얻어타고 구불구불 산길을 내려가서 내가 가고 싶었던 마을에 도착했다. 그 마을에는 작은 가게도 있고, 먹을 것도 팔고, 사람들도 있었다. 마을에는 교회도 있고 학교도 있단다. 마을을 구경하기 위해 여기저기 다녀본다. 교회는 한참을 걸어 올라가 꼭대기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에서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와 산봉우리가 보였다. 이 마을은 ‘레드라이트(Red light)’라 불리는 작은 마을이지만, 갈림길이 있어서 어디를 가든 이곳을 거쳐 간단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마을 사람들과 보냈다. 조상들은 아프리카에서 왔지만, 그 후손들이 이곳에서 오랫동안 삶을 유지했으니 카리브 사람들이다.

자메이카는 아프리카에서 뚝 떼어다가 놓은 것만 같다. 카리브해 섬나라에 이렇게 높은 산이 있는 게 신기하다. 작은 나라 자메이카에는 이상한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친절하지만, 친근하진 않다. 빈부 격차는 너무 심했고, 물가도 비싼 것과 싼 것이 천지 차이였다. 아프리카어가 섞인 토속어를 쓰지만, 영어는 누구나 유창하게 구사한다. 이 모든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너무 아름다운 자연을 가졌기에 다른 것들이 신경 쓰이지 않는다.

이 마을에서 식료품을 사기 위해 찾은 가게는 아프리카의 일반적인 가게와 비슷하다. 작은 가게에 사람 한명이 겨우 들어가 있지만, 찾는 것은 다 내놓는다. 괜찮아 보이는 빵이 있어서 아침에 먹을 요량으로 몇 개 고른다. 과자와 음료수 등을 사고 술이 있냐고 물어보니, 자메이카 럼이 있단다. 그것이 무려 63도짜리 술이다. 큰 병에 담긴 럼을 작은 병에 덜어서 파는데, 냄새를 맡아보는 순간 가게 주인은 크게 웃었다. 냄새가 너무 고약하고 강하다고 느낀 내 표정이 웃겼나보다. 사람이 먹기는 힘든 술이다. 그래도 자메이카 럼이라기에 작은 병 하나만 샀다. 그리고 조각 치킨을 파는데 부위도 고를 수 있다. 치킨은 전 세계 어디나 쉽게 먹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음식이다. 먹을 것을 잔뜩 사서 기분 좋게 숙소로 향한다. 

무섭게 생겼지만 친절한 할아버지.
트럭 운전사는 이 가게에서 음료수 한 잔을 마시거나 잠시 쉬고 다시 출발한다. 그래서 이 마을에서는 차를 얻어 타기가 훨씬 수월하다. 숙소 이름을 말하니, 트럭 운전사는 옆 좌석을 정리해서 자리를 내준다. 숙소 주인이 이 산에서 유명한가보다. 주인이 워낙 착해 사람들이 다 호의적인 듯하다. 트럭 운전사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며 마을 입구 쪽으로 갔다. 그곳에는 작은 술가게가 있었다. 왠만한 술을 다 파는 전문점이었다. 이곳에서 좋은 술을 살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고약한 술을 샀다니 아쉽기만 하다. 이 마을에 매일 내려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진 못하고 가끔은 내려오게 됐다. 

마을의 작은 가게.
숙소에 있으면 새로운 사람들이 오곤 한다. 여행자들을 만나 대화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부부끼리 온 사람들 아니면, 단체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여행자들만 만나다가 아랫마을에 가서 주민들을 만나면 훨씬 더 새롭고 재미있다. 이제는 차를 타고 가든 걸어가든 가고 싶은 곳은 다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처음에 이 산에 들어왔을 때는 차편이 없는 게 걱정이었는데 지금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강주미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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