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靜, 고즈넉한 정자… 고요한 쉼

입력 : 2014-07-10 21:48:31 수정 : 2014-07-10 21:4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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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고 있다. 바쁜 일상이 반복되는 도시에서 장마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지 모르지만, 오랜만에 여유를 갖고 떠난 여행에서는 장맛비가 운치를 더해주기도 한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어울리는 정물로 빼놓을 수 없는 게 고택과 정자다. 정자의 마루에 앉아 비에 젖어 더욱 깊고 짙어진 숲을 감상하고, 고택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을 때의 감흥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경북 예천군에는 기와집·초가집·돌담길이 멋지게 어우러진 전통 마을이 있고, 자연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빼어난 풍모를 자랑하는 정자도 여럿이다. 예천에는 조선시대 마지막 주막으로 알려진 삼강주막도 있다. 장마철이면 생각나는 음식이 파전과 막걸리다. 삼강주막에서 낙동강 물길을 바라보며 목을 축이는 막걸리는 맛이 한층 더 각별하지 않겠는가.

# 정감록의 십승지인 금당실 마을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의 금당실 마을은 지형이 ‘물에 떠 있는 연꽃’을 닮은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명당이라고 한다. 이곳은 조선시대 예언서인 ‘정감록’이 이상향으로 꼽은 ‘십승지(十勝地)’ 중 하나이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도읍지 중 하나로 꼽았다고 전해진다.

금당실 마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돌담길이다. 볏짚을 이겨 넣은 황토 반죽으로 크고 작은 자연석들을 켜켜이 쌓고 기와를 얹은 돌담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마을 깊숙이 이어진다. 이곳의 돌담길을 모두 이으면 7㎞가 넘는다. 이 돌담을 따라 100여채의 옛 집들이 늘어서 있는데, 번듯한 대갓집만 있는 게 아니다. 반송재 고택, 사괴당 고택 등 제법 규모가 되는 10여채의 기와집도 있지만, 민초들이 살았던 정겨운 초가집도 여러 채 남아 있다. 그리고 이곳은 박제화된 모형이 아니라 지금도 주민들이 삶을 영위하는 살아 숨쉬는 공간이다.

초가집 담장에는 호박이 영글어 가고, 텃밭에는 고추가 자라는 이곳에서는 어릴 적 시골 외가집 마을의 추억도 되살아난다. 마을 한편에는 1960, 70년대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발소와 정미소 등도 그대로 남아 있어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도 인기가 높다. 금당실 마을의 돌담길을 돌아보는 사이, 오전 내내 내리던 장맛비가 멈추고 뭉게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얼굴을 드러냈다. 이같이 비가 갠 직후의 유난히 맑은 하늘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장마철의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경북 예천의 정자 중에서도 가장 풍광이 빼어난 초간정은 물길이 휘돌아 가는 우람한 바위 위에 절묘하게 서 있다. 초간정 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정자 밖 풍경도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 자연과 하나가 되는 초간정과 병암정


금당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용문면 죽림리에는 초간정이라는 매혹적인 정자가 있다. 초간정은 소백산 자락인 용문산에서 내려온 물이 운암지와 금당지에 담겼다가 다시 흘러내려 우람한 바위를 만나는 곳에 들어 서 있다. 명승 51호로 지정된 초간정은 조선 선조 때 학자인 권문해가 1582년 지었다. 초간정이라는 이름은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위응물이 지은 ‘간변유초(澗邊幽草)’란 시구에서 따온 것으로 전해진다. 벼슬에서 뜻을 얻지 못하고 그윽한 곳에서 홀로 지조를 지킨다는 내용의 시다.

물길이 휘돌아가는 바위 위에 절묘하게 자리 잡고 있는 초간정에서는 세 가지 정경을 꼭 눈에 담아야 한다. 정자 바로 앞에서 바라보면 맑은 물과 기묘한 형상의 바위, 그리고 정자와 어우러져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낸다. 여기서 스무 보쯤 뒤로 물러나서 보면 원림의 아름드리 소나무들과 초간정이 빚어내는 광경도 감탄을 자아낸다. 다시 물을 건너 초간정에 오른 후 마루에 앉으면 정자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도 일품이다.

인근의 병암정도 초간정 못지않다. ‘병암(屛巖)’은 ‘병풍 같은 바위’를 일컫는데, 이름 그대로 정자가 병풍처럼 펼쳐진 거대한 바위 위에 올라 앉아 있다. 정자는 바위 아래 연못을 정원으로 삼고 있는데, 연못 주변에는 아름드리 고목들이 늘어서 있고, 연못에는 수련이 만개해 있다. 병암정 역시 정자가 자연을 거스르는 게 아니라,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호명면 백송리 내성천변에는 ‘선몽대’가 서 있다. 퇴계의 종손인 우암 이열도가 1563년에 세운 정자인데, 최근에 새로 세운 듯한 건물은 옛맛을 느끼기 어렵다. 그러나 선몽대 입구의 장대한 소나무숲은 그윽한 정취를 품고 있으며, 정자 툇마루에서 내려다보는 내성천 풍경은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아름답다.

예천=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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