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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세계인의 제전, 월드컵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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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7-11 22:01:26 수정 : 2014-07-11 22: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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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함성으로 하나됐던 국민
지나친 열기로 스포츠정신 해쳐서야
필자가 프랑스에서의 유학 시절을 마감하고 귀국한 날 서울의 거리는 낯설었다. 17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탓이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고향이지 않은가. 2002년 6월 14일, 공항에서 집까지 오는 도로는 영화 속 풍경처럼 이상했다. 자동차로 가득했어야 할 도로는 바캉스 시즌 파리의 도심처럼 비어 버린 듯했다. 짐을 풀고 있는 동안 창밖으로 들려오는 함성과 요란한 굉음에 마치 소설 속 신비의 세계에라도 들어온 듯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날이 16강 진입 여부를 결정짓는 포르투갈과의 중요한 경기였으며, 국민 대부분이 축구로 하나가 되는 소중한 체험을 하고 있었던 순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며칠 지난 다음이었다. 이후, 한국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거리마다 넘쳐나는 ‘대∼한민국’의 함성은 낯설고 어색하면서도 조금씩 흐뭇한 감성으로 다가왔으며, 2002년 월드컵은 내게 새로운 경험으로 남아있다.

오는 13일은 월드컵이 탄생한 지 84년이 되는 날이다. 브라질 월드컵 3, 4위전 경기가 열리는 날이기도 하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크고 작은 축구 소식에 많은 이들이 잠을 설치고 대화의 소재로 삼는다. 그만큼 월드컵의 열기는 자못 대단하다. 월드컵 시청 세계 인구가 누적 기준으로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262억명을 넘어섰고,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때 누적 시청자 숫자는 350억명을 넘었으며, 이번 브라질 월드컵 시청자는 무려 450억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결승전의 경우에만 해도 2006년에는 7억명, 2010년에는 9억명이었으며, 이번에는 10억명을 상회할 것이라 하니 월드컵의 열기는 참으로 대단하며, 세계인의 제전이라는 표현이 새삼스럽지 않다. 사실 월드컵은 단일종목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 행사이며, 제전이다.

우성주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문화인류학
제1회 월드컵은 1920년 올림픽대회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대회 축구경기에는 남미, 아시아 및 아프리카를 포함한 22개국이 참가했으며, 국제축구연맹(FIFA)으로서는 전 지구적 모양새가 갖춰진 축구경기를 단일 대회로 만들 동기와 명분을 찾을 수 있었다. ‘FIFA 회원국 축구협회가 파견하는 모든 국가대표팀이 참가할 수 있는 제1회 월드컵축구대회를 개최한다’는 줄리메 회장의 안건 통과 연설은 유럽 각국이 전후복구사업의 지지부진한 진척으로 대부분 참석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존폐의 위기에 몰리기도 했으나, 독립 100주년을 대외적으로 기념하려던 우루과이 정부와 축구협회의 공감으로 제1회 월드컵은 1930년 우루과이에서 무사히 개최된다. 월드컵은 초기에는 저조한 참여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세계대전 기간 동안 개최되지 않은 상처를 받기도 했으나, 이제는 올림픽과 함께 지구촌 양대 제전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거대 상업자본의 막강한 영향력이 월드컵의 과정마다 연결돼 있음은 월드컵 위상과 규모 및 중요성에 대한 역설적 의미 확인이다.

월드컵 정신은 원칙적으로 올림픽 정신을 계승한다. 또한 올림픽은 근대 올림픽의 제안자이며, 창시자인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구축된 것으로서 세계의 평화와 안녕을 위한 고대 올림픽 정신의 계승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 다툼과 분열 중에도 건전한 스포츠 교류와 제전을 통해 평화와 안녕의 메시지를 교환하고 공감함으로써 이념과 체제, 조직과 형태를 넘어서는 인류 보편 정신의 추구가 월드컵 정신인 것이다. 하지만, 대단한 열기만큼이나 부작용도 지적되곤 한다.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한 상업주의가 지구촌 축제를 얼룩지게 한다는 사실에 월드컵의 순수함이 사라진 것은 아닌지 염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제전으로서의 긍정적 에너지의 소중함을 놓쳐서는 곤란하다. 결과에 집착하기보다는 과정에 소중함을 둘 수 있는, 그래서 순수한 ‘참여’의 의미에서 기쁨과 환희를 경험하고 공유할 수 있는 제전의 힘과 지혜에 대한 지원은 지속돼야 한다. 스포츠는 건강하기에 스포츠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브라질 월드컵을 보면서,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정신을 계승하는 건전한 정신적 가치에 대한 공감이 흔들리지 않기를 염원한다.

우성주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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