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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으로 태어난 작가 9인의 ‘사연’

입력 : 2014-07-15 20:49:02 수정 : 2014-07-15 20:4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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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미술관 ‘누구나 사연은 있다’展
최근 화랑가서 작가명, 작품명, 작품 해설을 없앤 ‘불친절한’ 전시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텍스트를 없애 관람객들로 하여금 작품을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게 하기 위함이었다. 과연 의도대로 그렇게 됐을까. 현대미술은 관람객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어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기도 하지만, 너무 어려워 감상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난 순간 작품에 대한 해석과 감상은 관람객의 몫일 텐데도 여전히 관람객들은 그 진의(眞意)가 궁금하기만 하다.

경기도미술관(관장 최효준)의 ‘누구나 사연은 있다’전(17일∼ 9월 21일)은 현학적이고 어렵기만 한 미술계의 담론이나 이론, 개념 등은 잠시 접어둔다. 한 가지 주제로 정의할 수 없는 아홉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작가들의 사사로운 ‘사연(story)’에서부터 풀어간다. 관람객들은 작가들이 어떤 계기로 현재의 작업을 하게 되었는지,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모두가 궁금해할 만한 숨은 뒷이야기는 없는지 등을 작가들이 직접 들려주는 영상 메시지와 함께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듯 현대미술 작가들에게도 작품에 대한 사연이 있지 않을까. 그 사연 속에서 관람객들은 작가의 생각에 공감하며 소통하게 된다. 작가들은 모두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들이다.

지희킴의 ‘불가능한 열망’
누구나 산책을 하다 보면 주변에서 늘 보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이 특별해 보이는 순간이 있다. 송명진 작가는 그 순간을 기억해두었다가 작품으로 연결시키곤 한다. 둥글게 말린 원기둥, 뽀얀 살빛의 기다란 물체와 같은 단순한 형태의 사물들이 금방이라도 화면에서 사라져 버릴 듯하다. 어떤 의미를 담으려 하기보다 사물과 마주했을 때 느꼈던 촉각적 경험을 시각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이다.

양정욱 작가는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움직이는 조각’을 통해 풀어낸다. 예를 들어 작가가 물류센터에서 일하며 알게 된 동료들을 힌트로 3명의 동료의 머리가 겹쳐졌다 떨어지는 모습을 반복하는 조각을 보여준다. 작품제목은 ‘저녁이 돼서야 알게 된 3명의 동료들’이다. 노동현장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연필로 드로잉을 하듯 플라스틱 막대를 구부려 작업하는 윤민섭 작가는 자신의 자화상을 만들어 간다. 하지만 관람객들은 자신들을 떠올리게 된다. 작품 ‘사람들’은 작가가 올 초 한 달 동안 동남아 배낭여행을 하며 스쳐 지나간 사람들을 만든 작업이다. 관람객들은 자신들의 여행경험을 대입시켜 빙그레 웃음을 짓는다. 치유의 풍경이다.

윤민섭의 ‘사람들’
사랑에 서툴렀던 장은의 작가는 그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사랑’을 이야기한다. ‘진정한 사랑’ 연작은 전시가 끝나 이미 모든 작품이 철수된 후에도 전시실 벽에 그대로 남아있던 못을 발견하고 더 이상 작품을 걸기 위한 자재가 아닌,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고 싶던 작가의 상상으로 탄생되었다. 화살(못)은 사랑하는 대상, 그림자는 화살을 사랑하는 주체의 모습으로 표상된 작품이다. 작가가 ‘나는 정말 예술을 사랑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10여년간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작업했던 전미래 작가는 ‘홍어 삼합’이라는 음식 드로잉을 통해 이방인, 혹은 글로벌 유목민을 사유케 만든다. 특유의 ‘냄새’는 악취가 아니라 맛을 돋우는 향취다.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가정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촉구다.

정승원 작가는 종이 접기를 모토로 작업을 한다.전시실 내부 공간 모서리에 안접기선, 바깥 접기선, 실선 등을 드로잉하고, 종이를 접듯 캔버스를 접어 모서리나 바닥에 설치한다. ‘선(line)’은 ‘종이접기 선’이기도 하고, 추상적으로는 평면과 입체의 경계, 현실 공간과 상상 공간의 경계를 은유하기도 한다.

정혜정 작가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 곳곳을 여행하거나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장소의 특성, 기억, 역사, 환경 등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한다. ‘점의 기행’은 작가에게 가장 일상적 공간이었던 서울에 있는 집과 경기도 이천에 있는 작업실 간의 88㎞를 걸어간 8월 어느 여름날의 4일간의 기록이다. 길에서 만난 다양한 사물, 생물, 숫자, 소리, 장소, 상태 등을 발견하고 채집해 재분류 과정을 거쳐 소책자, 드로잉, 영상, 옷에 직접 새긴 자수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물리적 공간을 사유적 풍경으로 전환시키고 있는 것이다.

정혜정의 ‘점의 기행’
지희킴 작가는 유학시절 느꼈던 일종의 열등감을 작업과 연결시키고 있다. 언어에 대한 공포심 등이 작업으로 형상화됐다. 직접 쓴 소설을 기반으로 회화와 설치작업을 주로 하는 차혜림 작가는 머릿속으로 구상한 작품을 제일 먼저 드로잉 북에 글로 옮기고, 배우를 섭외하듯 작품 속에 등장할 이미지를 찾고, 필름을 편집하듯 작품들을 배치한다.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을 시각화하고 있는 셈이다.

어찌보면 장난기 같기도 하고 너무 싱거워 이것도 미술인가 반문할 수도 있다. 그냥저냥 작가들의 이야기 바닷속으로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현대미술의 중심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여름방학 자녀들의 손을 잡고 가볼 만한 전시다. 설명하려 들지 말고 그저 아이들의 상상에 나래만 달아주면 된다. 아이들을 ‘도슨트’ 삼아 귀만 열어두면 ‘100점 부모’다. (031)481-7007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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