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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이 희망이던 시대 위안 준 전래동요

입력 : 2014-07-17 20:55:15 수정 : 2014-07-17 20:5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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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선의 한 주의 시] 부헝이 부부

보항보항 양식없다 보항
부헝부헝 내일모레 장이다 걱정 말고 살아라
보항보항 가고지야 가고지야 우리 친정 가고지야
부헝부헝 가라미더 가라미더 너거 친정 가라미더
보항보항 무슨 옷을 입고 갈고?
부헝부헝 전주비단 감고 가지
보항보항 무슨 신을 신고 갈고?
부헝부헝 가죽신꽃신 신고 가지
보항보항 무슨 차반 해가 갈고?
부헝부헝 찰떡 시루떡 해가 가지
보항보항 방은 누가 보고?
부헝부헝 열쇠 자물쇠 지가 보지
보항보항 정지는 누가 보고?
부헝부헝 조리주개(주걱) 지가 보지
보항보항 마당은 누가 보고?
부헝부헝 암캐수캐 지가 보지
보항보항 상각(上客)은 누가 가고?
부헝부헝 검으나 희나 자네 서방 내가 가지

이것은 필자가 순전히 기억 속에서 되살리는 어릴 적에 부르던 전래동요인지라 누락된 부분도 있을 것이다. 대여섯 살 때 나는 이야기꾼이었다. 전쟁 끝난 지 몇 년 안 된 시절, 집도 건물도 옷가지도 다 불타버린 잿더미 속에서 사람 잃지 않은 것만 고맙고도 고마워서 불탄 자리에 재를 쓸어내고 오두막이거나 초가삼간이거나 몸담을 집을 지을 수 있고 밥이건 죽이건 굶지 않는 것에 감사하며 새 삶을 시작했던 시절이었다. 이불도 옷도 귀하여 빨래를 하는 날은 그 옷이 마를 때까지 온 가족이 방안에서 기다려야 했던 시절, 라디오도 TV도 없이 오로지 사람밖에는 위안 삼을 것이 없던 그 시절, 꼬마 이야기꾼은 온 동네의 위안이고 기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녁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 안방에 가득 둘러앉아 나를 가운데 두고 이야기를 하고 또 하게 만들었다. 돌아오는 장날에 과자 사다주겠다고 꼬이면서….

갓 시집온 새색시는 얼마나 친정이 가고 싶었을까?

추석이나 설명절이 되면, 혹은 친정 부모나 형제의 생일이 다가오면 벽에 붙여놓은 한 장짜리 달력을 보고 또 보며 부모님 얼굴을 눈물로 그렸을 것이다. 그래도 차마 친정 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서 떼놓지 못할 때, 부헝이 부부에게 이 노래를 부르게 하고 대리만족으로 자신을 위로했을 것이다. 

그림=화가 박종성
암부엉이의 소리는 가늘고 예쁘고 응석과 교태를 섞은 목소리로, 수컷 부엉이의 소리는 모든 것을 허락하는 여유와 아량을 가지고 나만 믿고 따라오라는 다소 위엄 섞인 굵은 바리톤 목소리를 흉내 내며 실감나게 연기하도록 만들었던 그 노래.

목숨 부지하는 것만도 희망이던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에 동네 사람 모두의 위안과 꿈이 되었던 노래 이야기를, 그 시절에 대해 상상도 못하고 이해는 더더욱 못하는 젊은 세대에게 들려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이혜선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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