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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소재 운명의 탈을 쓴 빈부문제 고발

입력 : 2014-07-17 20:48:02 수정 : 2014-07-17 20:4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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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정의 공연 돋보기]
구구절절한 사연으로 아기 때 헤어진 쌍둥이가 우연히 해후하게 되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만화나 소설뿐 아니라 명절 특선영화에서도 심심치 않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페어런츠 트랩’이나 ‘아이가 똑같아요’ 등 아이들이 여름 캠프에서 우연히 재회하여 친해지는 바람에 부모가 재결합하는 식의 스토리가 전형적이다. 대체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처럼 마법 같은 힘에 이끌려 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뮤지컬에서 쌍둥이 소재를 전면으로 다룬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 중에 ‘블러드 브라더스’는 익숙하고 통속적인 이야기 구조로 충격적인 결말과 남다른 주제의식을 이끌어 내서 흥미롭다. 이야기는 극심한 가난 속에 홀로 아이들을 키우던 존스턴 부인이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부잣집 라이언스 부인에게 아이를 입양 보내면서 시작된다. 두 여인은 이러한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아이들이 만나지 않게 하려고 애쓴다. 그렇지만, 여느 쌍둥이 이야기에서처럼 아이들은 자라나면서 우연한 기회에 만나 급속하게 친해지고, 급기야는 의형제를 맺기에 이른다.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는 쌍둥이 이야기의 통속적인 구조를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이끌어 낸 수작이다.
한편, 이 극의 독특한 분위기와 서스펜스는 불길함을 느끼게 하는 암시와 복선에서 온다. 특히 운명같이 작동하는 미신이 ‘신탁’처럼 끊임없이 언급된다. 신발을 테이블에 올리면 안 된다는 것, 아기 때 헤어진 쌍둥이가 해후하여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면 처참한 일이 발생한다는 것 등. 그리스 비극에서 윤리를 거슬렀을 때 복수의 여신들이 움직이듯, 두 여인은 미신의 금기를 어기는 행동으로 비극적인 결말을 예고하는 것이다. 불길한 단서들이 알려줬듯 결국 아이들은 눈뜨고 보기 힘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겉으로는 한 여인을 사이에 둔 삼각관계 때문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빈부의 차이로 인해 갖게 된 적대감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극의 말미에 사회자가 관객에게 질문을 한다. 비극을 이끌어 낸 이유가 무엇인 것 같으냐고. 이 작품은 운명(미신), 성격, 환경이 교묘하게 작용하며 파국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사회자는 아예 직설적으로 질문한다. “미신 때문일까요, 아니면 계급 차이 때문일까요?”

말하자면, 이 작품은 통속적인 멜로드라마의 탈을 쓴 서사극이라고 볼 수 있다. 서사극은 자주 몰입을 깨는 행위들을 보여준다. 사회자가 대놓고 일인다역을 하며 관객들에게 말을 걸거나 어른이 아이 역할을 하는 등. 감정이입하기보다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공연을 보게 만들기 위한 의도다. 즉 이 뮤지컬은 통속성이 강조된 형식 속에 강한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수작이다. 이 작품이 올리비에 작품상 등을 수상하고 롱런한 이유이기도 하다.

존스턴 부인처럼 예기치 않은 큰일을 당했을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갖게 되는가?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여길 수도 있고 성격 때문이라며 자성할 수도 있다. 혹은 환경적인 요인을 가장 크게 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연극 또한 사건에 대한 원인을 다양한 관점에서 제시해 왔다. 예를 들어 ‘오이디푸스 왕’에서처럼 모든 사건의 결말이 신탁대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햄릿’에서처럼 성격적인 요인이 부각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의 경우에는 악의적인 환경 속에 함몰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들도 연출하기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눈앞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대처 방법도 달라질 것이다.

현수정 공연평론가·중앙대 연극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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