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수명 못누리고‘임무’ 끝나면 식탁에서 생 마감
양혜원 글/안은진 그림/스콜라/1만원 |
닭은 이빨이 없어서 먹이를 통째로 삼킨다. 소화가 잘 되라고 모래알이나 유리 조각도 함께 쪼아 먹는다. 머리는 작지만 주인과 낯선 이의 발소리를 구별할 정도로 영리하다. 몸집이 작고 약해보여도 수명이 30년은 너끈히 된다. 그러나 양계장의 암탉은 천수를 누리지 못한다. 날개조차 펼 수 없는 좁은 철망에 하루 종일 갇혀 산다. 1년 반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알을 낳는다. 더 이상 알을 낳을 수 없어지면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며 생을 마감한다.
닭처럼 수많은 생명이 지구에서 제 수명을 누리지 못하고 인간의 손에 희생된다. 이 책은 동물들의 생태를 담은 정보서이지만, 단순히 지식 전달에 그치지 않고 동물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정겨운 그림체와 다정한 문체로 동물의 삶을 들여다본다. 책은 연우와 증조할머니가 마을을 돌며 동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형식이다. 오래된 한옥에 사는 증조할머니는 97살이지만 여전히 정정하다.
이장님네 집에서 흑돼지를 본 할머니는 “돼지가 아주 영리하고 깔끔한 짐승”이라며 “잠잘 곳과 똥 눌 곳을 구분한다”고 알려준다. 돼지가 미련해 보여도 밥을 주는 주인을 알아보고 새끼들도 자기가 처음 문 젖꼭지만 빤다. 원래대로라면 돼지는 15년은 산다. 그러나 돼지 사육장의 아기 돼지는 1년도 채 못 산다. 아기 돼지는 태어난 지 몇 주 만에 엄마와 떨어져 철창에 갇힌다. 스트레스로 쇠창살을 씹거나 옆 돼지의 꼬리를 물어뜯기에 미리 이빨과 꼬리를 잘린다. 오륙 개월간 자란 돼지는 시장에 팔려나간다.
동물들은 보통 10년은 넘게 살 수 있지만, 인간의 필요로 희생되면서 제 수명을 누리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스콜라 제공 |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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