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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은 인간과 조화 이룬 ‘사람의 산’

입력 : 2014-07-18 21:16:52 수정 : 2014-07-19 00:3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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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눈으로 ‘한국인과 산’ 탐구
최원석 지음/한길사/2만원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최원석 지음/한길사/2만원

기자가 다닌 고향의 초등학교 교가는 “노자산 줄기따라 가라산 뻗어…”로 시작해, “드높은 우리 기상 밀고 받들어…”로 이어졌다. 산의 기상을 닮은 사람으로 커가자, 그런 내용이었다. 사당이 있었던 ‘당산’의 꼭대기에는 집채만한 구렁이가 산다는 이야기를 사실인 양 믿은 꼬맹이들이 있었다. 산기슭에는 계곡을 따라 논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적고 보니 강원도의 어느 산촌처럼 묘사됐지만 고향은 크고, 아름다운 바다에 면한 거제도의 한 어촌마을이다. 산을 앞세운 교가나 산신 이야기가 영 어색할 법한 곳이지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어째서일까. 국토의 70%가 산인 이 땅에서는 어디에 살든 눈에 산을 담게 되고, 그만큼 삶 속 깊숙이 산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오래 주고받은 관계의 문화사’란 부제가 말해주듯 책은 한국인과 산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늘에 이를 듯 높이 솟아 있는 산은 애초 신성한 숭배의 대상이었다. 저자는 이를 ‘천산’(天山)이라 개념 지었다. 우리 민족의 시조신화 속에서 반복되는 산의 위상이다.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발 디딘 곳이 태백산이고, 신라의 혁거세는 양산, 가야의 수로왕은 구지봉에 임했다. 고대인들은 하늘의 광명이 서린 산을 천산이라 불렀다 한다.

농경의 비중이 커지면서 땅에 대한 의존이 커지자 ‘지력(地力) 신앙’이 나타났다. 산에 대한 관념 또한 산이 하천과 만나는 것에 착안해 물의 신인 용에 비유되고, ‘용산‘(龍山)이라는 관념이 출현했다. 자체의 내재한 기운으로 천태만상의 조화를 부리며, 인간에게 직접 길흉을 줄 수 있는 용에 비유되었다는 것은 산 역시 그런 능력을 가진 존재로 인식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때부터 농경에 중요한 산과 물을 살펴 살 자리를 정하는 풍수사상이 발전하게 된다.

저자는 산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결국 ‘사람의 산’으로 귀결된다고 보았다. 산은 인간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여겨졌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고, 서양에서처럼 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사람의 산이란 인간화되어 조화를 꾀하는 대상이었다. “기운이 지나치면 적당히 누르고 약하면 돋우어 보완해서 함께 공존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 시골의 들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조산’(造山)이다. 

거북이 머리 모양을 한 경남 김해시의 구지봉은 가야를 세운 수로왕이 하늘에서 내려와 임한 곳으로 전한다. 하늘의 광명이 서린 구지봉에는 고대인들의 ‘천산’ 개념이 서려 있다.(사진 위) 같은 김해시의 임호산은 호랑이가 걸터앉은 형상으로 이해되었는데 흉한 기운을 누르기 위해 아가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사찰을 지은 것은 산의 기운을 조절해 공존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한길사 제공
시골에 가면 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거나 자그마한 둔덕 위에 나무 몇 그루로 꾸민 숲을 볼 수 있는데, 조산이라 불리는 것이다. 땅의 형세와 기운을 보완하는 것이 목적이다. 예컨대 비봉산이란 이름의 산에 깃들었다고 믿었던 봉황이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마주보는 들판에 알봉을 조성하는 식이다. 산에 나무를 심거나 개발로 잘려나간 산의 맥을 잇는 생태통로를 만들어 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자연에 부족한 점이 있으면 사람의 힘을 보태어 부족함을 보완했는데, 이러한 태도는 어머니인 자연에 대한 마땅한 도리이자 효도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람의 산은 인간에게 일상이었다. 죽어서 돌아가는 회귀의 공간을 ‘산소’(山所)라 이르게 되었고, ‘배산임수’는 전통마을의 전형적인 입지로 통한다. 적절한 물의 공급이 성패를 좌우하는 벼농사의 경우에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강변의 평야지대보다 산을 끼고 있는 계곡 주변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계곡물을 이용해 보나 소규모 저수지를 만들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농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산은 험하고 가파른 산자락에서/슬그머니 빠져 동네까지 내려와/부러운 듯 사람 사는 꼴을 구경하고 섰다”고 노래한 신경림의 시는 사람의 산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유교 지식인들의 산림 생활사 관련 저서인 ‘산림경제’나 ‘임원경제지’, 산을 기록하고 노래한 문학 등을 통해 산에 관한 다양한 관점을 다루고 한국 산의 대표로 지리산의 가치를 소개한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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