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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 다정히 우짖는 소리’라는 노랫말이 있다. 통기타 혼성그룹 ‘뚜아에무아’가 1970년대 초에 부른 번안가요 ‘썸머타임’의 한 토막이다. 멜로디는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방울소리 울리는 마차를 타고/ 콧노래 부르며 님 찾아 갔네/ 하늘엔 흰 구름 둥실 떠가고’ 다음에 ‘풀벌레…’가 이어지는 가사도 그렇지만.

노랫말엔 문제가 하나 있다. 적어도 진화생물학 관점으로 보면 자연계에서 ‘다정히 우짖는’ 경우는 없는 것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단언한다. “귀뚜라미나 개구리나 새 수컷들의 합창은 밤에 바치는 찬가도, 인생의 기쁨에 대한 찬미도 아니”라고. 그렇다면 뭐란 말인가. 답은 이렇다. “(다른 수컷들에 대한) 도전이나 (암컷들에 대한) 선전이 복잡하게 얽힌 소리일 뿐이다.”

자연계의 번식 경쟁은 힘겹고 고달프다. 특히 수컷은 ‘도전’과 ‘선전’에 성공해 결실을 거둔 뒤에도 자기 핏줄인지 아닌지 구별하기 어려우니 더 고달프다. 증거 자료는 방대하다. 유럽 푸른박새 실증연구가 대표적이다. 연구진은 새끼 3마리 중 1마리는 암컷의 짝이 아닌 수컷에게서 수태된다고 보고했다. 약 30%의 조류 수컷이 다른 수컷의 새끼를 키운다는 더 포괄적인 연구자료도 있다.

인간 수컷은 사정이 좀 낫다. 혈액형·DNA 기반의 연구를 통해 혈연관계가 없는 아이를 (그런 줄 모르고) 키우는 아버지가 9∼13%라고 보고한 사례가 있다. 아동후원 기관들이 친부 확정을 위해 조사한 결과들의 종합치는 15% 안팎이다. 어쨌거나 조류 수컷보다 상팔자다.

아버지와 아이 간의 법률상 부자·부녀 관계는 혈연관계가 없더라도 취소될 수 없다는 이색 판결이 나왔다.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가 그제 3건의 취소 요구 소송에서 그렇게 판결했다. 핏줄이야 어떻든 자기 자식이라는 일본 아버지 2명이 환호했다. 조류 수컷보다 상팔자는 아닌 모양이지만 ‘기른 정’에서 행복을 찾았으니 그 나름의 사필귀정이다. 비록 1명은 입장이 다른 모양이지만.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코피노’에게 혈연관계를 처음 인정한 지난달 국내 판결을 반사적으로 되새기게 된다. ‘낳은 정’도 안 챙긴 사례였다. 친자확인 소송이 범람하는 전반적 현실도 돌아보게 된다. 일본 소송은 ‘낳은 정 vs. 기른 정’ 대결로 불렸다. 국내 법정의 살벌한 대결들은 대체 뭐라 불러야 옳은가.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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