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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재의천기누설] 여름밤 은하여행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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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7-21 21:14:47 수정 : 2014-07-21 21: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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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웅대한 여름 은하수
아이들은 별을 보고 자라야
최근 저명한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의 TV 다큐멘터리 ‘코스모스’ 시리즈 ‘시즌 2’가 방영돼 화제다. ‘시즌 2’의 호스트인 흑인 천문학자 닐 타이슨(Neil Tyson)은 내 미국 유학시절 대학원생 동료였다. 텍사스 대학교에서 2년 가까이 둘이 같은 방을 썼다.

닐은 조교로 수업을 들어가서도 강의를 참 잘했다. 닐이 강의 도중 ‘billions of stars(수십억 개의 별)’ 같은 표현만 써도 학생들이 ‘와-’ 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은 ‘천억 개의 별’ 정도로는 별로 놀라지 않아 대조를 이룬다. ‘천문학적 숫자’라는 말도 주로 안 좋을 때만 동원돼 불만이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
맑은 시골의 밤하늘에서 긴 강처럼 보이는 은하수는 천억 개 이상의 별들이 모여서 만들어졌다. 천억이 얼마나 큰 숫자인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학교 교실 안에 콩을 가득 채워도 천억 개가 안 된다. 동양에서는 은처럼 반짝이는 물이 흐른다고 하여 ‘銀河水’라고 불렀고, 서양에서는 여신 헤라의 젖이 흐른다고 하여 ‘the Milky Way’라고 불렀다.

여름밤에는 은하수가 바로 머리 위에 드리워진다. 은하수가 1년 중 가장 웅대한 모습을 드러내는 계절이다. 고개를 들어 중천을 바라보면 밝은 세 별이 커다란 이등변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밝은 별들을 천문학에서는 1등성이라고 한다. 그 다음으로 밝은 별은 2등성, 3등성, … 등이 되는 것이다. 맑은 시골의 밤하늘에서 겨우 보이는 흐린 별은 6등성이 된다.

앞의 세 별은 서울 복판에서도 보인다. 맑은 시골의 밤하늘에서 보면 세 별 중 하나는 은하수 속에 잠겨 있고 다른 둘은 각각 은하수의 다른 쪽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다. 나중 두 별이 바로 그 유명한 견우성과 직녀성이다. 올여름 꼭 은하 여행을 떠나보기 바란다.

천문학자로서 부모들에게 꼭 권해보고 싶은 일이 하나 있다. 자기 아이에게 ‘밤하늘에 별이 몇 개나 있니?’ 하고 물어보라는 것이다. 일단 별이 많다고 대답하면 정말 다행이다. 왜냐하면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 대부분은 넉넉히 잡아 이삼십 개 정도라고 대답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뭐 그렇게 중요한가, 천문학자나 관심 있어 할 질문이 아닌가 하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밤하늘에 별들이 쏟아질 듯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자라는 아이하고 많아 봐야 이삼십 개 정도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하고는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차이는 평생 영향을 미치게 되며 ‘고액 과외’로도 결코 메워질 수 없다.

어른들은 달빛에 사람 그림자가 생긴다는 사실도 모르고 자라는 요즘 아이들에게 별을 되찾아줘야 한다. 달그림자를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이 과연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가슴으로 느끼고 커서 달빛 속의 데이트를 즐길 수 있을까.

내가 어렸을 때는 도시에서조차 밤에 손전등이 없이 다니면 도랑에 빠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별은 잘 보였는데 요즘 도시의 밤하늘은 1등성 몇 개만 보일 정도로 밝아졌다. 이것도 세상이 점점 더 삭막해지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한다면 과언일까.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곳이 바로 시민천문대이다. 아이들에게 별과 우주에 대한 꿈을 심어 주는 곳, 아이들이 시험을 잡쳐서 울적할 때 별을 보고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곳, 부모들에게 옛 추억을 되살려 줄 수 있는 곳, 외지에서 손님이 왔을 때 자랑할 수 있는 곳… 바로 이런 곳이다. 시민천문대에서 별을 보며 자란 아이들은 과학자, SF 작가, 우주만화가, 우주음악가, 우주미술가, 우주비행사가 될 것이며, 영화를 만들어도 한국판 ‘스타워즈’를 만들 것이다.

검색해 보면 서울 도심 한복판에도 사립 시민천문대가 있다. 하지만 인구가 2000만에 이르는 수도권에 번듯한 공립 시민천문대 하나 없는 실정이다. 광역시 중에서도 공립 시민천문대를 가진 곳은 대전뿐이다. 일본에는 200개가 넘는 공립 시민천문대가 있고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립 시민천문대까지 합치면 300개가 넘는다. 그러니까 일본에서 ‘은하철도 999’ 같은 만화영화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시민천문대는 대도시에 세워도 아무 상관없다. 어차피 연구용 천문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로 해, 달, 행성만 관측하게 되고 플라네타륨(planetarium) 같은 시설을 이용하면 은하수가 보이는 밤하늘을 재현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없다. 이 기계는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투영하는 기계로 ‘행성(planet)’에서 그 이름이 비롯됐다.

플라네타륨은 여름철에 겨울철 별자리를 보여 줄 수도 있고 적도 이남에서나 보이는 남십자성 같은 별도 보여줄 수 있는데 문제는 누가 설명하느냐에 있다. 닐 타이슨도 바로 미국 뉴욕 자연사박물관 플라네타륨 관장으로서 특유의 입담을 과시해 그 위치에 올라간 것이다.

미국 LA를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이유 없는 반항’이라는 영화가 촬영된 그리피스(Griffith) 천문대를 꼭 가보기 바란다. 제임스 딘(James Dean)의 흉상이 있는 이 시민천문대가 LA 생활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럽게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 서울도 번듯한 공립 시민천문대 하나쯤 가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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