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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은 ‘먼저 온 통일’… 국내 2만7000명 삶 안착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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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7-22 20:07:59 수정 : 2014-07-23 01:5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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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 정옥임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독일 통일은 ‘도둑처럼’ 오지 않았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수십년 전부터 서독은 동독 주민들의 마음을 사기 위한 노력을 경주했다. 통일의 문이 열렸을 때 동독 주민들은 서독이 되길 원했다. 동독 주민은 자유선거로 의회와 정부를 구성한 뒤 의회에서 서독 기본법 아래 통일하기로 결단했다. 동독이 서독에 ‘합류(合流)’한 것이다. 독일은 통일 16년 만에 동독 출신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배출했다. 탈북민은 우리에게 ‘먼저 온 통일’이다. 통일을 앞당기고 북한 주민을 우리 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이들이 탈북민이다. 탈북민 지원이 이들의 남한 정착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다. 올해로 설립 5년째를 맞은 ‘남북하나재단’(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은 탈북민 지원 정책의 중심 축이다. 정옥임 이사장 취임을 계기로 기존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에서 ‘남북하나재단’으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정 이사장을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집무실에서 만나 탈북민 얘기를 나눴다.

―지난달 말 기준 탈북민 숫자는 약 2만7000명에 이르렀다.

“과거 귀순용사가 넘어왔던 시절과 비교하면 많은 수이지만 통일되기 전 동독에서 서독으로 이주한 동독인 규모와 비교하면 굉장히 적은 숫자다. 아직 ‘유의미한’ 수치로 보기 어렵다. 그 것도 북한의 국경 통제가 강화되면서 2009년을 기점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유의미한’ 수치라는 건 통일 과정을 촉발할 만한 숫자라는 것인가. 그런 의미의 ‘임계점’이라면 얼마만한 규모가 돼야 하나.

“재단의 법적 설립 근거에 보면 ‘통일 환경 조성’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이런 차원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추정하는 전략적 임계점 규모는 약 10만명이다. 지금은 함경북도 출신 탈북민이 70% 이상을 차지한다. 북한 심장부인 평양 출신 탈북민 수가 늘어나야 한다. 탈북민들이 남한에서 안착하고 그런 소식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 북한 주민들에게 동기가 부여돼야 한다. 그 파장이 소위 평양특별시에 거주하는 250만명에게까지 전달되는 그 순간이 임계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내 탈북민의 생활은 안착됐나고 보나.

“아니다. 아직 시행착오가 많다. 탈북민 정착 지원 정책의 성패를 단언하기는 어려운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현실에 정직해져야 할 때다. 탈북민 다수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고 기본적 의식주를 보장받지만 탈북민의 월평균 소득은 141만원에 불과하다. 우리 국민 월평균 소득은 221만원이다. 탈북민의 근속연수는 19개월인 데 비해 일반 국민은 67개월이다. 본인이 더 열심히 오랫동안 직장에 다녀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북한에서의 삶보다는 낫지 않겠나.

“최근에 만난 탈북여성들이 중국에서 (불법체류하다) 붙잡히지만 않으면 한국보다 거기서 사는 게 더 편하다고 하더라. 여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거다. 탈북민은 그게 우리 사회의 탈북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탓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번에 한번 제대로 살아보갔어’라는 마음으로 한국에 온 ‘장마당 아줌마’들도 많다. 눈빛이 반짝반짝거린다. 우리 민족은 6·25전쟁 통에도 열심히 노력해서 잘사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 북한 사람들에게도 이 유전자가 있고, 이 유전자를 되찾아 주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자본주의 방식으로 차등지원해야 한다는 말인가.

“잘하는 사람에게 더 많이 주는 차등 지원을 해야 한다. 그리고 탈북민이 북한 체제에 반대해서 오는 사람들이라는 정형화된 환상도 버려야 한다. 아직도 길 가다가 미군 보면 주먹 쥐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경제적 이유가 많다. 탈북민 대다수는 북한에 있는 가족과 일가 친척들에게 중국 브로커를 통해 송금을 한다. 사실 그 돈이 북한 장마당(시장) 활성화에 기여하는 부분이 크다. ”

―탈북민이 정착하면서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뭔가.

“탈북민 다수는 고등중학교 정도의 학력이 대부분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생존하기 위한 자생력을 키우고 취업까지 해야 되는데 잘 안 된다. 대학교육까지는 특례 제도가 있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 취업과 창업에도 소수자 우대 정책이 있지만 여러 가지 변수가 많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국가가 100% 다 해줄 수가 없다. 그래서 탈북자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아주 크다.”

―재단에서 역점을 두고 있는 탈북민 지원 대책은 어떤 것들이 있나.

“현재 공공기관과 법률회사 등 10곳과 탈북민 정착을 돕기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착한(着韓) 협업’ 사업이다. 중견기업협회와는 ‘1사(社)1통(統)’ 사업을 펼치고 있다. 회사당 한 명의 탈북민을 채용해 통일에 대비한 전문기능인으로 양성하자는 취지다. 중견기업협회 소속 300개 기업에 300명을 취업시키는 것이 목표다.”

정옥임 남북하나재단 이사장이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재단 이사장 집무실에서 탈북민 정착 지원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탈북민 채용과 관련한 업체 반응은.

“우여곡절 끝에 3명이 취업했다. 처음엔 기업들이 실익이 없다는 얘기를 하더라. 사회적 공헌 의지가 강한 기업들이 있고, 통일에 기여한다는 측면이 공감대를 산 것 같다. 통일 과정에서 반드시 북한 재건이라는 큰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왕이면 먼저 여기 온 북한 주민들이 능력을 갖추면 역할을 수행하기가 낫지 않겠나.”

―겨우 3명밖에 못했나.

“겨우 3명이 아니라 정말 사연이 많았다. 공단인데도 연봉이 낮다면서 안 가겠다는 탈북민도 있고 은행 채용 면접에 아예 나타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게 불편한 진실이다. 우리의 잘못된 정착 지원 정책 탓도 있고 탈북민이 자본주의 체제에 적응이 덜된 측면도 있다. 한 가지 희망은 나이가 어려서 한국에 올수록 가능성이 보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탈북 대학생의 학업지원과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통일 엘리트를 육성하는 ‘메르켈 프로젝트’(북한 출신 지도자 육성 계획)가 중요하다. 법무법인 ‘율촌’의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은 한국 대학생들이 탈북민 자녀의 학업을 지도하도록 하는 봉사 프로그램이 좋은 사례다. 남과 북의 젊은이가 만나 서로의 성장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벌써 작은 통일을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탈북민의 다수가 여성이다.

“가임기 여성이 대부분이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많다.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데 아이 때문에 취업도 못한다. 직업훈련을 받으려고 해도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 한국 여성처럼 애를 봐줄 친정엄마나 일가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니 어려운 거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서·심리적 치료인데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다. 대부분 중국 등 제3국을 경유해 들어오는데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인권 유린의 희생자들이다. 탈북여성 인권에 대해 우리 정부나 시민단체, 정치권에서 이제는 깊은 관심을 보여야 한다. 여성 문제이기 이전에 우리 민족의 문제이며, 모자보건의 문제이다. 중국에서 고생하다 만신창이가 돼서 대한민국에 들어오면 우리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 너무 커진다. 이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우리가 북한과의 관계, 중국과의 마찰을 우려해 계속 눈 감고 귀 막아야 하는지, 같은 여성으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기관장으로서 굉장히 고뇌하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에선 ‘조용한 외교’가 우리 정부의 기조다.

“중국을 경유해서 한국으로 온 탈북여성은 중국에서 태어난 아이를 데려온다. 탈북할 때는 혼자였지만 살아남기 위해 중국 남자를 만난 경우가 태반이다. 중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비보호 청소년으로 분류돼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탈북 여성이 아이를 키워야 하는데 (정신적·물질적으로) 아이를 보살필 여력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 이 아이들은 대한민국에서 자랄 텐데, 커서 이 아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미래와 관련된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대담=조남규 외교안보부장, 정리=김민서 기자

■정옥임 이사장은… 

▲서울 출생(54) ▲고려대 정경대, 대학원 석·박사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후과정 객원연구원 ▲미국 후버연구소 객원 연구위원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선문대 국제학부 교수 ▲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북한이탈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 ▲한양대 특임교수 ▲남북하나재단(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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